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99>후고려기(後高麗記)(12)"에서 목저주/목저성 관련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47173661
목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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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저주
[丁亥, 小野朝臣田守等至自渤海. 渤海大使輔國大將軍兼將軍行木底州刺史兼兵署少正開國公揚承慶已下廿三人, 隨田守來朝. 便於越前國安置.]
정해(18일)에 소야조신(小野朝臣, 오노노아손) 전수(田守, 다모리) 등이 발해에서 돌아왔다. 발해대사(渤海大使)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 겸 장군 행목저주자사(行木底州刺史) 겸 병서소정(兵署少正) 개국공(開國公) 양승경(揚承慶) 이하 23인이 전수(田守)를 따라 내조하였다[來朝]. 월전국(越前國, 에치젠노쿠니)에 안치시켰다.
《속일본기(續日本紀, 쇼쿠니혼키)》권제21, 천평보자(天平寶字, 덴표쇼호) 2년(758) 9월
소야전수(오노노 다모리)라는 자는 일본에서 발해에 파견한 사신이었다. 그렇게 발해를 홀대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났는지, 일본에서 먼저 사신을 보내왔다.
이들 사신이 오갈 때면 항상, 그 사신의 귀국길을 배웅하는 송사(送使)가 뒤따랐다. 일본까지 소야전수(오노노 다모리)를 배웅한 것은 보국대장군 겸 행목저주자사 병서소정 개국공. 송사단의 수장 양승경이 맡았던 관직의 이름이다. 보국대장군이라는 것은 봉호이고, 목저주는 옛날 고려의 목저성이 있었던 곳ㅡ지금의 중국 요령성 소자하 상류의 오룡산성(五龍山城)이라는 곳이 곧 목저성이다.
이곳은 옛 고려의 남북 두 길 가운데 험준한 남쪽의 길목에 있었다. 고국원왕 때 선비족의 전연이 이 길을 따라 고려로 쳐들어와 환도성을 불태웠고, 려당 전쟁 때에는 당군이 남소성 및 창암성과 함께 이곳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국내성으로 향했다. 당은 이곳에 목저주도호부를 설치했지만, 발해에 의해 이곳은 다시 수복되어 발해의 주가 설치된 듯 하다. 그리고 그 주의 자사로서 양승경이 임명된 것인데, '임시직'을 뜻하는 '행'이라는 글자가 앞에 붙어있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한다. 아직 이곳에 설치된 목저주가 완벽하게 제 구실을 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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