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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장수 산성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 일대, 약 10.5km에 달하는 험준한 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장수산성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산성이다. 장수산성의 앞쪽에서는 경주나 부여에 맞먹는 거대한 도시유적과 함께 313년이라는 제작연대가 새겨진 벽돌 왕궁의 건설때만 사용하는 암치와 막새,회랑, 행궁터등 대규모의 도시유적과 유물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유적을 북한은 고구려가 남방정책의 기지로 사용키위해 건설한 남평양이라고 주장한다. 장수산성 근방에 이미 4세기에 남평양이라는 거점을 마련했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고구려가 일찍이 세력을 다투고 있었고 백제와 겨루고 있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고고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
 
남평양은 고국원왕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371년, 백제와의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사망한 지역을 평양성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북한학자들은 이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남평양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이 삼국사기 지리지 잡지의 기사, 이곳에 보면,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남평양을 빼앗아 도읍으로 삼았다고 적고 있다. 북한학자들은 이 두 기록이 바로 역사적으로 일찍이 남평양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그 남평양이 최근에 대규모 도시유적이 발굴된 장수산성일대라는 것이다.

상당히 근거가 있다. 고국원왕이 전사한 전투는 남평양에서 이루어졌다. 지리지에 근초고왕이 남평양을 점령했다는 기사 나온다. 기본적인 뒷받침도 되고 그래서 꼭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얘기하는 대동강유역의 평양까지 밀려 올라가서 거기서 전사한게 아니고 황해도의 남부지방인 장수산성 쪽에서 전사한 거다. 그건 본래의 백제하고 대방이나 고구려의 근거가 됐던 것은 예성강쯤으로 생각하는데, 예성강쪽에서 장수산성이 있는 곳까지 밀려서 올라간 거다.

북한의 주장대로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지가 평양이 아니라 남평양이라면, 이것은 그동안 고국원왕설의 최대 약점이었던 부분을 해결해주는 중요한 사실이다. 371년에 고국원왕이 평양에서 죽었다. 그러면 반드시 평양보다 후방인 뒤에 무덤이 있어야지 ,평양의 앞에는 전선인데 여기는 무덤이 있을수 없다. 남한학자들이 생각하는 논리였다.

장수산성은 평양보다 훨씬 남쪽인 황해도다. 황해도에 장수산성이 바로 남평야이다,이게 밝혀짐으로 해서 만약 남평양에서 죽었다면 거기보다 약 100리쯤 후방인 안악에 묻힌다는 것이 당위성있는 얘기다. 때문에 장수산성유적이 왕릉설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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