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cmuseum.busan.go.kr/uploadfiles/seminar/bcmuseum/강인욱.pdf 
복천박물관 제5기 고고학 시민강좌, 발해의 유적과 유물 45~48 (부경대 강인욱)

발해의 유적과 유물
Ⅳ. 파르티잔 강의 청동 물고기

한국사람들에게 ‘말갈’이라는 존재는 무척 낯설다. 심지어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마저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말갈은 하나의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삼국시대 초기부터 발해에 이르는 천여년 동안에 변방의 집단을 지칭했기 때문이다.

또한 말갈은 발해의 기층민으로도 유명하다. 고구려의 문화를 고스란히 계승한 상층부와는 다소 이질적인 집단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많이 생소한데, 최근에 고고학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서 이들의 생활모습이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유물에 주인의 민족이름이 써있지 않는 이상 무엇이 말갈인지 발해인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또, 이미 발해로 통일된 나라에서 무엇이 말갈인지 발해인지 구분하는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도 나라별로 묘한 인식차이가 존재한다. 한국과 달리 러시아는 발해의 주체세력은 말갈로 본다. 그도 그럴 것이 연해주와 극동지역에 원래 거주하던 말갈을 강조함으로써 러시아의 영토인 극동지역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려고 하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여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우연히 발견된 청동물고기에 대한 논쟁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홋카로 가는 길가에 니콜라예프카 성지가 있다. 이 성은 파르티잔 강이 흐르는 너른 대지에 위치했는데, 그 거대한 규모와 유리한 입지조건 때문인지 발해 이래 여진인들이 사용했다. 파르티잔 강은 전에는 수찬강이라고 했던 것을 러시아인들이 파르티잔을 기념하여 개명했다. 니콜라예프카성은 지금도 성벽이 남아있고 그 터가 완벽하게 남아있어서 연해주 지역을 답사할 때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코스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성 근처에 사는 한 학생이 1980년 성 안에서 청동으로 만든 물고기 반쪽을 발견했다. 이후 이 지역을 조사하던 샤프쿠노프 박사에게 이것이 전달되었고, 판독 결과 이 유물은 왕이 지방의 장군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표인 부절(符節)임이 밝혀졌다.

니콜라예프카 성터에서 출토된 이 부절은 발해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부절은 먼 곳으로 떠나는 장군에게 주는 일종의 신표로 , 청동장식을 반으로 쪼개서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에게 준다. 그러면 나중에 왕이 변방에 또 다른 사신을 보낼 때 왕이 가지고 있던 반쪽을 주어서 왕이 보낸 사람임을 확인하게 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부절은 한국학계에서는 발해의 것으로 간주하지만, 러시아학계는 발해의 경계 넘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던 말갈계의 부족이 당나라로부터 직접 신표를 받은 것으로 해석한다. 부절에는 좌효위장군섭리계(左驍衛將軍聶利計)라는 명문이 새겨져있다. 계(計)로 끝나는 이름은 당으로 온 여러 사신들의 이름에서 흔히 보이며, 좌효위장군은 중국의 여러 기록에서도 보이는 직책이다. 효는 날래다는 뜻이니 아마 날쌘 기병들을 관장한다는 뜻이었는지 모르겠다. 726년에 당으로 도망친 대조영의 아들 대문예(大門藝)도 당나라로부터 좌효위장군이라는 직책을 받았다.

문제는 섭리계라는 사람에게 좌효위장군이라는 직책을 준 사람이 발해의 왕인가, 아니면 당시 중국을 통치하던 당의 황제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러시아 학계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러시아 학계는 블라디보스토크 위쪽은 발해의 영토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섭리계는 발해의 장군이 아니라 말갈의 장수였으며 아마도 서기 8세기경에 당으로 사신으로 가서 직책을 하사받은 것으로 본다. 러시아는 과거부터 연해주가 러시아의 땅이 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중국과 같은 나라보다는 극동의 토착세력이 그 주체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역사적인 정당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좀 더 극동의 원주민의 비중을 강조하는 연구 풍토의 산물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한국, 중국의 나라가 아니라 연해주의 현재는 남아있는 말갈이 발해의 주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 학계의 주장 뒤에는 황제라고 칭했던 나라는 당나라 밖에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중국에서 발해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나와 러시아의 견해를 반박할 결정적인 자료가 나왔다. 2009년 6월 중국의 고고학을 대표하는 잡지 [考古]에 출판된 吉林 和龍에서 발굴된 발해 고분 자료 중에는 “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泰氏)다” 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구절이 있다. 발해가 스스로 황제를 칭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뒤집어말하면 니콜라예프카 성터의 청동 부절도 발해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뜻이 된다.

그림 3. 파르티잔 강에서 발견된 청동 부절

더욱이 발해는 주변의 말갈족들을 복속시킨 나라였기 때문에 말갈족의 장수가 발해에 있다는 점이 이상할 리는 없다. 또한 발해는 중국의 관제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장군의 직책도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측 견해가 맞는다면 연해주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대형 발해 시기의 성지는 발해에 대적하는 말갈계통의 독자적인 집단이 만들었고, 그들은 발해를 건너서 중국과 직접적인 교류를 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런 해석에는 많은 무리가 간다. 

역사 기록에는 분명히 발해가 연해주의 전 지역과 흑룡강 근처까지 영토로 삼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파르티잔 강의 청동 부절은 발해의 역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물자료임에 틀림없다.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신표인 청동 부절이 무덤이 아니라 성지 안에서 발견되었으니 혹시 적의 기습을 받아서 그 귀한 물건은 버려진 것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니콜라예프카 성지는 제대로 조사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보물이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이 금속탐지기로 성지 곳곳을 뒤지며 도굴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는 되고 있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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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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