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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인물들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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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인물들 <중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566
고구려의 인물들 <전성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6
고구려의 인물들 <후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7



9. 고국천태왕 : 힘이 장사였고, 잘 듣고 판단하여 관용과 용맹을 떨친 왕

 

을파소(대신) :  고구려의 국상이며, 진대법을 실시하여 나라를 풍족하게 하였다.

또한 교육제도를 정비하였고, 무예를 병행시켰다.

그리고 특정 집다의 권력독점을 막고, 왕권강화를 도왔다.

 

안류(대신) :  고국천왕이 인재등용정책을 실시하여 최초로 천거된 인물이다.

을파소를 천거한 공으로 대사자직에 올랐다.

 

계수(왕제,장군) :  고국천왕의 막내동생이다.

후한의 요동태수가 쳐들어오자 막으러 갔으나 패하였다.

후에 요동태수에게 항복한 발기를 사로잡아 꾸짖었다.

 

발기(왕제,반역자) :  고국천왕의 첫째동생이다.

고국천왕이 죽고, 왕비 우씨가 왕으로 만들어준다고 하였으나 그녀를 꾸짖었다.

동생 연우가 왕위에 오르자 분노하여 요동태수에게 투항하고 연우를 쳤다.

계수에게 포로로 잡히고 꾸짖음을 받아 부끄러워서 자결하였다.

 

우소(대신) :  왕에게 딸을 시집보낸 연나부출신의 관리이다.

이 후에도 연나부 출신의 우씨집안에서 왕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좌가려(대신,반역자) :  외척세력으로 매우 교만하고 사치하여 폭행을 일삼았다.

백성들은 원망하였고, 왕은 노하여 벌을 주려 하니, 역모를 꾸몄다.

어비류와 역모하였으나 들켜 참수당하였다.

 

어비류(대신,반역자) :  외척세력으로 매우 교만하고 사치하여 폭행을 일삼았다.

백성들은 원망하였고, 왕은 노하여 벌을 주려 하니, 역모를 꾸몄다.

좌가려와 역모하였으나 들켜 참수당하였다.

 
 

10. 산상태왕 : 고국천왕의 둘째동생으로 왕이되는데 많은 희생이 있었다. 그러나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무관,문관에 관한 기록이 없으며, 을파소와 계수등이 그를 보좌한것으로 보인다.

 

하요(??) :  유주의 평주출신이었으나 조조군에 쫓겨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이를 받아들여 책성에 안치하였다.

 

고우루(대신) :  을파소가 죽은 이후에 그 뒤를 이어 국상이 되어 정치에 기여하였다.

중천왕(제위 2년)까지 섬기다 죽었다.

 
 

11. 동천태왕 : 산상왕과 후나(산상왕의 후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번의 대패 이외에는 위나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로 이끌었으며, 강력한 서진정책을 추진하였다.

 

밀우(장군) :  하부출신의 고구려 중기 용장이다. 동천왕이 패전하여 포위되었을때에 그를 구출하였다.

후에 남옥저 방면으로 쫓겨서 그가 결사항전을 하였다. 현도태수 왕기가 죽으니 적군이 철수하였다.

거곡과 청목곡을 식읍으로 받았다.

 

유유(대신) :  고구려의 용사이다. 거짓항복하여 왕기를 찔러죽이고 자신또한 죽었다.

그가 왕기를 죽이니 적군이 도주하였고, 고구려가 다시 반격할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후에 고사자로 추증되었다. 

 

다우(대신) :  유유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공으로 대사자의 자리에 앉는다.

그것으로 정치 기여한다.

 

유옥구(장군) :  병졸이었으나 장군 밀우를 구출하였다.

그로인하여 식읍을 하사받았다.

 
 

12. 중천태왕 : 관나부인을 수장시켰고, 훌륭한 문관을 많이 기용하여 정치를 안정시켰다.

 

명림어수(대신) :  250년 국상에 올랐다.

필요에 따라 왕의 요청에 응하여 군사적 문제를 다뤘다.

유명한 삼국지의 무장인 사마의를 대패시켰다.

 

명림홀도(대신) :  왕이 공주를 명림홀도에 시집보냈다.

그후에 부마도위로 제수하였다.

 

음우(대신) : 명림어수가 죽은 이후로 국상에 올랐다.

정치에 기여하였다.

서천왕(제위2년) 까지 섬겼다.

 

예물,사구(반역자) :  전쟁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죽었다.

 
 

13. 서천태왕 : 북방정책에 힘을 쏟은 강력한 왕

 

달가(장군,왕제) : 고구려 중기의 명장이다.

지략과 용맹을 겸비하여 고구려를 쳐들어온 숙신족을 궤멸시켰고, 단로성을 함락하였다.

후에 봉상왕에게 죽었다.

 

일우,소발(왕제,반역자) :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들켜 죽임을 당하였다.

 

상루(대신) :  서천왕대의 고구려 국상.

음우의 아들이며, 음우가 죽은후에 그를 이어 국상이 되었다.

 

우수(대신) :  딸을 서천왕에게 시집보낸 서부출신의 관리이다.

