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고구려인의 발견」(김용만 저)
고구려의 종교 생활
중국인들이 본 고구려인의 종교 생활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부문도 고구려 초기와 후기에 다소 차이가 나지만, 고구려인이 후기에 들어서면서 불교를 믿기도 했다는 정도일 뿐이며, 10월에 하늘에 제시 지내는 동맹행사는 계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들은 고구려인의 신앙 행사를 음사(淫祀)라고 했지만 그것은 중국과는 다른 고구려 고유의 종교생활을 보여주는 표현일 뿐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귀신, 사직(社稷), 영성(靈星)에게 제사지내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만큼 종교적인 생활을 한 사람들로 보인 것이다.
고구려의 왕궁 옆에는 거대한 집을 지어 귀신에게 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 신묘가 두 군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추모왕과 유화부인을 지칭하는 고등신과 부여신의 사당인 것이다. 이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두었다고 했다. 그 밖에도 해(日)와 기자(箕子), 가한(可汗)등의 신을 섬겼다고 한다.
동맹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구려 수도의 동쪽에는 큰 굴이 있는데 그것을 수혈(隨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년 10월이면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수신(隨神)을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 강가 위에 모시고 가서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는데 , 나무로 만든 수신을 신의 좌석에 모신다고 한다. 이 때 왕과 귀족들은 전부 비단에 수놓은 의복과 금과은으로 치장한 화려한 복장을 하고 식장에 나온다고 했다. 또 고구려에서는 군사적으로 큰 일이 있을 때에도 제천행사를 거행했는데, 이 때에는 소를 죽여서 그 발굽이 갈라지고 합치는 모습을 통해 좋고 나쁨을 판단했다고 한다. 이것은 은(殷)나라와 부여의 제사와 점을 치는 풍습을 이어받은 것이다. 고구려는 이렇듯 고유한 종교 신앙을 멸망 할 때까지 거의 변함이 없이 가지고 있었음을 중국인들의 견문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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