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5947
"신천지에서는 안 예뻐도 다 인정받았다"
[신천지와 20대 ② - 위로] 그들이 '자기 효능감'에 빠지는 이유
20.03.27 07:29 l 최종 업데이트 20.03.27 07:29 l 글: 이주연(ld84) 이지혜(8463jh)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우리 사회는 뜻밖의 존재를 마주했다. 신천지다. 뜻밖의 사실도 있었다. 3월 24일 0시 기준 9037명의 확진자 가운데 20대 비율이 26.98%(2438명)로 가장 높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신천지 교인 중 20대가 많은 점도 있다"고 밝혔다. 왜 그럴까? <오마이뉴스>는 신천지에서 탈퇴한 20대 청년 3명을 만났다.[편집자말]
서른을 코앞에 둔 서정현(29, 여, 가명)씨는 20대의 1/4을 신천지에서 활동했다.
영어를 잘해서 국제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해외 인사들을 섭외하는 등 활동에 주력했다. 정현씨는 "국제부가 워낙 바쁘고, 일하는데 시차도 있고 하니까 전도 일은 빼줬다"고 했다.
대신 급여도 없고 식사 제공도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준 용돈을 받았고 급할 땐 다이어리 만들고 포장하는 등의 1일 알바를 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2015년부터 2017년 6월까지 그를 버티게 한 건 자부심이었다고 했다.
"시차 때문에 저녁에 주로 신천지 일을 했어요. 새벽 3시쯤 자고 그랬죠. 그 땐 정신력으로 버텼어요. 목표가 있으니 아프지도 않았죠."
정현씨는 "신천지는 다른 신도들이 국제부를 부러워하게 만든다"라며 "만국회의(신천지 내 핵심 행사)를 위해 해외 인사를 섭외하고 통역 의전을 하면서 일반 성도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내가 하는 일을 꿈꾸게 됐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유독 국제부 안에서 '회심자(신천지 탈퇴)'가 없다고 했다.
"국제부 자체를 너무 좋아하게끔 만들어 버려서 거기서 못 나와요. 국제부에 소속되면 엄청나게 프라이드(자부심)를 느끼게 되거든요."
▲ 2016년, 신천지 만국회의 행사 모습 ⓒ 서정현씨 제공
변상욱 전 CBS대기자(현 YTN앵커)가 지난 3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20대가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로 짚었던 '자기 효능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당시 변 대기자는 "문제가 있다고 느껴도 자기 효능감을 느꼈던 짜릿한 기억 때문에 신천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자기 효능감과 인정 욕구
지난 19일 만난 정현씨의 말도 궤를 같이 한다.
"다른 데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것들을 신천지에서는 인정받아요. 여기는 지파(신천지가 전국을 12개로 나누어 운영하는 조직명)별로 필요한 사람이 다 있어요. 예쁘거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이 사람을 필요로 하게끔 만들어 주는 거예요. 신천지 안에서는 다 인정받는 거죠."
앞서 변 대기자는 "실패를 겪은 상태에서 '낙오자다', '분발해라' 등의 소리를 들은 청년들은 대개 자존감이 크게 떨어져있다, 신천지는 이런 사람들의 약점을 파고든다"라며 "당신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허황된 희망의 메시지도 건넨다"라고 짚었다.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청년들이 신천지 안에서 인정받음으로써 '위로' 받고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도하기 위해 진짜 연극팀을 만들거나 심리 상담소를 만들기도 해요. 그럼 본인들이 어떻게든 전도에 도움 되기 위해 자기 능력을 진짜 다 쏟아 부어요. 그럼으로써 인정받으니까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게 만들죠."
물론 그 안에서도 경쟁은 있다. 외모가 빼어날 경우 아나운서를 시키는 등의 선별적 대우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순응하게 된다고 했다. 본인의 쓸모를 찾았기 때문이다.
정현씨는 "사회와 같은 서열 계급이 그 안에도 있고 더 심하지만, 거기에 순응하게 만든다"라며 "어차피 사회에 나가도 신천지보다 (인정받는 위치가) 낮을 걸 아니까, 그냥 이 안에서 순응하며 살게 만든다"라고 했다.
신천지가 조직적으로 신도를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현씨는 신도를 24시간 신천지 영향력 아래 두면서 "반복적으로 딴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만든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났는지, 일어나서 묵상했는지, 오전·오후 나눠서 전도 대상한테 연락했는지 등 모든 스케쥴을 하나하나 윗사람한테 보고하게 돼있다"라며 "아예 자기 생활이 없게 된다"라고 전했다.
▲ 신천지 주최 10만 수료식 장면. ⓒ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유튜브 화면
그렇다면 신천지는 왜 20대 청년들을 필요로 할까?
"청년들은 열정 하나만 있으면 다 하잖아요. 청년들한테 전도 많이 해야 한다고 엄청 닦달 하거든요. 일꾼이 필요한 거죠. 돈을 안 주고 일을 시켜도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거'라고 합리화가 되고요. 더군다나 헌금도 해야 하고 청년회비도 내야 하고 전국체전 한다고 하면 체육 회비도 내야하고... 그런데 이걸 당연시 하고 본인이 아이디어 내면서 열심히 하는데 신천지가 마다할 이유가 없죠."
"신천지에서 나온 청년들이 돌아갈 곳을"
신천지에서 탈퇴한 정현씨가 생활의 안정을 찾는데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도움도 있었다.
정현씨는 2017년 1월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급하게 취직을 준비했다고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 위주로 이력서를 뿌렸다. "신천지 활동에 불편함 없는 곳"을 택했다. 그 때 취업한 곳이 지금 다니는 회사다. 20명 직원 규모의 해외 수출 마케팅 업체였다. 당시 정현씨가 이 곳에서 일했던 기간은 3개월 남짓, 신천지 활동을 알아챈 부모님이 회사를 그만두게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외부와의 접촉도 끊은 상태였다.
"부모님이 이 회사가 신천지 관련 회사라 오해를 하셨던 거예요. 사정을 말하고 그만뒀어야 했는데 하루아침에 제가 없어진 거죠. 회사에서 저를 많이 찾았대요. 신천지에서 제 친구인 척 하고 회사를 찾아오기도 했다더라고요. 2017년 12월쯤, 제가 메신저 프로필 바꾸고 하니 그걸 보고 회사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대표님이 묻지도 않고 받아주셨어요. 제 사수였던 과장님은 제가 신천지였던 걸 알고 계셨더라고요. 과장님 친구가 신천지 경험을 했었나 봐요. 회사에 참 고맙죠."
회사로 돌아와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 보니 일상이 차츰 회복됐다고 한다. 정현씨는 "회사에서 찾아주고 나를 필요로 하는 데가 있다는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저는 어느 정도 대학 생활도 했고 교우 관계도 있던 상태에서 신천지에 들어갔는데, 다른 신천지 동기들은 20살·21살에 들어와서 대학 동기도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신천지를 나와서도 갈피를 못 잡아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그 안에 있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제가 있을 때보다 신도가 엄청 늘었더라고요. (코로나19를) 계기로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계속 의심해보고 두렵더라도 이단 상담소에서 상담도 받고... 하루 빨리 거기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신천지에서 나온 청년들이 돌아갈 곳을 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신천지에, 세상에 상처를 받아 갈 곳 없는 사람이 되지 않게, 그들이 세상을 좀 받아들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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