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key=20080704.22015202850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15> 바닷가의 발해성터와 소금가마
발해는 소금 확보를 위해 바닷가 개펄 인근에 거대한 성지 세운 듯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8-07-03 20:29:25/ 본지 15면
   

크라스키노 마을의 세계2차대전 전몰자기념탑. 안중근을 비롯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이지만 그들에 대한 흔적은 없다.

발해가 있었던 지역은 현재 중국 길림성과 흑룡강 일대가 중심이었고 연해주 및 한반도 북부 일대도 포함된다. 중국은 동북공정 작업을 끝내고 발해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중국은 발해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로 이를 공인받겠다는 속셈이다. 이 곳은 한국 학자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해연구의 유일한 통로는 연해주가 돼 버렸다. 필자의 부경대 조사팀을 제외하고 문화재연구소 전통문화학교 동북아역사재단 등 다른 연해주 지역 고고학 조사팀들이 모두 발해를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는 수백 개의 발해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중 백미라 한다면 당연히 한·러 국경지역의 북쪽에 있는 크라스키노 성지를 들 수 있다. 이 성지는 러시아에 분포한 유적 중 가장 대형이며 발해의 행정구역 중 하나인 염주(鹽州)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규모는 구글 어스로 검색을 해도 보일 정도로 큰 편이다. 

이 성지가 위치한 크라스키노 마을은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하고 독립운동을 결의한 곳으로 유명하다. 1860년대 러시아가 극동지역을 접수하고 이 지역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당시 끄라스낀이라는 사람도 이 지역에 정착했는데 현재 지명은 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전에는 고려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면서 이 지역은 연추 마을이라고 불렸다. 연추(煙秋)와 염주는 아주 발음이 비슷하니 혹시 발해 때의 지명이 구전되어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발해사람들, 참 신기하게도 바닷가의 개펄 근처에 성지를 지었다. 지금도 크라스키노 성지는 조금만 땅을 파도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발굴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저지대인 탓에 엄청난 모기떼의 공격도 피할 수 없다. 하물며 여름에 조금 큰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전 성지가 침수되는 건 시간문제다. 실제로 발굴을 하다보면 엄청난 물이 크라스끼노 성지를 덮었던 흔적이 자주 발견된다. 크라스끼노 성지가 바닷가에 있는 이유는 발해의 수도(상경)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한 뱃길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배를 댈려면 개펄보다는 뽀시에트항과 같은 정박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일본으로 가려면 크라스키노 성지에서 작은 배로 뽀시에트 쪽으로 건너가 큰 배로 갈아타야 할 것이다. 

여러 불편을 감수하고 여기에 성지를 쌓은 이유는 무엇일까? '소금'이 답인 것 같다. 염주라는 명칭도 소금 염(鹽)자를 쓰는데, 혹시 여기에서 바닷소금을 괸 게 아닌가 싶다. 크라스키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카파로프 신부로 19세기에 북경의 러시아정교회 사절단으로 파견되어 가는 길 이었다. 그런데 그는 특이하게도 크라스키노 성을 '소금가마터'라고 기록했다. 그 근거는 따로 쓰지 않았지만 혹시 채염하기 적당한 조건임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발해나 고구려 같이 내륙에 위치한 국가들에게 소금 확보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필요할 뿐 아니라 목축하는 가축들도 지속적으로 소금을 섭취해야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동해에 접해서 살던 옥저나 동예를 복속시켜서 소금을 얻었고 말갈족의 경우 나무를 태워서 소금을 확보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반해서 발해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발해와 같은 거대한 제국이 동해바다로 진출한 것은 소금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함 이었을까? 크라스키노의 염주성은 바로 그런 소금 공급원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까지는 가설일 뿐이다. 고고학을 하면서 특히 소금이나 모피 같은 문제는 풀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고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지만 유물로 딱히 남아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크라스끼노 성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시작된다면 뭔가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금년 8월 크라스키노를 발굴할 때는 땅에서 물도 차오르지 않고 모기도 없는 쾌적한 발굴이 되길 바랄 뿐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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