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성 - wikia.com

실직성(悉直城)은 삼척의 산성이다.
 
고구려는 신라의 왕위계승문제까지 간섭하여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위에 올린다. 고구려로부터 벗어 나려는 눌지왕은 433년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는다.

신라의 실직성에서 고구려 장수가 살해되고, 경주에 주둔하던 고구려군 100여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된다. 468년(장수왕 56)에 고구려는 말갈 군사와 함께 신라의 실직성을 공격하였다. 481년에는 호명성( 狐 鳴 城 ) 등 7성을 함락시켜 미질부( 彌 秩 夫 :경북 흥해)까지 진군하였다.

자비 마립간 11년 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에 하슬라 사람 가운데 나이 15세 이상 되는 이들을 징발해 이하에 성을 쌓았다.

출처 : http://ko.castle.wikia.com/wiki/%EC%8B%A4%EC%A7%81%EC%84%B1



5세기 중·후반 고구려의 남진양상과 대신라 공방전의 전개  - 연세대학원신문 

2) 신라의 대고구려 방어성 구축 신라가 고구려의 실직성 공략 후 하슬라(강원 강릉)사람들을 동원해서 니하(신라시대 한강 상류를 지칭)에 성을 쌓은 까닭은 삼척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직성 서북쪽에서 쳐들어 오는 세력의 방어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니하성을 정선군의 송계리 산성으로 비정한 최근 일련의 연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신라로서도 실직성에 고구려군이 주둔한 상태라면 하슬라에서 대규모의 국민을 동원해 축성사업을 벌이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가 물러간 후 삼척의 실직성을 방어하기 위해 니하성을 축조한 것 같다. 신라가 소백산맥의 서북쪽 너머에 축성사업을 했던 까닭은 소백산맥의 지형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곧 소백산맥의 북사면이 남사면보다 경사가 완만해서 고구려군이 군사작전 시에 신라군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gradnews.org/tc/495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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