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된 ‘기초연금’…
박근혜 정부, 노인빈곤 해소 포기?
등록 : 2013.09.22 19:47수정 : 2013.09.23 08:18
자녀에 재산 넘기면 혜택…소득 따른 차등지급 불가능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기초연금제도 시행에 대한 최종안을 오는 26일 발표한다.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한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무부처 장관인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퇴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기초연금 문제가 하반기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애초 공약을 지키는 방안만이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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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장관의 측근은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초연금이 공약대로 결정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장관이 사의를 밝히기로 결심한 것으로 안다”며 “25일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면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일곱달을 넘기지 못하고 진 장관의 사퇴가 거론되는 것은 거듭된 기초연금 후퇴에 대한 비난 여론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 지급’을 내세워 노인들의 표를 얻었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노인들의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액수를 차등지급하는 쪽으로 뒷걸음질했고, 정권 출범 뒤 구성된 국민행복연금위원회에서는 소득 하위 70~80%로 지급 대상을 축소하는 등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정부가 이번주에 내놓을 최종안은 65살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수준이 하위 70% 이하인 이들을 대상으로 소득 또는 국민연금 수령액과 연계해 차등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수급자단체 등 21개 단체가 참여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국민행동)은 노인 1만504가구를 분석한 결과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면 이 제도의 애초 목표인 노인빈곤 해소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 “노인 빈곤해소? 차등지급으론 안돼”
정부가 검토하는 안에 대한 비판은 우선, 기초연금을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지 가르는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소득 하위 70% 이하 노인에게 주고 있는데, 국민행동이 그 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 소득 상위 10%에 드는 노인 단독가구 가운데서도 15.9%가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 하위 30%에 속하는 노인 가운데 4.2%는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노인들의 정확한 소득과 재산을 산출해 연금을 지급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민행동은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면 노인빈곤 문제가 더 왜곡된다. 현재도 노인 소득이 워낙 적고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한 경우도 있어 소득에 따라 수급자를 선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차등지급 방식은 정책의 목표인 노인빈곤 문제 해소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행동의 분석 결과를 보면, 노인가구 중 상대적 빈곤층(전체 가구를 소득순으로 매겨 한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인 중위소득의 절반보다 적게 버는 계층)은 86.9%에 이른다. 그런데 기초연금을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것을 가정해 계산해보니, 상대적 빈곤율이 86.5%로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 결국 기초연금을 새로 도입하더라도 차등지급을 하게 되면 빈곤해소 효과가 0.4%포인트에 그친다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인 우리나라의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자녀에 재산 넘기면 자산가도 혜택
소득 따른 차등지급 사실상 불가능
차등지급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보험연구원의 오승연 연구위원도 같은 지적을 한다. 오 위원은 보험연구원이 최근 낸 주간보고서에서 “정부가 유력하게 검토중인 안에 따르면, 소득 하위 0~30%는 현재 10만원에서 추후 20만원을 받게 되지만, 31~50%는 겨우 5만원 이상을 더 받고, 51~70% 부분은 현재와 같은 10만원을 받게 된다. 그러면 실제 중간소득계층 노인의 경우 소득증가 효과가 미미해진다”고 설명했다.
재산·소득 파악 쉽지않아, 소득 상위 10% 노인가구 중 16%가 노령연금 수령 ‘허술’
예산 압박 감내할 수준. GDP대비 1%수준 더 투입하면 ‘20만원 일괄지급’ 가능 분석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서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우려는 마찬가지로 크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받아도 은퇴 뒤 소득대체율이 낮아 노인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득대체율은 퇴직 전 3년간 평균소득 대비 퇴직 이후 연금소득의 비율이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 40년 가입 기준 소득대체율인 40%와 기초연금의 소득대체율 10%를 합하면 공적연금의 총 소득대체율은 50%가 되지만,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인 25년을 기준으로 보면 소득대체율은 25%가 되므로 총 소득대체율은 25%+10%로 35%가 된다. 하지만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시키면 대부분 국민연금 가입자가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되므로 총 소득대체율은 25%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소득대체율이 25%로 떨어지면 월평균 200만원 벌던 이가 은퇴 뒤 50만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공적연금 제도의 의미는 희박해진다.
■ “일괄지급이 기초연금의 해법”
“이건희 회장이라도 사회에 공헌한 만큼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는 못사는 노인들에게만 주자는 게 아니라 모든 노인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자는 데 있다. 부자에게도 똑같이 혜택을 주고, 부자들에게는 증세를 통해 (세금으로) 더 거둬들이면 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원종현 조사관은 보편적 복지 개념이 기초연금에도 적용돼야 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니 80%니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렵다. 소득이나 재산 파악이 쉽지 않은 까닭에 행정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은 “애초 공약대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정액지급하자”고 주장한다. “대다수 노인의 실제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정액을 지급하는 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오승연 연구위원도 정액지급을 주장한다. 다만, 오 위원은 재정 여건을 고려해 소득 하위 70%에게 20만원씩 일괄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정부가 이런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돈 문제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우려하는 재정 압박과 관련해서는 예산지출의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65살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일괄지급할 경우 2060년 소요예산은 387조4000억원이다.(‘기초연금 입법화 방안과 소요재정’ 표 참조) 이는 현행 기초노령연금 수급액을 애초 예정대로 2028년에 두배로 올릴 경우 2060년에 이르러 들게 되는 소요예산 271조6000억원과 비교할 때, 100조원을 조금 넘는 규모로, 2060년 국내총생산(GDP·국회 예산정책처 추정치 1경원) 대비 1% 안팎의 액수다.
결국 해법은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올해 기초연금이 어떤 방식으로 도입되느냐에 따라 한국은 노후빈곤 국가로 갈지, 노인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존엄을 지키면서 살 수 있는 국가로 갈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전문가들은 차등지급안이 채택될 경우 한국이 전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손준현 송채경화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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