‘계엄사태 비판’ 시국선언문 막은 학칙 “선거참여만 되고 정치관여 안 된다”고요?
입력 : 2024.12.16 16:12 김원진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정치관여금지’ 교칙을 근거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을 내리도록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학교는 “학생들을 외부 정치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학생들은 청소년 정치 참여를 규제하는 학칙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16일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은평의 A고교 학생회는 지난 14일 비상계엄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총학생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리려 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소리가 미래에 닿기까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는 A고교 학생 168명이 이름을 올렸다. 학생들은 시국선언문에서 “모든 정치적 행위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포고령 등은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와는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며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민주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후대에 전달한 불꽃이 더 당당히 타오를 수 있도록, 연대의 촛불로서 지켜낼 것”이라고 썼다.
그러자 A고교 교장은 “학생 개개인이 탄핵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며 실명을 내리라고 했다. 개인 실명을 지운 뒤 총학생회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SNS에 올리자, 교장은 “정치관여금지 조항이 있는 학칙을 빌미로 외부에서 공격할 수 있으니 시국선언문을 내리도록 할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했다. A고교 학생들 사이에선 최대 퇴학까지 가능하도록 한 ‘정치관여금지’ 학칙이 공유됐고, 시국선언문은 다시 SNS에서 내려갔다.
A고교 학칙은 ‘정치 관여 행위(공직선거 참여 제외)’를 한 자에 대해 출석정지, 퇴학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A고교 측은 “학생들에게 징계를 압박하며 게시물을 내리라고 한 것은 전혀 아니다”면서 “모든 학생이 시국선언문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개별 학생의 SNS에 시국선언문을 올리는 것은 문제없다고 안내했다”고 했다.
그러나 A고교 학생들은 학교 측의 조치가 청소년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억압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학칙 개정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게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A고교 학생회 측은 이날 “학생들도 그 조항(정치관여금지)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2020년 관할 고교에 보낸 공문.(왼쪽) 서울 은평구 A고교가 서울시교육청 공문에 따라 수정한 학칙. 정치관여행위 옆 괄호 안에 ‘공직선거 참여 제외’가 쓰여 있다.(오른쪽)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부터 선거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학칙을 개정하라고 각 학교에 알렸다. A학교는 당시 학칙을 개정하면서 ‘정치관여행위 금지’는 유지하면서 ‘공직선거참여 제외’라는 단서를 붙였다. A고교는 서울시교육청에 ‘시정완료’로 제출했다. 박지연 청소년-시민전국행동 활동가는 “지금도 두발규제를 할 때 파마, 염색은 금지하고 두발 길이만 푸는 식의 ‘나노규제’를 하는 학교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비상계엄 조치를 비판하고, 정치권의 행동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A고교 외에도 서울 명일여고가 대자보를 붙여 탄핵을 촉구했고, 서울 은평구에서는 중학생들이 호외를 제작해 ‘우리가 물려받고 싶은 나라’에 대해 쓰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억누르는 분위기가 학교에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의 수영 활동가는 “2022년부터 정당 가입이 가능한 나이가 만 16세로 낮아지면서 대부분 고교생은 정당활동이 가능하다”며 “투표 참여만 허용하겠다는 식의 학교 측 접근이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투표권 있는데…‘정치 이야기’ 힘든 고3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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