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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서경압록부 (西京鴨綠府)
당나라 및 발해교포들의 통로- 이른바 조공도(朝貢道)
발해는 지방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5경(京), 15부(府), 62주(州)라는 행정조직을 운영하였고, 5경 중에서 상경(上京)과 중경(中京), 동경(東京)을 수도로 이용하였다. 어느 특정 도성만을 수도로 하지 않았지만, 서경(西京)과 남경(南京)은 수도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도성들도 다른 3경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압록조공도(鴨綠朝貢道)"의 중심 도성이 서경(西京)이고, 신라와의 관계에서 "남해신라도(南海新羅道)"의 중심 도성이 바로 남경(南京)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수도성(首都城)성이었던 3京 중심이었다. 그나마 남경 남해부 연구는 고고학의 힘을 얻어 북한에서 비교적 활발하여 남경을 북청(北靑)으로 보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압록부(鴨綠府)의 부치(府治) 중심지였던 서경의 경우에는 다른 도성에 비하여 그 실상을 잘 모른다. 그 위치만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만을 가지고는 완전하게 중국 길림성(吉林省) 임강시(臨江市)라고 단언하기 어렵고, 압록부의 치소(治所)였던 환주(桓州)나 풍주(豊州), 정주(定州)의 위치도 확실하지 않다. 물론, 15부의 치소였던 각 주의 위치는 다른 곳에서도 기록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그렇게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적어도 다른 4京의 위치만큼은 의견이 비교적 일치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즉, 상경은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 발해진(渤海鎭)으로 오래 전부터 이미 밝혀졌으며, 중경은 구국(舊國) 지역인 돈화(敦化)설과 서고성(西古城)설이 함께 제기되어 오다가, 정효공주묘(貞孝公主墓)의 발굴로 인해 서고성설(西古城說)로 굳어졌다. 남경도 함흥(咸興) 및 북청설이 제기되어 오다가, 발굴 성과에 힘입어 북청설이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본도의 출발지로 알려진 동경의 경우에도 훈춘의 팔련성 자리를 유력하게 보고 큰 이견이 없다. 단지, 최근 북한에서 동경을 청진 부거리 유적에 근거하여 이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변화라고 하겠다.
발해의 5경·15부·62주는 처음부터 한꺼번에 형성된 것은 아니었고, 발해의 영역 확대와 더불어 점차 정비되어 갔다. 제1대 高王 大祚榮에서 제2대 武王 大武藝代까지는 제도가 성립되었던 시기, 제3대 문왕(文王) 대흠무(大欽茂)대에는 제도가 정비되었던 시기, 그리고 제10대 선왕(宣王) 대인수(大仁秀)대에는 제도가 완비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 실시되었던 5부제의 전통을 이어 받고 당나라의 5경·5부제를 본받아 실시된 발해의 5경제는 문왕대에 실시되었다. 지금까지 5경제의 실시시기에 대해서, 늦게는 대인수대 빨라야 문왕 후기 즉, 상경 수도시기 이후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필자는 문왕 전기인 현주(顯州) 수도시기 즉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시기(천보연간/天寶年間 742∼756)에 5경이 설치될 수 있었다 본다.
5경제는 776년 발해 문왕 40년에 남해부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발해의 5경제가 실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발해의 5경제가 당의 5도·5경제가 성립된 이후에야 실시되었다고 하는 견해는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발해는 고구려의 5부제에 대한 전통을 갖고 있었고, 신라 등이 5소경제(小京制)도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필자는 서경을 포함한 발해의 5경제는 구국(舊國)에서 현주(顯州)로 수도를 옮기고 난 후인 천보 연간(天寶年間)이거나, 늦어도 수도를 상경으로 옮기고 난 직후인 문왕 전기에 실시되었다고 하였다. 발해가 상경으로 이름을 짓고 천도할 즈음에 이미 5경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등장하고 있지 않은 서경이나 중경, 남경도, 빠르면 발해가 현주에서 상경으로 천도하기 전이나 늦어도 상경으로 옮긴 직후에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구국에서 현주로 옮겨질 때에, 이미 현주라는 주명이 5경과 함께 동시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다만, 상경은 천도 전에는 "북경(北京)"으로 불리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발해(渤海)의 주현(州縣)은 발해 건국 초기인 대조영대부터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15부는 5경제와 함께 정비되었을 것이다. 15부 중의 5부 즉, 5경 지역의 부는 5경 설치 시기와 같은 시기 또는 5경보다 앞선 시기에 설치되었다.
서경의 위치에 대해서는 임강시설(臨江市說)이 지배적인 가운데, 집안설(集安說)도 아직 힘을 잃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한 이유는 임강시 지역의 유적과 유물이 서경이라 할만한 것이 아직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두 지역이 일정하게 압록부의 수주(首州) 즉 서경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임강시인 신주(神州)가 압록부의 수주가 된 것은 5경제가 형성되는 초기부터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수주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환주(桓州)"집안(集安)"에서 신주(神州)"임강(臨江)"로 서경이 옮겨졌을 것이다.
서경 임강설이 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압록강 남안(南岸)인 북한 지역을 포함해서, 임강시 주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보다 계획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집안설도 적극적으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신주·환주·풍주(豊州)·정주(正州)라는 4개 또는 6개의 주와 11개 이상의 현으로 조직되어 있던 압록부는 신주와 환주가 그 중심이었다. 그 밖의 풍주와 정주의 위치도 대강 짐작하고 있다. 이들도 서경의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신당서(新唐書)≫가 서경이 임강 지역부근의 신주를 중심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복원할 수 있다.
녹주(淥州)의 동북 210 리에 있었다는 풍주는 무송현(撫松縣) 신안고성(新安古城)과 정우현(靖宇縣) 유수천고성(楡樹川 古城)이 있는 지역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곳의 지리조건이나, 유적과 유물, 성의 규모 등으로 보아 신안고성(新安古城)과 그 자매성인 유수천 고성(楡樹川 古城)이 있는 지역을 풍주(豊州)의 소재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류왕(沸流王)의 고지(故地)"에 있었다는 정주(正州)는 비류수(沸流水)를 부이강(富爾江)으로 보고, 그 주변의 통화현(通化縣)과 신빈현(新賓縣), 환인현(桓仁縣) 등에서 찾을 수 있으나, 환인현설(桓仁縣說)에 주목할 수 있다.
압록부는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으로 접근하는 중요한 통로였다는 점에서도 그 위치적 중요성이 있다. 당나라의 입장에서 기록된 "조공도(朝貢道)"라는 명칭도 "신라도(新羅道)"나 "일본도(日本道)", "영주도(營州道)"와 같이 "등주도(登州道)", "압록도(鴨綠道)"로 부르는 것이 보다 발해사적인 표현일 것이며, 그 기능은 당나라와의 정치적인 목적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교역로로도 이용하였으며, 당나라 변방세력과의 우호관계를 비롯해서, 등주에 설치되었을 발해관(渤海館)이나 발해원(渤海院)에서 활동하고 있던 교포 발해인들과의 교류 및 지원을 위해서도 많이 활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한규철, <발해의 서경압록부 연구>(《한국고대사연구》14, 한국고대사학회, 19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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