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6097

돈화성산자산성 [敦化城山子山城]

크기(높이,길이,둘레,깊이) 성벽 둘레: 약 2㎞, 현존 높이: 1.5~2.5m
소재지 중국 길림성 돈화시 현유향 성산자촌
집필자 정원철
  

돈화성산자산성 실측도

중국 길림성 돈화시 현유향 성산자촌(城山子村)에 있는 발해시대의 산성.

돈화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은 돈화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12.5㎞ 떨어져 있으며, 목단강(木丹江) 상류 지류인 대석하(大石河)의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대석하는 이 산성 북쪽에서 약 4.5㎞ 동쪽으로 흘러 목단강으로 유입된다. 이 산성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목단강 건너편에는 영승(永勝) 유적이 있고, 북동쪽 15㎞ 떨어진 지점에는 오동성(敖東城)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북동쪽 7㎞ 지점에는 육정산고분군(六頂山古墳群)이 있다. 2006년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다.

[내용]

성산자산성의 평면 형태는 불규칙한 타원형이다. 성벽은 해발 600m에 이르는 성산자의 산봉우리와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데,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성벽 둘레는 약 2㎞이며, 남아 있는 높이는 1.5~2.5m이다. 성벽의 아래 너비는 5~7m인데 어떤 구간은 10m가 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산성의 북쪽은 수면에서 약 40m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벽은 상대적으로 낮은 높이로 축조되었다.

성문은 동문과 서문이 있다. 개구부(開口部)는 각각 3m와 4m로 서문의 크기가 약간 크며, 두 성문 안쪽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어지는 둥근고리 형태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내일은요

남벽에는 3개의 치(雉)가 남아 있는데, 첫 번째 치는 서문에서 약 36m 떨어져 있다. 두 번째 치는 첫 번째 치에서 약 80m, 세 번째 치는 두 번째 치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다.

동문 안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는 반지하식 집터가 50여 기 이상 확인되었다.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크기가 큰 것은 8×6m, 작은 것은 6×4m 정도이다. 집터는 성 안의 비탈을 따라 북쪽을 향해 경사져 있다. 집터의 남벽 밖으로는 도랑을 하나씩 팠는데, 도랑은 집터의 동서 양쪽으로 나 있어 비탈 아래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유도하여 집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집터의 기초 중간에는 깊이가 얕은 구덩이를 파고 네 벽은 흙을 쌓아 만들었다. 남아 있는 벽의 높이는 20~40㎝이다. 각 방은 모두 하나씩의 문이 나 있는데 대부분 동쪽을 향해 있으나 일부는 북쪽을 향해 나 있는 것도 있다. 산성의 남쪽 경사지와 약간 서쪽에 치우친 곳에도 집터가 일부 남아 있다.

서문에서 약 100m 떨어진 약간 서북쪽에 치우친 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못이 있다. 못의 지름은 4.6m이며, 깊이는 1m이다. 산성 동쪽의 큰 집터 아래쪽에도 커다란 저수지가 남아 있다. 그밖에도 산성 중앙에는 한 변 길이가 약 100m에 이르는 연병장과 같은 평지가 확인되었다.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철제 창머리〔牟頭〕, 쇠칼〔鐵刀〕, 쇠화살촉〔鐵鏃〕, 개원통보(開元通寶)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성산자산성은 대체로 발해 초기의 유적으로 판단되는데, 특히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동모산성(東牟山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리적 위치를 통해 볼 때, 이 산성은 길림지역에서 발해 ‘구국(舊國)’ 도성이 있었던 돈화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어, 오동성(敖東城)의 위성으로서 군사적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敦化城山子山城考察記」(徐學毅,『北方文物』2006年 4期)
「城山子山城」(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敦化市文物志』, 1985)
「渤海東牟山考」(劉忠義·馮慶余,『松遼學刊』1984年 1期)
「吉林敦化牡丹江上游渤海遺址調査記」(王承禮,『考古』1962年 11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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