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050111051525288
* 2005년 기사라 현재와 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⑵] 무등리 1・2보루,덕진산성
국민일보 | 입력 2005.01.11 05:15

삼국시대는 전쟁의 시기였다. 고구려는 남하 과정에서 백제와 31차례,신라와 16차례 전쟁을 벌였다. 광개토대왕때부터 수만명 규모 고구려 군대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을 숱하게 건넜다. 개성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하는 임진강에는 고구려 성과 보루 20여 곳이 남아있다. 교통로 확보를 위한 전진기지인 덕진산성과 북상을 시도하는 백제 부대를 감시할 목적으로 설치된 무등리 1・2보루는 임진강 하류와 상류를 내려다보는 곳에 각각 위치한다. 


그러나 무등리 보루는 개 사육장과 묘지가 들어서 고구려 요새란 유적지명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군 부대 안에 있는 덕진산성도 별다른 보존 조치 없이 방치돼 성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 무등리 1・2보루

경기 연천 장대봉에 있는 해발 100m 무등리 1보루는 둘레길이 168m의 소규모 보루. 보루란 성곽 둘레 600m 이하의 소규모 요새를 가리킨다. 1보루에서 500m 떨어진 위치에 있는 2보루 역시 둘레 240여m의 작은 보루다. 1・2보루에서는 고구려 토기와 기와 조각이 다량 발견되고 2보루 북동부에서 대규모 탄화미와 조가 발견돼 군량미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등리 보루는 도로 바로 옆에 있는 데도 안내 표지판 하나 없었다. 취재팀이 보루를 향해 발을 옮기자 고약한 냄새와 함께 개 짓는 소리가 귀 따가울 정도로 들렸다. 두 보루 사이에 30여평 규모 개 사육장이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1보루로 올라가는 길에는 50여m 높이의 모 통신사 송신탑이 시야를 가렸다. 토지박물관 심광주 학예실장은 “유적 표지판 보다도 개 사육장이 먼저 들어섰다. 사람들이 보루를 함부로 사용토록 방치하면 고구려 유적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1보루에 오르자 성벽보다 먼저 100여평 규모의 큰 무덤이 보였다.

무덤 앞에 심어진 1백여 그루 사철나무 사이를 헤집던 심 실장은 “1995년 묘역 조성 당시 성내부에서는 고구려 토기와 기와 조각이 수십개씩 나왔는데 이제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며 손을 털었다. 2보루 내부의 밭에도 토기 파편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심 실장이 흙을 살살 긁어내자 조그만 토기와 기와 파편이 적지않게 나왔다.

1998년 탄화미가 발견됐던 산성 비탈에 서서 흙을 조금 파내자 검정빛 쌀 알갱이가 나오기도 했다. 심 실장은 “토지박물관이 1999년 보고에서 정밀 발굴 조사와 보존 조치의 필요성을 지적했는데도 누구 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무등리 1・2보루에서는 한국전쟁 당시이던 1953년 미군 화이트 소령이 건설한 205m 길이 화이트교가 철거된 뒤 새로 건설된 임진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등리 보루 앞은 삼국시대나 한국전쟁 당시에도 주요 교통로였던 것이다.


◇ 덕진산성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지에 처음 소개된 경기 파주 덕진산성은 고구려 특유의 굽도리식 석축 성벽이 남아있고,성 안에는 격자문이 새겨진 고구려 적색 기와 조각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이곳도 안내판이 전혀 없었다. 더욱이 군사지역이어서 출입하려면 군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진입로를 따라 10분쯤 차를 타고 덕진산성에 도착했지만 산성은 쓸모없는 땅처럼 버려져 있었다. 우물터는 바싹 말라있었고 건물터는 길을 닦을 목적인듯 파헤쳐진 상태였다.

심 실장은 “덕진산성은 고구려가 백제를 점령한 뒤 구축했고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에 개축됐다”며 “성과 보루는 군 부지 내에 있는 경우가 많아 접근이 쉽지않은 데다 지뢰가 매설된 곳도 있어 군의 협조 없이는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덕진산성에서는 지난해 시굴조사 첫날 지뢰가 나와 육군 화랑대연구소 조사단이 가슴을 쓸었다고 한다.

둘레 600m,높이 65m의 덕진산성에서는 동쪽으로 초평도가 보였고 서쪽으로는 개성으로 가는 통일대교가 보였다. 산성 둘레에는 근래 만들어진 참호가 군데군데 있어 고구려 성벽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온전한 고구려 성벽은 성 한켠 수십m뿐이었다.

성 출구쪽으로 가자 넓은 띠 모양의 긴 검정색 비닐이 아무렇게 버려진 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군 관계자는 “성벽이 많은 곳에는 구멍이 많이 생겨서 뱀이 아주 많이 산다”면서 “주민들이 뱀을 잡기위해 쓴 비닐을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덕진산성은 서쪽과 동쪽에 각각 수내나루와 덕진나루가 있어 강을 건너는 길목. 덕진산성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오두산성이 광개토대왕비에 등장하는 각미성(閣彌城)이라는 학계 보고가 사실이라면 당시 고구려 군대는 덕진산성 앞에서 도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두산성은 임진강과 한강 합류지점으로 물이 깊지만 덕진산성은 초평도를 끼고 있어 여울이 형성돼 도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희대 박물관은 최근 발굴조사 보고서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고루 출토된 오두산성을 삼국사기에서 전쟁터로 여러 차례 언급한 관미성(關彌城)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광개토대왕비의 각미성과 같은 지명으로 추정되는 관미성의 위치가 경기 강화도,황해 예성강 부근이라는 종래 학설과 달리 임진강 하구라고 해석한 것이다.


: 연천・파주=강주화기자 rula@kmib.co.kr
도움말 : 고려대 최종택 교수,육군사관학교 이 재 교수,충북대 차용걸 교수,서울대박물관 양시은 연구원,경희대박물관 김희찬 책임연구원
사진 : 김지훈기자
공동기획 : 국민일보-고려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후원 : 서울대 박물관,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동행취재 심광주 토지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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