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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효의왕후와 원빈홍씨의 악연, 실제 역사에선..
[뉴스엔] 입력 2008.04.01 07:15 [뉴스엔 조은영 기자]
3월 31일 MBC 월화사극 '이산' 56회 방영분에서 효의왕후(박은혜)와 원빈 홍씨의 질긴 악연이 본격화됐다. 실제 역사 속 두 사람의 대립관계는 드라마 ‘이산’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월화사극 ‘이산’에선 홍봉한이 자신의 집안사람임을 들어 홍국영의 누이를 혜경궁 홍씨에게 추천한 것은 물론 혜경궁 홍씨가 나서 홍국영의 권세에 날개를 달아주려 했지만 실제 13살이란 어린 나이의 원빈 홍씨가 정조의 후궁으로 입궁하게 된 것은 오빠 홍국영의 야심 때문이다.
홍국영의 집안은 10촌 할아버지뻘인 홍봉한, 정순왕후와 인척관계에 있는 어머니 등 이미 왕실과 연혼 관계를 맺으며 오랫동안 서울을 근거로 뿌리를 내린 특권적 문벌 가문 중 하나다. 또 현 노론계를 주도하는 중심 세력들 대부분이 왕실과의 연혼관계를 바탕으로 부상한 가문들이었던 만큼 홍국영 역시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누이를 후궁으로 들이고 조정 뿐 아니라 궁궐 안에도 자신의 탄탄한 우군을 만들고자 했다.
때문에 당시 도승지와 숙위대장직을 겸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오빠 홍국영과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은 원빈 홍씨의 가례는 정비 효의왕후가 살아있음에도 계비 가례 형식으로 거창하게 치러졌다. 정조 역시 이 어린 후궁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고 홍국영의 권세는 원빈홍씨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홍국영은 이조 참판, 대사헌 등 요직에 두루 올라 당대의 세도가로 명성을 날린다.
하지만 당시 원빈 홍씨의 나이가 워낙 어렸기 때문에 월화사극 '이산'이 그렸던 것처럼 상상임신을 하고 중전인 효의 왕후와 직접 맞서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빈 홍씨는 홍국영에 대한 반대파의 반감이 극에 달할 무렵 후궁이 된지 1년 만에 후사도 보지못한 채 병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원빈 홍씨의 죽음을 이상히 여긴 홍국영은 효의왕후가 독을 타 사사시킨 것으로 판단, 내전 나인들을 잡아 혹형을 가하거나 독살 증거를 찾기 위해 마음대로 국문을 가했다. 효의왕후와 어린 원빈 홍씨의 직접적인 대립은 없었지만 원빈 홍씨의 죽음으로 인해 홍국영과 효의왕후의 사이에 큰 갈등이 점화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효의왕후에 대한 핍박은 정조의 도덕성을 공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집안을 공격하는데 앞장선 홍국영을 좋게 볼리 만무했던 혜경궁 홍씨와 효의왕후, 정순왕후는 물론 조정 대신들 모두를 그의 적으로 돌아서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홍국영은 삼사의 집중적인 탄핵을 받고 원빈 홍씨의 장례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관직에서 물러나 실각하게 된다.
하지만 짧은 삶을 살다간 어린 후궁 원빈 홍씨에 대한 처우를 보면 후사가 없이 요절한 후궁에게 이례적으로 왕위계승권을 잇는다는 의미의 근본 ‘원’자가 쓰여진 원빈이란 작호가 내려지고 그 무덤의 이름이 '인명원'이라 불린 것만으로도 원빈 홍씨에 대해 정조가 어느 정도 안배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홍국영의 왕위계승권에 대한 지나친 간섭과 전행을 휘두르던 홍국영으로 인해 후사를 잇지 못하던 효의왕후가 받았을 고통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은영 helloe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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