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막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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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大莫離支]는 고구려 말기의 최고위 관직이다. 삼국 시대 후기에 둔 고구려의 으뜸 벼슬로 연개소문이 집권하고 나서 그의 벼슬을 기존의 막리지보다 한 등급 올려 부른 것이다.
 
태막리지(太莫離支)라고도 한다. 대막리지는 고구려 후기 최고 관직인 막리지에서 분화·설치된 상위의 관직으로, 고구려 말기에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스스로 최초의 대막리지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한 후 대막리지가 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구당서 舊唐書〉·〈신당서 新唐書〉 등 중국측 문헌에 연개소문의 관직을 막리지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대막리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대막리지 설치 이전에는 대대로(大對盧)가 고구려 최고의 관등이자 관직이었으나, 대막리지가 설치된 이후에는 대막리지에게 모든 권력을 넘겨주었다. 임기가 3년인 대대로와는 달리 대막리지는 종신직으로서, 연개소문 가문은 대막리지직을 세습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연개소문의 셋째 아들인 남산(男産)은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가 되었다.



대막리지[大莫離支] - 민족문화대백과
집필자 : 이도학
고구려 말기의 관직.

‘태막리지(太莫離支)’라고도 한다. 대인(大人) 또는 대수장(大首長)의 뜻을 지닌 막리지에서 분화, 발전된 행정과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관직이다.
 
막리지는 고구려의 제1품 관직인 대대로(大對盧)와 같은 관직이므로, 대막리지는 태대대로(太大對盧)에 해당한다. 막리지였다가 정변을 통하여 집권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최초의 대막리지가 되었다.
 
≪구당서 舊唐書≫ 고려전(高麗傳) 등 중국의 문헌에서는 연개소문의 관직을 막리지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대막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막리지는 여러 명이 동시에 존재하였고, 3년의 임기에 세습도 가능하였다. 정치적 권한도 국사(國事)에만 한정되고, 군사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하여 연개소문 집권 후 신설된 대막리지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종신 보유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구당서≫ 고려전이나 <천남생묘지 泉男生墓誌> 등에서 보여주듯, 국사와 군사를 모두 장악한 최고관직이었다.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 남생(男生)과 남산(男産)은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강화하고, 강대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실질적인 성격은 대막리지와 같은 것이지만)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라고 하는 관직을 신설하였다. 남생과 남산은 각각 태대막리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한국금석전문』(허흥식, 1984)
『삼국지(三國志)』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
『한원(翰苑)』
『일본서기(日本書紀)』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武田幸男, 『朝鮮學報』 86, 1978)
「高句麗莫離支考」(請田正幸, 『朝鮮歷史論集』 上,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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