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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다시 보자 2] 벽화로 본 고구려…<11>반라의 力士
기사입력 2004-03-29 18:45:00 기사수정 2009-10-10 01:37:12
고구려 벽화의 대표적 씨름도로 꼽히는 중국 지린성 지안의 각저총 안 칸 오른쪽 벽화. 고구려 남성과 서역인(몸기준 왼쪽)으로 보이는 남성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지팡이를 잡고 있는 오른쪽 노인은 심판으로 추정된다. -사진제공 이태호교수
《벽화 가운데 고구려의 넘치는 에너지는 역사상(力士像)에 나타난다. 웃옷을 벗은 반라(半裸)의 육신이 남성적 야성미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사신총의 역사상이 그 대표급이다. 보디빌딩으로 잘 다듬은 듯한 근육미를 뽐낸다. 상체를 벗어 드러난 검붉은 피부의 가슴근육, 팔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울뚝불뚝하다. 허벅지의 터질 것 같은 근육은 바지의 옷 주름으로 드러나 있다. ‘미스터 고구려’를 선발하는 육체미 경기에 선수로 출전하면 금메달감이다. 고구려 몸짱인 셈이다.》
벽화 가운데 고구려의 넘치는 에너지는 역사상(力士像)에 나타난다. 웃옷을 벗은 반나(半裸)의 육신이 남성적 야성미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중국 지린성 지안현 사신총의 역사상이 그 대표급이다. 보디빌딩으로 잘 다듬은 듯한 근육미를 뽐낸다. 상체를 벗어 드러난 검붉은 피부의 가슴근육, 팔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울뚝불뚝하다. 허벅지의 터질 것 같은 근육은 바지의 옷 주름으로 드러나 있다. ‘미스터 고구려’를 선발하는 육체미 경기에 선수로 출전하면 금메달감이다. 고구려 몸짱인 셈이다.
● 미스터 고구려와 수박희
사신총의 사내는 오른팔을 안으로 구부려 손에 긴 창을 비스듬히 잡고, 왼팔을 뒤로 뻗어 황금색 무구(武具)를 손에 쥐고 있다. 오른발을 앞으로 굽혀 하체를 낮추고 힘차게 내딛는 자세다. 코가 둥근 검은 신발을 신고, 장딴지에는 바지 위로 행전(行纏)을 치고 끈으로 동여매었다. 이 역사상은 무덤 입구에 해당되는 안길에 배치돼 있으니 수문장인 셈. 그런데 울룩불룩한 머리 모양새에 올린머리를 묶은 색띠가 나풀거리고, 퉁방울눈에 벌린 입의 얼굴이 과장돼 있다. 무덤 지킴이의 의미를 강조한 무인(武人)으로, 사찰에 모셔진 금강역사상이나 사천왕상 같은 신장(神將)의 이미지다.
이보다 한 세기 전에 조성된 5세기 지린성 지안의 장천 1호분에도 신장상이 보인다. 천장받침의 구석 고임돌마다 양팔을 올려 마치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들고 있는 자세로 그려져 있다. 후기에 비해 묘사 기량은 떨어지지만, 상체를 벗은 역사의 힘깨나 쓰는 표정이 재미있다.
이러한 수호신상을 보면, 고구려의 청소년들이 말타기와 활쏘기를 병행해 몸만들기에도 소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라에서는 힘센 거구의 장사들을 별도의 집단으로 양성했으리라 추정된다.
고구려인들은 맨손 격투기를 통해서도 몸만들기에 나섰을 것이다. 벽화에 등장하는 씨름이나 태권도와 유사한 이른바 수박(手搏) 장면이 그 실상을 알려준다. 벌써 4세기 중엽 황해도 안악 3호분 앞 칸 동벽 상단에 삼각팬티만 입은 두 역사의 대련이 그려져 있다. 손을 펴고 공격과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역사들의 몸매가 엉망이다. 가슴이 좁고 배는 불룩해 해학이 넘친다. 말 그대로 ‘몸꽝’ 들의 수박희(手搏戱)다. 5세기 중국 지안현 무용총 천장화의 수박도는 제법 긴장감 넘치는 두 역사의 대련을 보여준다. 비교적 동작 묘사도 정확하고, 하체가 단련된 체형이다.
