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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포해전

1594년(선조 27)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육군과 합동으로 일본군을 공격한 수륙 합동작전.

임진왜란 기간에 이순신()이 9차례 출전해 총 17회에 걸쳐 벌인 크고 작은 해전 가운데서 가장 성과가 작았던 해전이다. 1594년(선조27) 9월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행한 수륙 합동작전으로, 3회의 전투가 벌어졌다. 제1차 장문포해전, 영등포()해전, 제2차 장문포해전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아군 함선 50여 척, 일본 수군 함선 117척이 서로 대치하였다. 10월 1일 조선 수군은 새벽에 거제도 장문포 앞바다에 머물다 영등포로 들어가 왜군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왜군은 바닷가에 배를 대놓은 채 항전하지 않았다. 해질 무렵 장문포 앞바다로 돌아와 뭍에 배를 매려 할 즈음, 적의 포격을 맞아 배에 불이 붙었으나, 번지기 전에 진화하였다.

이후 10월 3일까지 왜군이 항전하지 않는 바람에 소강 상태가 지속되었다. 10월 4일에는 의병장 곽재우(김덕령(金)과 함께 수륙 합동작전을 전개하기로 하고, 먼저 군사 수백 명을 뭍으로 올려 보내 싸움을 걸었다. 이어 저녁 무렵 수륙 합동작전을 벌여 적을 혼란에 빠뜨린 뒤, 돌아와 칠천량()에 진을 쳤다.

총 6일 동안 치른 수륙 합동작전에서 아군은 왜선 2척을 격침시켰다. 아군 피해는 없었으나, 왜군이 항전하지 않아 전과는 미미하였다. 그러나 이 해전의 영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이 해전으로 인해 일대 위기를 맞는다.

장문포해전은 원래 이순신이 계획한 것이 아니라, 경상우수사 원균()이 도체찰사  좌의정 윤두수()에게 건의해 윤두수 자의로 행한 수륙 합동작전이었다. 뒤에 영의정 류성룡(柳) 등에 의해 선조()의 재가를 받아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명령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작전이 전개된 상태였다. 결국 수륙 합동작전은 성공하지 못하고, 2척의 적선만을 격침시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원균의 패전과 장문포 해전 실패 등이 한 원인이 되어 조정이 혼란에 빠졌고, 이 위에 조정에서는 북인 서인 사이에 당쟁이 일어났다. 한편 일본군 요시라의 간첩행위(허위 군사 정보로 조선 조정을 오판하도록 유도하여 이순신을 궁지에 빠지게 함)로 이순신 장군이 정부에 불복종하였다고 하여 처벌되었다. 이로써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
의 휘하로 들어가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장문포해전은 임진왜란 기간에 전황과 조선군의 지휘체계가 흔들리게 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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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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