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93518
* 2005년 기사라 현재와 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⑸] 아차산과 용마산 보루
국민일보 기사입력 2005-02-01 17:14 | 최종수정 2005-02-01 17:14

서울 동부지역과 경기 구리시에 걸쳐있는 아차산과 용마산 일대는 둘레 300m 안팎의 요새 20여곳이 능선을 따라 2열로 집중배치돼 있다. 용마산 보루 5곳은 중랑천을 내려다보고 아차산 보루 4곳은 왕숙천을 굽어보고 있어 한강 교통로를 장악하려는 고구려군의 핵심 기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적 조사 결과 각 보루마다 50〜100명,전체적으로 2000여명의 고구려군이 상주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강 유역 요새는 다른 지역에 비해 발굴조사와 지표조사가 많이 이뤄졌다. 그러나 고구려 요새는 등산화에 숨도 쉬지 못한 채 짓눌려 있었다. 조사후 유적을 덮어놓은 흙이 등산객들의 발에 쓸려나가 훼손된 유적이 적지않았고 등산로 한가운데 방치된 유적마저 있었다.


◇ 등산객에 노출된 유적

아차산 보루는 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구리시 교문동의 제4보루는 1997〜1998년 서울대 박물관의 발굴 당시 건물터 7곳과 온돌 저・배수 시설 간이대장간 등이 확인됐고 조리용기 등 고구려 토기 26개종과 무기 마구 등 철기가 319점이나 출토됐다.

고려대 최종택 교수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은 3만 대군으로 백제 왕도 한성을 포위하고 아차산성 아래에서 개로왕을 죽였다”며 “고구려는 이후 80년동안 남진 경영을 위해 아차산 일대에 수십개 요새를 쌓았다”고 설명했다.

4보루는 건물터가 잔디가 덮혀 있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등 관리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그러나 간이대장간터는 등산로 한가운데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길 양쪽 경사가 너무 심해 우회로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금줄이나 팻말 정도는 설치되는게 고구려유적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행했던 최 교수는 “등산객이 하루 수백명씩 오가기 때문에 흙이 1년에 20㎝ 이상 깍여나가 유적이 훼손되고 있다”며 “유적 위로 다리 형태의 등산로를 만들면 좋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3보루는 더욱 심각했다. 온돌터는 등산로 한가운데 있어 온돌 고래(구들장 고랑)로 보이는 넓적한 돌이 밟히고 있었다. 건물터 일부는 간이화장실과 그네가 설치됐다가 최근 유적 조사단 요구로 가까스로 철거된 상태였다. 

1보루에서는 성돌이 등산로 축대로 쓰이고 있었다. 지난해 9월 광진구청이 등산로를 조성하면서 성돌을 쓴 것이라고 동행했던 유적전문가가 설명했다. 빗물에 씻기거나 길을 조성하면서 노출된 토기 파편,건물 일부로 보이는 붉은 흙덩어리가 등산로에 나뒹구는 모습도 발견됐다. 최 교수는 “구리시가 2003년 측량을 마친뒤 행정구역 상 서울쪽에 더 가깝다고 발굴 계획을 중단하면서 유적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혀를 찼다.

4보루로 가는 능선 왼쪽으로 건너다 보이는 용마산 보루 5개도 배드민턴장과 산불초소,군용 헬기장이 들어서 아차산 보루처럼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


◇ 잠자는 유적

아차산의 다른 줄기에 자리잡은 홍련봉 1보루는 높이가 해발 125m,둘레가 117m에 불과한 소규모 보루지만 정상에 오르자 한강과 성동구,광진구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1m 트럭에 가득 찰 만큼 토기 조각이 출토된 이곳에서는 지난해 8월 발굴 조사가 끝나고 유적을 흙으로 덮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최 교수는 “행정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 지 정해지지 않아 대책없이 복토작업만 하고 있다”며 “아차산 보루처럼 흙만 덮을 경우 흙이 깎여내려가기 때문에 잔디를 심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루내 건물터에는 적색과 회색 기와 조각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기와파편에는 고구려 기와를 구울 때 쓰는 원형통의 모골흔 무늬가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홍련봉 1보루에서는 특히 남한 최초로 고구려 기와 끝을 장식하는 연꽃무늬 수막새 와당이 발견됐다. 최 교수는 “고구려 시대 기와나 와당은 왕궁이나 사찰,관청 등 공공건물에만 사용됐기 때문에 이곳은 다른 곳보다 중요한 위상을 차지한 지역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50m 가량 떨어진 홍련봉 2보루는 우거진 숲에 방치돼 있었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자 아차산과 용마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보루를 내려오는 길에는 발굴조사 안내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었다. 최 교수는 “홍련봉 보루는 도로에서 100m도 안되는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구려 공원으로 조성하면 시민들이 많이 찾을 수 있지만 어떤 기관도 유적 활용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동행취재 : 고려대 최종택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및 동대학원 석・박사
공동기획 : 국민일보・고려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후원 : 서울대 박물관・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도움말 : 토지박물관 심광주 실장,충북대 차용걸 교수,서울대박물관 양시은 연구원,경기도박물관 백종오 학예연구사,고구려연구재단 임기환 실장
아차산=강주화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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