씨름장면은 중국 지안현 장천 1호분과 각저총에 보인다. 장천 1호분의 씨름은 앞 칸 왼쪽 벽의 사냥과 칠보행사 등 대축제 장면에 섞여 있는데, 벽면의 맨 왼쪽 상단 구석에 작게 그려져 있다. 두 사람이 팔로 상대방의 허리춤을 쥐고 힘쓰는 모습은 조선후기 풍속화의 씨름그림이나 지금의 천하장사 씨름대회와 유사하다. 1500년 이상 사랑해온 우리의 전통민속인 셈이다.
● 각저총 씨름도는 국제 격투기 장면?
고구려의 씨름도로는 단연 지린성 지안의 각저총 안 칸 오른쪽의 벽화를 꼽는다. ‘각저(角抵)’라는 고분 이름도 바로 씨름의 한자식 표현인 것이다. 천장에는 붉은 태양 아래 삼족오(三足烏)가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벽에는 나무그늘에서 씨름판이 벌어진 모습이 묘사돼 있다. 벽면 중앙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집안에서 신성시한 거목이다. 나무에는 까마귀 네 마리가 표정을 달리한 채 가지에 앉아 있으며, 밑 둥지 좌우에는 부엌 앞의 개 두 마리가 보인다.
씨름은 서로 맞붙어 막 힘겨루기를 시작한 자세이다. “으라차”하며 괴성의 기합을 넣는 듯, 앞니를 드러내고 입이 살짝 벌어져 있다. 두 사람 다 검은색 팬티차림이다. 오른편 인물은 사타구니를 질러 허리춤에 묶은 흰 샅바를 하고, 왼편 인물은 샅바가 없다. 씨름장면 오른편으로 양손을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이 심판인 듯하다. 흰 바지에 검은 선(선)의 황갈색 저고리를 받쳐 입고 있다. 이들 위로 빈 공간에는 구름이 날고 있다. 먹 선묘로 추상화한 운기문(雲氣文)이다. 5세기의 가장 풍속화다운 벽화로 꼽을 수 있겠다.
헌데 씨름하는 두 인물의 머리 모양새와 골격이 서로 다르다. 맨머리로 올린 오른쪽 인물은 코가 직선으로 날카롭고 가는 눈매이다. 분명 우리 얼굴과 별반 다름없는 고구려인이다. 이와 달리 앞 상투의 왼편 인물은 이국적이다. 매부리코에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간 송편 형태의 눈 모양을 하고 있다. 중국인도 아니고, 페르시아나 터키 사람쯤으로 여겨진다. 이 벽화는 묘주인이 외국손님과 씨름을 벌인 추억의 장면일 법하다.
이처럼 외국인과 힘자랑을 벌일 정도이니, 고구려가 중국은 물론 서방의 먼 나라들과 얼마나 활발히 교류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각저총과 인접한 무용총의 묘 주인이 인도 지역 승려를 맞이하는 접견도와 더불어서 그렇다. 고구려의 문화가 그같이 밖으로 열린 마음을 품었기에, 당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문화사에 빛나는 최고를 창조했다. 고분벽화가 그것을 선명하게 증거하듯이.―2부 끝―
이태호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
● 마름모꼴 천장 로마-인도양식 영향받은 듯
고구려는 개방적인 자세로 중국을 넘어 지중해 문화까지 수용해 자기 문화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고구려 문화역량의 자신감이자 대범함의 표현이다.
벽화고분의 가장 뚜렷한 서방적 요소는 천장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4∼7세기 대부분의 벽화고분에 활용된 ‘말각조정(抹角操井)’ 혹은 ‘삼각 모줄임’이라 불리는 구조법이다. 네 벽의 모퉁이에 삼각형 판석을 얹어 가운데에 마름모꼴을 남기고, 그 위에 같은 방식으로 판석을 다시 쌓아 올리는 짜임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고분 안에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대칭의 조형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천장공간을 좁히는 이런 형식은 로마의 신전, 인도의 석굴사원, 시베리아초원 유목민의 가옥 구조 등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또 중국 후한(後漢)시대의 석실묘나 남북조시대의 석굴사원에도 몇 사례가 있지만, 극히 일부에서만 활용됐을 뿐이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유달리 말각조정의 천장 구조를 선호했다. 해·달·별 등 하늘신앙과 더불어 연꽃무늬, 신선, 상상의 동식물 등 벽화를 첨가하면서 그 구조를 전형화해 크게 유행시킨 것이다. 또한 이를 변형해 팔각형 계단식으로 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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