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폭동' 본 10대들의 무서운 예언
[아이들은 나의 스승] 극우 유튜브에 매몰되어 가는 아이들, 시간이 없다
25.01.22 07:03 l 최종 업데이트 25.01.22 07:03 l 서부원(ernesto)
▲폭도로 변한 윤석열 지지자들이 파괴한 법원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후 서부지법 내부가 파손돼 있다. ⓒ 연합뉴스
"장담하건대,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 걸요."
지난 19일 새벽에 벌어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폭동 사건에 대한 한 아이의 한 줄 평이다. 교사인 내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었지만, 아이들은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실시간 영상을 보고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를 통해 성년을 앞둔 또래 고등학생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섣부를지언정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관점과 정치적 성향, 나아가 역사 인식까지 대강 짐작해 볼 수 있는 더 없는 기회가 됐다. 대학 입시에 여념이 없는 수험생임에도 나름의 '안테나'는 세우고 있었다.
우선, 아이들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구분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해방 후 미소 냉전으로 인한 이념 갈등과 6.25 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되면서 각인된 기성세대의 낡은 유산 정도로 치부한다. 현대사에 아예 무지한 경우엔 진보는 야당, 보수는 여당과 동의어인 줄로 안다.
정당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태어날 때부터 '양당 체제'만 줄곧 봐온 까닭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제3당은 그저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일 따름이다.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당명을 바꾼 여당과 야당의 옛 이름은 척척 알아도, 역대 명멸했던 제3당의 이름을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사이익에 기대어 번갈아 집권해 온 두 거대 정당만 남아,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그대로 포개져 인식된 셈이다. 현재의 야당이 진보로 규정되다 보니, 진보라는 이름을 내건 정당은 극좌의 정당으로 규정됐다. 심지어 진보당을 공산당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25 전쟁 중 공산 치하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후 그는 공산군이 저지른 만행을 몸소 겪으며 반공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계승한 민주당은 뼛속 깊은 반공주의자인 신익희와 조병옥의 정당이었다. 그런데도 김대중을 '빨갱이'로 내모는 건, 무지에서 비롯된 악의적인 왜곡이자 폄훼다.
민주당과 김대중에 대한 아이들의 잘못된 인식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우편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극우 세력이 보수를 참칭하다 보니, 그에 못지않은 우익 세력이 진보와 좌익으로 자리매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우익 독립운동가인 김구마저 '좌익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현실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언뜻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어록이 떠오른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진실이 된다'는 그의 악마적인 선동은 지금 우리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여론 지형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사법부가 침탈당했는데... "SNS·유튜브서 낄낄대는 친구들 적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3시경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되자,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했다. 이들은 진입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하고 건물 외벽 및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출입문, 각종 집기 등을 부쉈다. ⓒ 락TV 화면
"10대들이 자주 접속하는 SNS와 즐겨보는 유튜브에선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좌빨 판사'들을 '참교육'시키기 위한 '민주화운동'으로 부르며 낄낄대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요."
그가 전하는 온라인상의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집단적 폭력으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유린한 만행을 '소동' 정도로 여기고, 볼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짐짓 두둔하는 행태가 참담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했다. '참교육'과 '민주화운동'은 전교조와 5.18을 조롱하는 '일베 용어'다.
민주공화국의 한 축인 사법부가 침탈당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도 사법부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며 적용하는 헌법 기관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서술형 시험에 나올라치면 예외 없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적는다.
교사로서, 가르치면 뭐 하나 싶은 자괴감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아이들 앞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배움은 지적 허영일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쇠귀에 경읽기였나 싶어 한숨만 내쉬게 된다. 요즘 아이들만의 문제일까마는, '머리'와 '가슴'은 그토록 멀기만 하다.
폭동 사태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유튜브 영상에서는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이 쏟아진다. 공중파 방송의 편집본에서는 무음 처리되어 있지만, 거기에 어떤 욕설이 감춰져 있는지는 아이들이 더 잘 안다. 기성세대에겐 충격적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일상의 언어다.
"극우 유튜버가 더 쉽게 돈을 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죠."
장래 희망이 유튜버라는 아이들이 더는 드물지 않다. 예전엔 철부지 초등학생들의 바람 정도로 치부됐지만,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고등학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유튜버 대신 '플랫폼 크리에이터'나 '온라인 인플루언서'라고 근사하게 바꿔 말하는 정도다.
그들은 억대 수익을 올리는 유튜버를 소개하는 뉴스에 솔깃해한다. 구독자 수와 조회 수에 따라 수익이 창출되는 메커니즘을 그럴듯한 통계까지 가져와 설명하는 '전문가'도 있다. 콘텐츠의 내용과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대박'을 칠 수 있다며 꿈에 부풀어 있는 아이들이 드물지 않다.
종일 유튜브를 끼고 사는 아이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구속되자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 박수림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로 세상과 소통한다. 예전 같으면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을 들락거렸지만, 지금 그런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다. 이젠 카톡조차 'DM'에 밀려나고 있을 만큼 변화가 빠르다. 뉴스도, 드라마도, 예능 프로그램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보는 시대가 됐다.
아직 드물긴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TV'를 운영하는 아이도 있다. 콘텐츠도 빈약하고 화면도 엉성하지만, 친구들에게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달라며 투정 부리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100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될 거라는 그의 다짐이 자못 비장하게 들린다.
구독자 수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콘텐츠의 '품질'이다. 그들이 말하는 '품질'은 얼마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가를 뜻한다. 특히 성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는 '영원한 블루오션'이라는 거다. 인터넷 강의에서조차 '맛깔스러운' 욕설은 '품질' 향상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주장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실시간으로 중계한 극우 유튜브를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12.3 내란 사태' 이후 몇몇 극우 유튜브 채널은 수천만 원의 수익을 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들에겐 '폭동'이나 '내란'보다 '수익'이라는 말이 더 솔깃했을 것이다.
이 와중에 한 한국사 '1타 강사'가 자신의 강의 유튜브에서 구속된 윤 대통령의 주장과 똑같은 음모론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 '12.3 내란 사태'의 책임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있다며, 극우 세력의 부정 선거 주장에 찬동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언론이 편파적인 보도를 통해 대중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쏟아냈다.
종일 유튜브를 끼고 사는 아이들에게 연예인보다 더 유명한, 그것도 수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인강 강사'의 영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느 유튜브의 구독자 수와 비교해선 곤란하다. 그의 주장이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 사이의 화제가 되어 토론이 불붙었다.
"근래 부정 선거 의심 사례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잖아."
"한국사 '1타 강사'조차 극우 유튜브의 주장에 현혹된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야. 어쩌면 수강생을 더 모집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일지도 몰라."
'내란 수괴' 윤 대통령에 빙의된 듯한 그의 주장이 일부 아이들에겐 먹혀드는 모양새다. 반면, 근거 없는 낭설로 애꿎은 수강생들을 선동하는 행태라며 비난하는 아이들도 여럿이다. 안타깝게도, 그들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 역시 알고리즘에 의해 이어지는 '초록동색' 유튜브다.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왜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단언했는지 알 듯하다. 유튜브로 세상과 소통하는 10대 아이들이 빠른 속도로 양극단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마치 선다형 시험에서 정답 외엔 모두 오답 처리하듯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데 시나브로 익숙해지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 중엔 2030 청년들이 과반이라고 한다. 사법부를 능멸한 그들의 무모한 행태보다 극우 유튜브에 매몰되어가는 지금의 10대 아이들의 미래가 더 걱정이다. 우리 사회와 학교 교육이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다.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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