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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60 특별기획 "분단이 잉태한 비운의 성"
데스크승인 2013.02.04     

 
▲ 덕진산성에서 내려다 본 초평도,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임진강 맞은편 백제를 견제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DMZ 60주년 155마일 재발견 Ⅵ―1 / 분단이 잉태한 비운의 성 ‘덕진산성’ 

지난해 12월20일 찾아간 덕진산성은 임진강 북안(북쪽 기슭)에 닿자 민통선 남측 지형이 훤히 내다 보였다. 굽이진 임진강과 ‘손톱’ 모양의 초평도, 임진강 너머 넓게 펼쳐진 평야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DMZ 문화 유산 전문가인 이우형 현강문화연구소장은 “덕진산성은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지역이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면서 “특히 남동쪽에 있는 초평도는 임진강을 건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 주요 교통로로 이용됐으며, 산성은 이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민통선 안에 있는 덕진산성 터는 삼한시대 마한의 영토였던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덕진산성 터가 삼국시대들어 백제에 편입됐다가 남하(南下)한 고구려 영토로 부속되는 등 삼국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뺏고, 빼앗는 각축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역사에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고구려는 이 곳에 덕진산성을 쌓아 임진강 너머 백제의 장산진을 견제했을 것이라는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이 소장은 “임진강 인근은 삼국시대부터 위에서 내려오려는 고구려와 위로 올라가려는 백제, 신라의 군사분계선 역할을 했다”면서 “덕진산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수 천년의 장구한 역사가 흘렀지만, 덕진산성을 관통하는 유일한 키워드는 ‘분단’이다. 삼국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 순간에도 분단의 한복판에서 허물어진채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임진강이 해자(垓字) 역할을 해주는 천혜의 요새에 터를 자리잡은 덕진산성은 이런 지리적 잇점 때문에 기구한 운명을 났다.

덕진산성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많다. 조선시대~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지리지에 단편적인 기록이 전부다. 최초의 기록은 1670년대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남아있다.

동국여지지 장단도호부 고적조에는 ‘덕진고성은 석축성(돌을 쌓아 만든 성)으로 산을 잘라 거쳐 있고, 단수(湍水·임진강)를 굽어보며 제압하는 형세를 지니고 있다. 오래전에 허물어져 성 둘레는 알 수 없고, 오래전 폐허가 되었지만 광해군때 장단도호부사 이서(李曙, 1580~1637)가 수축(修築)하였다가 다시 허물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1856년 철종때 편찬된 여도비지(輿圖備誌)와 1864년 쓰인 대동지지(大東地志) 장단성지조에는 ‘덕진고성은 장단 남쪽 15리 강변에 있다. 광해군 때 옛 터에 석축을 하였으나 다시 폐(廢·폐쇄)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1909년 기록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덕진산성은 장단도호부의 서쪽에 있는 석축으로 오래동안 허물어졌었다. 광해군때 수축했지만 지금은 허물어진 상태다’라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편찬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도 ‘덕진산성이라고 칭하며 석축으로 둘레는 약 600칸이고 곳곳이 붕괴되었다. 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광해군 때에 수축하였다고 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의 다른 자료에 기술된 내용도 대체로 비슷하다. 

학계에서는 이런 기록을 미루어 짐작할때 덕진산성은 삼국시대때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나 통일 후에는 군사적 기능을 상실했다가 조선 광해군(1609~1623)이 임진강을 도강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복원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덕진산성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과 인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서에서는 덕진산성의 전략적 요충지로써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선조실록 34권에는 1593년 경기 관찰사 이정형(李廷馨)이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란간 선조에게 전쟁의 상황을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정형은 “포천에 주둔한 적이 금화·철원의 적과 서로 연락하며 사방으로 나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또 토벌한다는 기별을 듣고 한 곳에서 합동으로 진을 치고 있으며, 개성의 적은 임진강 하류인 덕진단(德津壇) 근처에 목책을 설치하고 참호를 팠으니 이곳에 웅거해 지킬 계획인 듯 합니다”라고 알렸다.

왜군은 조·명연합군의 반격으로 평양성전투(1592~1593년)에서 평양성을 내주고도 이곳 덕진산성을 지키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진중이던 왜군에 식량 등을 보급하기 위한 중요 거점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라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덕진산성이 함락되면 임진강을 건너오던 보급로가 오히려 역습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실록 1권에는 1623년 덕진산성을 지키던 이서 장군이 인조반정에 가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술년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중략) 마침 이서가 장단부사가 돼 덕진에 산성 쌓을 것을 청하고 이것을 인연해 그곳에 군졸을 모아 훈련시키다가 이때에(1623년 3월12일) 와서 날짜를 약속해 거사하게 된 것이다.’

인조반정은 성공했고, 인조는 당시 실리외교를 중시했던 광해군을 폐위시켜 강화로 내쫓았다. 이이첨(李爾瞻) 등 광해군을 따르던 신하들은 처형을 면치 못했다. 주목할 점은 이서가 덕진산성을 보수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후 인조와 신하들은 덕진산성의 수비 상태를 신경쓴 것으로 보인다.

인조실록 3권에서 비변사는 “본사 당상 한명을 보내어 평산 및 덕진·파주 등 성의 수비 상태를 살피게 하소서”라고 보고했고, 인조는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급히 다시 쌓은 외성은 시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인조실록 19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1628년(인조 6년) 10월12일 도체찰사 김류와 총융사 이서 등은 여러 산성을 순시하고 나서 인조에게 덕진산성의 상황을 보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들은 “덕진산성은 산세의 높고 가파름이 파주성보다는 못합니다. 남쪽으로 큰 강에 임했으나 서쪽은 상당히 낮습니다. 그리고 외성은 이미 다 무너져버렸습니다.(중략)”라고 했다. 성곽으로서 기능을 상실할 만큼 무너져 내렸지만 이후 덕진산성 보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을 종합해보면, 덕진산성은 삼국시대 고구려가 남쪽으로부터 오는 적의 도강을 막기위해 이곳에 성을 축조하고 중요 거점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신라가 이 지역을 장악한 이후 산성을 보수해 사용했지만 전란이 없던 시기에는 성으로서의 유용성이 다소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북진을 늦출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허술하게 관리된 탓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 한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광해군은 임진왜란때 왜군이 쉽게 임진강을 도강해 북진했던 점을 감안해, 성의 확장과 수축을 결정했지만 폐위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소장은 “덕진산성은 그 전략적 입지가 인정돼 조선시대 다시 외성을 확장하는 등 수축해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지금까지 벗겨진 덕진산성의 베일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체계적인 발굴과 조사를 통해 그 가치가 재조명받아야 한다”면서 “향후에는 산성을 복원해 문화적 자원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태기자/dusxo519@joongb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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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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