각 나부가 붕괴하여 4부로 교체되며, 서부의 대사자관등을 지냈다.

 

돌고(왕자) :  고추가를 지내었다. 봉상왕의 왕권강화 도중에 희생되었다.

 
 

14. 봉상왕 : 지나친 왕권 강화로 민심을 잃고 폐위된 왕

 

고노자(장군) : 모용외가 국내성으로 쳐들어왔을 때에 봉상왕을 구한 장군이다.

후에 신성태수가 되어 모용외를 막는다.

그가 신성태수가 된 이후로는 선비족의 침입이 없어졌다고 한다.

 

창조리(대신) : 고구려의 국상이었다.

흉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궐공사를 짓는 봉상왕에게 간언하였으나 도리어 화를 받았다.

왕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폐위시켰다. 그리고 돌고의 아들 을불을 찾아내어 미천왕으로 새웠다.

 

음모(백성) :  압록강가에 사는 농부

기록에 의하면 거지가 된 왕족 을불을 불쌍히 여겨 머슴으로 두었다.

머슴으로 둘 수 있는 여유가 되는것을 보면 압록강가의 부유층농민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후에 불을 쫓아냈다.

 

재모(백성) :  동촌의 소금장수

다시거지가 된 을불과 함께 장사를 하였다.

이후에는 기록이 없다.

 

2왕자(왕자) :  봉상왕이 폐위되자 함께 자결한 봉상왕의 두아들.

실록에는 그 이름이 기록되어있지 않다.

 
 

15. 미천태왕 : 거지에서 왕까지 드라마같은 삶을산 대팽창정책의 왕

 

최비(장군) :  진나라 유주군 왕준의 대장이다.

모용선비족을 공격하였으나 패퇴당해서 고구려로 망명하였다.

 

숙우(대신) :  혹은 소우로 알려져있다.

봉상왕이 폐위된 후 고을불(미천왕)을 찾아다녔다.

조불과 함께 을불을 만나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본 후 그가 돌고의 아들 고을불임을 확신하여 옹립하였다.

 

조불(대신) :  봉상왕이 폐위된 후 고을불(미천왕)을 찾아다녔다.

숙우와 함께 을불을 만나고 그의 말과 행동을 본 후 그가 돌고의 아들 고을불임을 확신하여 옹립하였다.

 

여노(장군) :  미천왕대의 장수이다.

모용선비가 우문선비를 격파하고 요동으로 내려갔다.

그때에 하성에 주둔한 여노가 선비족의 장군 장 통과 맞섰으나 포로가 되었다.

 

왕후 주씨(왕비) :  미천왕의 왕후이다. 후에 전연의 침입에 사로잡혀 미천왕의 시신과 함께 전연에 인질로 잡혀가다 많은 조공을 받고 돌아왔다.

 
 

16. (고)국원태왕 : 세력확장을 시도했으나 크게 실패한 비운의 왕

 

곽충(??) :  모용인의 난에 가담했던 병졸이다.

동수와 함께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전연의 기밀을 알려주었다.

 

동수(??) :  모용인의 난에 가담했던 병졸이다.

곽충과 함께 고구려로 망명하였으며, 전연의 기밀을 알려주었다.

한때에 안악 3호분의 무덤주인으로 거론된 적이 있다.

주왕후가 전연에 돌아오게 힘썼으며, 주왕후가 돌아가셨을때에는 동수도 함께 뭍힌것으로 보고있다.

 

모용평(??) :  전연의 권신으로, 전연이 전진에 멸망당하자 고구려로 피신하였다.

전진과의 우호관계를 위하여 고국원왕이 전진에 압송하였다.

 

봉추(??) :  후조의 전연공격에 송황과 내통한 인물이다.

후에 발각되어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송황(??) :  후조의 전연공격에 봉추와 내통한 인물이다.

후에 발각되어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그러나 고국원왕이 다시 돌려보내었다.

 

고무(왕제,장군) :  고구려의 왕제이며 장군이다.

전연을 세운 모용황이 그를 두려워하여 자신은 남로로 가서 고국원왕의 군대를 괴멸시켰다는 설이 있다.

북로의 연나라군을 괴멸시키고 포위되있던 고국원왕을 구하려고 달려왔다.

그러나 태후와 왕비와, 미천왕의 시체를 싣고 퇴각하니 이를 쫓지 못하였다.

 

아불화도가(장군) :  전연의 침입때 고국원왕때 한수와 모용황의 5만대군을 막으러 나갔으나 크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왕은 단웅곡으로 피신하였다.

 

고화(왕족) :  전연에게 패하여 잡혀간 고구려의 왕족이다.

자칭 고양씨의 후손이라 일컬었으며, 후에 그의 손자는 북연의 혜의제가 된다.

 

고발(왕족) :  고화의 아들이다.

고운의 아버지이며, 필자의 생각으로는 고화가 전연에 끌려갈때에 같이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고밀(장군) :  고구려의 장군이며, 고자의 20대 선조이다.

342년에 전연의 침입이 있을때에 홀로 적진에 들어가 수없이 적의 목을 베었다.

이러한 공을 세워, 고국원왕은 그에게 식읍을 하사하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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