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 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벌어진 일
[이게 이슈] 탄핵 선고 생중계 시청 후 아이들과 함께한 '민주시민교육'
교육 서부원(ernesto) 25.04.07 10:40ㅣ최종 업데이트 25.04.07 10:40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선생님, 오늘 어떻게 될 것 같아요?"
4일 아침 교문에 들어서는 아이들은 인사 대신 이구동성 이렇게 물었다. 기각과 인용 비율을 예상해 보라는 주문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 결과가 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개중에는 너무나 불안해서 가족과 함께 지난밤을 설쳤다는 아이도 있었다.
"8:0, 전원일치 탄핵 인용에 내 목숨을 건다."
이렇게 확언했다. 헌법재판관들의 상식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후 변론이 끝나고도 한 달 넘게 선고가 지연되자 온갖 억측이 난무했지만, 난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언론과 유튜브 채널의 '조회 수 장사' 정도로 여겼을 따름이다.
하루 전 교육청으로부터 하달된 공문에 대한 교사들의 단체 카톡방 회의가 긴급하게 열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실시간 생방송을 교과별로 상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자칫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취지다.
교과 교사의 자율에 맡기되, 굳이 보고 싶어 하지 않거나 해당 시간 별도로 자습하겠다는 아이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걸로 의견이 모였다. 윤 대통령의 파면보다 당장 일주일에 두 시간뿐인 체육 수업이 더 중요하다는 아이도 있다. 잠시 뒤 결과만 알면 된다며 웃어 보였다.
학교엔 교실에 동시 송출할 수 있는 방송 장비가 갖춰져 있지만, 이 또한 오해와 왜곡의 소지가 있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교사별로 개인 노트북 등을 켜서 와이파이에 접속해 시청하도록 했다. 운동장과 특별실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시청 준비를 마쳤다.
윤 대통령 파면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
아이들에겐 사전 공지가 안 됐는데도, 시작종이 울리기도 전에 모두 교실에 앉아 정면 스크린의 빈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몇몇은 교탁에까지 나와서 빨리 틀어달라며 떼를 썼다. 공교롭게도, 탄핵 선고가 예정된 오전 11시는 일과 중 3교시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 내용을 단 한 마디도 놓칠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평소 같으면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졸기 일쑤였던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선고 내용은 선뜻 알아듣기 힘든 법률 용어 일색인데도 눈과 귀를 쫑긋 세운 채 미동조차 없었다.
선고문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과 짤막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논란이 된 사안마다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했으니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성미 급한 몇몇 아이는 최종 주문에 왜 이리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11시 22분. 최종 주문이 나오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교정이 순간 시끌벅적해졌고, 운동장에서 체육 활동을 하고 있던 아이들조차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마치 월드컵 경기에서 국가대표팀의 승리 소식이 전해졌을 때의 분위기와 흡사했다.
아이들끼리 '하이 파이브'를 나누며 순간을 즐겼다. 윤 대통령의 파면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 일색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의원을 체포하고 선관위를 점거하려 했던 윤 대통령을 파면시키지 않는다면, 일찍이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고 환호하고 있다.서부원
50분의 수업 시간 중 절반이 남았지만, 교과 진도를 나갈 수는 없었다. 교육청이 공문에서 강조한 '민주시민교육'을 해야 할 시간이다. 우선, 윤 대통령의 파면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생각해 보고, 각자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을 서로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무도한 독재자를 시민의 힘으로 끌어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승리죠."
"무지하고 무능한 검사 출신 대통령의 몰락이죠."
"우리나라에도 맹목적인 혐오를 부추기는 극우 세력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계기였죠."
"극우 종교 집단이 정치 세력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보게 됐죠."
"무속에 빠지면 약도 없다는 걸 알게 됐죠."
'우리 사회 상식의 회복'
대입에 목매단 고등학생들도 지난 '12.3 비상계엄' 이후 벌어졌던 일들을 두루 꿰뚫고 있었다. 워낙 비상식적인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인식 속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토로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윤 대통령의 파면이 '우리 사회 상식의 회복'이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윤석열' 하면 바로 떠오르는 공통의 이미지가 있다고 했다. 무능과 무지, 무책임과 일상적인 거짓말, 하다못해 음주, 격노 같은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 당장 후보 시절 손바닥의 '왕(王)'자는 잊히지 않는다면서도 무속과 극우, 혐오 따위의 거친 말들도 후 순위라고 했다.
아이들은 검찰총장과 서울대 법대, '9수'를 앞서 떠올렸다. 곧, 그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의 민낯을 보았다는 뜻이다. 수험생 중 0.01%만 합격한다는 서울대 법대 출신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라며 그의 이력을 읊었다.
'윤석열'은 그들이 선망하는 모든 걸 함축한 이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두가 '윤석열'이 되기 위해 오늘도 카페인 음료를 마셔가며 밤낮으로 책과 씨름하고 있다. 그의 몰락은 아이들에게 엘리트, 곧 '사회지도층'이라는 명칭이 지니는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의 파면을 통해 '윤석열'로 대표되는 최고 엘리트 집단이 정작 우리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이들도 윤 대통령이 각자도생과 무한경쟁,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임을 깨닫고 있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결국 윤 대통령의 파면 이후 달라져야 할 학교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였다. 표현만 달랐을 뿐, 여전히 서열화한 학벌 구조의 톱니바퀴로만 기능하고 있는 공교육 체제를 '혁명해야' 한다는 걸로 수렴됐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한 공교육은 더는 의미 없다는 거다.
한 아이는 엘리트의 선의만 믿고 국가의 운명을 통째로 맡기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알게 됐다며 '민주시민교육'을 매조지었다. 지난 '12.3 비상계엄'을 국회에 버선발로 달려온 시민들이 막아냈듯, 대한민국의 주인은 엘리트가 아닌 '민주시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민주공화국은 엘리트의 '머리'가 아닌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장삼이사의 '가슴'과 연대를 통해 완성된다. 이 와중에도 일부 보수 언론에선 '탄핵 선고 교실에서 생중계 시청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갈등을 부추기려는 그들의 '몽니'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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