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sycjs/20008473767
한국의 산성(67) -고구려 백마산성(白馬山城, 평북 피현)
소재 : 평안북도 피현군
지정 : 북한 사적 제32호
크기 : 외성둘레 2,430m, 내성둘레 2,590m
평북 피현군 백마산 410m 고지에 위치한 고구려시대 산성.
고려 조선시대에 덧쌓았다. 이 산성은 사방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적의 동정을 살피거나 퇴로를 차단하는데 안성맞춤이다. 대부분 성벽 바깥쪽은 돌로 쌓고 그 안쪽에 흙을 채워 돌을 받쳐주는 편축(片築)방식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져있으며 그 둘레는 내성이 2.6Km 외성이 2.4Km, 높이는 6m 내외.
북한의 사적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성의 둘레는 2,430m, 내성의 둘레는 2,590m이다. 고구려 때 처음 축조하였고 고려·조선 때 다시 쌓은 산성이다. 북으로는 의주, 남으로는 용천(룡천)과 피현 일대의 사면팔방을 굽어볼 수 있어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북으로는 압록강을 건너 랴오둥[遼東]지방과 통하고 남으로는 선천군·정주군·안주군·구성군을 거쳐 평양시에 이르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북쪽에서 침입한 외적들은 의주를 지나 이곳을 점령목표로 삼았다.
내성은 고구려 때 쌓은 우마성을 기초로 하여 1014 ~17년에 강감찬의 지휘로 다시 쌓은 것이다. 내성의 성벽은 대부분 우마성 자리에 다시 쌓은 것으로 북장대에서 동쪽과 남쪽의 산등성이에 벽을 쌓고 두 성벽의 동쪽과 남쪽 끝을 잇대어 남쪽 벽을 쌓았다. 그 남쪽에는 외성의 성벽을 이어서 쌓았다.
▲ 백마산성 현충사
외성은 1753년 쌓은 것으로 성벽 안에 막돌과 흙을 채워 넣었으며 높이는 5~7m이다. 성벽에는 각루와 치를 설치하였던 자리가 남아 있다. 내성과 외성의 네 문에는 무지개문을 냈던 자리가 남아 있으며, 특히 외성 남문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문루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성 안에는 13개의 못과 32개의 우물 터가 있으며 여러 채의 무기고와 식량창고, 집터 등이 있다. 1018년 거란군군이 압록강을 건너 침입했을 때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 중세의 성곽 건축과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성이다.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산 4백10m 고지에 위치한 백마산성의 내성(內城)남문 (북한의 사적 제 32호).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룬 무지개 모양의 홍예성문이 아름답다. 고구려시대에 처음 쌓고 고려, 조선시대에 개축(改築)해온 성이다. 대부분 성벽 바깥쪽은 돌로 쌓고 그 안쪽에 흙을 채워 돌을 받쳐주는 「편축(片築)」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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