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 정부 세관·검찰, 왜 마약 조직원 입국 알고도 안 잡았나
조성욱,위준영 기자 수정 2025-01-22 10:19 등록 2025-01-21 21:30
 
검찰과 세관이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의 대규모 필로폰 밀반입 사건을 두고 구체적인 단서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이는 백해룡 경정(전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장)이 2023년 8월 국회 청문회에서 폭로한 내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백 경정의 폭로 속, 우리가 놓친 미씽링크... 검찰과 세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11kg의 필로폰, 세관을 뚫다
 
경찰 수사자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은 2023년 1월 23일부터 2월 27일까지 인천과 김해공항을 통해 총 12차례에 걸쳐 최대 111kg의 필로폰을 밀반입했습니다. 이는 시가 약 3,500억 원, 약 390만 명이 1회 투약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물론 세관이 밀반입되는 모든 마약을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약 밀반입 가능성을 사전에 알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세관은 2023년 2월 15일,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원 12명을 특정하고 이를 '알리미'라는 전산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이 시스템에 등록된 인물들은 입국 시 세관 수사관에게 문자로 알림이 전송됩니다. 그러나 2월 22일과 24일, 김해공항을 통해 이들 중 일부가 입국했지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약 12kg의 필로폰이 국내에 반입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에 의해 인편으로 국내 반입된 필로폰 현황. 한겨레 영상 갈무리.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에 의해 인편으로 국내 반입된 필로폰 현황. 한겨레 영상 갈무리.
 
세관, 마약 밀수범 입국 사실 알고도 안 잡았다?
 
이에 대해 경찰 출신인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천세관 주요 관계자로부터 ‘주범을 잡기 위해서 안 잡았다’는 답변을 들었다”라며 “세관이 일부러 마약 조직원을 안 잡았다면 직무유기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전직 세관 직원으로 30년 경력인 김아무개씨 또한 “세관이 특정된 마약 조직원들을 일부러 놓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백 경정의 변호인을 맡고 있는 이창민 변호사(법무법인 창덕)는 “마약 사건에서 세관은 검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임의로 누구를 잡고 안 잡고 할 권한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천세관 관계자는 “이상식 의원에게 이 사안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다. 구체적인 사안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드릴 수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과연 세관은 일부러 마약 조직원들을 안 잡았을까요?
 
전직 세관 직원과의 인터뷰. 알리미에 등록된 마약 우범자들이 세관을 통과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전직 세관 직원과의 인터뷰. 알리미에 등록된 마약 우범자들이 세관을 통과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아피스에 걸린 마약 밀수범 “몸수색 당한 적 없다”
 
세관의 대응 부실 의혹은 또 있습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백해룡 수사팀의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원 현장검증 조서에 따르면, 피의자 C는 2023년 7월 5일 입국 과정에서 “세관으로부터 몸수색을 받은 적이 없다”라고 여러 차례 진술했습니다.
 
세관은 2월 15일 말레이시아 마약우범자 12명을 특정하고 2월 27일에 이 중 3명을 검거했으며 3월 7일에 특정한 마약우범자 12명을 아피스에 등록했습니다. 아피스는 해외 항공사에서 전송받은 승객 정보를 분석하여 세관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게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마약 우범자들을 아피스에 등록하면 입국과 동시에 세관에 통보가 되고 세관은 이들에 대한 몸수색 등을 통해 마약 밀반입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당 조서에 의하면 아피스에 등록된 마약 우범자가 입국을 했는데도 세관은 몸수색조차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한겨레에서 입수한 현장검증 조서에서 23년 7월 5일 입국당시 세관에게 몸수색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마약 밀수 피의자. 한겨레 영상 갈무리.
한겨레에서 입수한 현장검증 조서에서 23년 7월 5일 입국당시 세관에게 몸수색당하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마약 밀수 피의자. 한겨레 영상 갈무리.
 
“몸수색 없었다” VS “몸수색했다” 엇갈리는 진술 
 
세관은 이에 대해 “철저히 몸수색을 진행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마약 조직원의 진술과 상반된 내용입니다. 이상식 의원은 “세관과 피의자의 진술이 엇갈린다면 대질신문 등을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 수사를 백 경정 팀이 하려다가 외압을 통해 못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만약 아피스에 등록된 마약 우범자들의 몸수색을 안 했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습니다. 7월 5일 국내로 입국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 A와 C는 대량의 필로폰 밀반입을 위한 국내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입국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9월 5일 백 경정 수사팀에 의해 체포됩니다.
 
백해룡 수사팀에 의해 체포되는 마약 조직원. 한겨레 영상 갈무리.
백해룡 수사팀에 의해 체포되는 마약 조직원. 한겨레 영상 갈무리.
 
