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mahan.wonkwang.ac.kr/nonmun/2008non/1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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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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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발해의 외교와 문화에 대한 고찰 - 원광대 http://tadream.tistory.com/7738
* 발해의 외교와 문화에 대한 고찰 - 엄윤희"에서 "3. 발해의 문화 - 1) 건축" 중 "(3) 주거지"과 "(4)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져오고 내용에 맞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 발해의 외교와 문화에 대한 고찰 - 엄윤희"에서 "3. 발해의 문화 - 1) 건축" 중 "(3) 주거지"과 "(4)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져오고 내용에 맞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발해의 건축
(3) 주거지
지금까지 발해 시기 살림집터라고 알려지고 있는 것들은 여러 곳이 있지만 살림집의 평면 및 구조 형식을 비교적 잘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은 상경성 궁성 내 살림집터와 제4궁성터 서쪽에 있는 별채터이다.
이들 발해 살림집 유적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적의 평면 구성은 3개의 방이 일렬로 늘어선 ‘ㅡ’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양쪽 방에 가운데 방을 구성한 3칸 일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 동북 지방에 있는 대부분의 살림집들은 이러한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살림집들이 모두 남향을 하고 있다. 셋째, 기단이 있고 그 주변에 물도랑을 둘렀다. 넷째, 살림집에는 몸칸 주위에 툇간을 두르고 있다. 이 지역은 겨울 기온이 영하 25℃까지 떨어지는 추운 지역이다. 따라서 이러한 툇간 구성은 필수적인 평면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ㄱ’ 평면의 긴 고래 구들을 놓고 큰 규모의 굴뚝을 설치했다.43)
온돌의 존재는 남 ·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모든 나라에서 우선적으로 꼽고 있는 발해 건축의 특징이다. 집안(集安) 동태자(東台자) 고구려 살림집터에서도 확인되었듯이 고구려 살림집과 발해 살림집이 동일한 유형임을 밝혀주는 중요한 사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온돌의 존재, 온돌의 구조 방법, 온돌의 형태이다. 발해의 살림집은 그 지역의 환경적 특성과 잘 결합된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고 지금도 이러한 건축적 특징이 그대로 전승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44)
(4) 보편성과 특수성
발해 건축에 대한 연구는 1930년대 일본이 시작한 이래 발해의 영토를 일부분씩 점유하고 있는 중국 · 북한 · 러시아에 의해 계속되었고 최근 들어 부분적으로나마 남한이 참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발해 건축에 관심을 가져왔던 각 나라들은 각기 그들의 입장에서만 발해의 건축 문화를 해석하고자 하여 발해 자체의 건축 문화는 소외시키는 오류를 범해왔다. 건축문화를 형성하는 사항 가운데 기후 · 풍토를 포함하는 자연 환경이 최우선이 되며,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인문 환경도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즉, 건축은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발해의 건축 유형은 위아 같은 자연 환경과 인문 환경 요인에 의해 형성되었고 발전되었음이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의 입장은 그 국가와의 동질적 요소가 있다고 하여 주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인식할 뿐 발해 독자적인 건축문화는 인정하지 않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발해가 가지고 있었던 건축적 특수성은 여러 부분에서 확인된다. 도읍이었던 상경성은 평지에 세워진 발해의 도읍이다. 평지성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는 반드시 산성을 겸하고 있어 고구려를 비롯한 그 지역의 토착 건축문화를 더 닮고 있다. 또한 도성 전체 성곽 및 건물의 기단 부분은 현무암으로 쌓은 다음,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 위에 다시 석회를 발라 면을 마감하였다. 이러한 기단의 축조는 중국 중원 지역의 특징보다는 고구려적 요소가 더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마감한 뒤 석회를 바른 것은 도성을 건설했던 주재료인 현무암의 특성 때문에 여기에 회칠을 추가했던 발해의 건축 표현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주춧돌은 기동자리를 표시하는 주좌(柱座)를 새긴 것도 있지만 주좌가 없는 주춧돌의 경우는 도기 제품의 기둥밑치레 장식을 따로 제작하여 기둥 아래 부분을 덮었다. 이러한 장식은 중국 중원은 물론 한반도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발해만의 독특한 것으로, 그 이전 시기 건물이 주로 평면적 장식이 위주였던 것에서 발해 때 입체적 조각 장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기단 하부 기초 부분에는 기단이 밀리지 않도록 기단모서리에 ‘L’모양의 멈춤개돌을 박아 놓았다. 이러한 건축 구법 및 재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도성 주변에서 생산되는 석재가 모두 현무암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현무암은 화산암인 관계로 가공성은 좋지만 아무리 잘 다듬는다 해도 화강암이나 대리석처럼 표면이 매끄러운 것이 아니라 미세한 구멍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극을 보완하기 위해 석회를 칠하거나 기둥밑치레를 따로 제작하는 기술이 다른 지역보다 발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45)
건축 문화의 특수성에 대해 한 가지 또 언급하고 싶은 사항은 발해의 난방 방식인 구들의 존재이다. 북한에서는 발해의 고구려적 영향 요소 첫 번째로 꼽는 것이 구들이다. 구들의 사용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증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발해의 주민은 고구려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갈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들의 존재는 고구려 및 발해만의 고유한 건축 문화라고 하기보다 당시 그 지역의 보편적인 건축 문화로 인정하는 것이 더 객관적인 해석일 것이다 .이렇듯 모든 건축 문화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병존하게 되며, 아무리 독자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렇지 않을 개연성도 항시 존재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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