검찰은 이미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의혹의 중심엔 세관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작진은 취재 중 검찰이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를 파악하고도 추가 수사를 하지 않은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2023년 2월 27일 검찰에 의해 검거된 피의자들의 판결문과 증거 목록표에 따르면, 검찰은 당시 김해공항에서 체포된 부두목의 수첩에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 9명의 인적 사항과 출입국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이는 인천세과에서 작성한 12명의 마약우범자 정보와도 겹쳤습니다. 게다가 피의자 B는 2월 27일 이외에 두 차례나 더 국내로 필로폰을 반입했다고 자백합니다. 피의자 B가 필로폰 밀반입을 했다고 자백한 날짜는 검찰이 확보한 B의 출입국 내역과도 일치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부두목의 수첩에 나타난 마약 운반책 명단에는 대량의 필로폰 밀반입을 위해 7월 5일에 입국해 9월 5일 백 경정 팀에게 체포된 피의자 A와 C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검찰은 백 경정 수사팀이 해당 피의자들을 검거하기 약 6개월 전에 이미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의 실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23년 2월 27일 검거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에 대한 증거목록표. 해당 문서에는 3회에 걸친 필로폰 밀반입을 자백하는 피의자B의 진술이 나타나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한겨레가 입수한 23년 2월 27일 검거된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에 대한 증거목록표. 해당 문서에는 3회에 걸친 필로폰 밀반입을 자백하는 피의자B의 진술이 나타나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검찰, 확보한 단서에도 추가 수사 안 해
 
이 변호사는 이에 대해 “2월 27일 검거된 피의자 B의 자백과 입수된 증거를 통해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에 대한 후속 수사에 착수했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자신의 죄를 자백한 피의자 B의 여죄에 대해 추가 수사나 기소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후 추가적인 수사나 기소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대전교도소에 수감 중인 피의자 B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에게 2월 27일 사건 이외에도 여러 차례 필로폰을 밀반입했다고 자백했으나, 추가 조사는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제작진은 변호인을 통해 피의자 B의 접견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대전교도소 관계자로부터 “2023년 12월 21일 확정 판결 나온 후 추가적으로 조사든지 기소든지 나타나는 기록은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피의자 B는 2023년 2월 27일 마약 밀반입 건으로 기소가 되고 그해 12월 21일 확정판결을 받습니다. 즉 검찰은 피의자 B가 자백한 다른 여죄에 대해서 추가 수사 및 기소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전교도소에서 제작진과 인터뷰한 피의자 B의 워딩. 피의자B는 여러차례 필로폰을 밀반입 했다고 자백하지만 검찰의 추가 조사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대전교도소에서 제작진과 인터뷰한 피의자 B의 워딩. 피의자B는 여러차례 필로폰을 밀반입 했다고 자백하지만 검찰의 추가 조사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검찰 관계자는 “혐의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왜 자신의 여죄를 자백한 피의자 B에 대한 추가 수사나 기소를 하지 않았을까요? 대량의 필로폰 밀반입을 위해 입국한 A와 C는 왜 잡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해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7월 5일에 마약 운반책 2명이 입국했을 때 마약을 소지하고 있지 않아서 추적을 위해 입국시켰다. 그 이후에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서 추가 수사는 진행하지 않았으나 나머지 인원들을 아피스에 등록한 상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B에 대해서는 “공범들이 부인을 했고 본인 자백밖에 없어서 당시에는 추가 수사나 기소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검찰의 해명을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변호사는 “담당 검사는 마약 수사로 잔뼈가 굵은 분으로 알고 있다. 7월 5일 입국한 마약 우범자들을 추적 수사를 위해 입국시켰다면 검찰이 이들을 잡았어야 한다. 그런데 결국 이들은 백 경정 팀에 의해 검거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자백 이외에도 입국 내역과 부두목의 수첩 내용까지 확보된 상태인데 ‘이것만으로 수사할 수 없었다’니, 이런 검찰의 해명은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백해룡 수사팀은 23년 7월에 수사에 착수한 뒤 9월에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 2명을 검거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백해룡 수사팀은 23년 7월에 수사에 착수한 뒤 9월에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 2명을 검거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세관과 검찰의 직무유기 의혹,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검찰 출신인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이 부두목 수첩과 피의자 자백을 통해 조직적인 마약 밀매 정황을 파악했음에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상식 의원 또한 “세관이 마약 우범자들을 특정하고도 고의로 이들을 입국시켰다면, 또는 검찰이 2월에 검거한 피의자의 자백을 듣고도 후속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다. 이미 세관을 뚫은 대량의 마약이 국내로 유통됐다. 이는 수사를 통해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말레이시아 마약조직의 실체는 세관도 검찰도 아닌 영등포경찰서의 백해룡 수사팀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백 경정 팀은 마약 수사 전문 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백 경정 팀은 약 127.8kg에 달하는 필로폰을 차단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400만 명이 1회 투약할 수 있는 양이며 압수된 필로폰은 경찰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양입니다. 검찰이 후속 수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백 경정 팀이 이를 차단하지 못했다면, 이 엄청난 마약은 그대로 국내에 유통됐을 것입니다.
 
작년 10월 15일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백해룡 경정이 ’마약밀수 세관연루 의혹’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작년 10월 15일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백해룡 경정이 ’마약밀수 세관연루 의혹’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한겨레 영상 갈무리.
 
백해룡은 좌천, 수사는 1년 넘게 진행 중
 
백해룡 경정은 이후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됐고, 관련 수사는 1년 넘게 진행 중입니다. 마약 밀수와 관련된 세관과 검찰의 직무유기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마약은 어떻게 세관을 뚫었을까요? 검찰은 왜 수사를 안 했을까요?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할 대목입니다.
 
조성욱 피디 chopd@hani.co.kr 위준영 피디 marco042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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