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씩 준다기에 찍었는데.." "구호로 여겼기에 큰 실망안해.."
한겨레 | 입력 2013.09.23 20:00 | 수정 2013.09.23 23:10

'기초연금 공약 포기' 노인들 반응

노인들은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각자의 생활 수준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태도에 따라 온도차를 보였다.

노·장년층을 위한 비정부기구(NGO)인 대한은퇴자협회의 주명룡 회장은 2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공약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세게 말하면 (박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선 공약을 안 지키는 게 첫번째 문제다. 65살 이상 전체 노년층에 20만원씩 준다는 공약 때문에 표도 많이 움직였다"며 "애초에 젊은층에 부담을 주는 정책이고 실현 가능하지 않아 대선 전부터 반대했는데, 지금 와서 이러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만을 위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남발해 신뢰를 저버렸다는 뜻이다.

노년층 노동자 노조로 올해 출범한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처장는 "공약 그대로 기초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보수 성향 노인단체 쪽 의견까지 들어 박근혜 정부의 공약 파기에 대해 따져묻겠다"고 밝혔다.

대한노인회의 태도는 다소 어정쩡했다. 대한노인회 강세훈 부총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기초연금 대선 공약은 캐치프레이즈 정도로 여겼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지만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면서도 "'상위 30%는 제외'라는 식으로 비율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한국 문화상 노인의 실제 빈곤율 측정이 어렵고 30%로 (비수급자를) 자른다고 해도 그건 정치적 선이지 학문적 근거가 있는 선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부안을 지지한다면서도 간접적으로 기초연금 차등지급의 어려움을 인정한 셈이다. 대한노인회는 지난 3월부터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논의에 참여해왔다.

보수 성향 노인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의 추선희 사무총장은 "공약이 후퇴했을지언정 안 지켜진 건 아니다. 이 정부 5년 안에는 약속 이행이 되지 않겠나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하루 <한겨레>가 서울 종로·마포·강남·동작구 등에서 만나본 여러 서민층 노인들은 공약 철회에 반감을 드러냈다.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아무개(79·경기도 과천)씨는 "내년 7월부터 기초연금을 준다고 해서 그것만 믿고 기다렸는데 나자빠지게 생겼다.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박 대통령이 우리가 뽑아서 대통령 된 거 아닌가. 그러면 약속도 지키고 우리를 대접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 6명 가운데 4명은 기초연금 공약 철회에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서대문구에 사는 김아무개(72)씨는 "정치인들은 괘씸하다. 아쉬울 때는 표 얻으려고 별짓 다 하더니 결국 되고 나면 아무것도 안 지킨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제기동에 사는 박아무개(81)씨도 "노인들이 무슨 돈벌이가 있나. 박 대통령이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준다고 해서 찍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약속을 안 지킨 것은 잘못이지만, 애초에 선택적 복지가 옳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만난 퇴직 공무원 신아무개(80)씨는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기초연금 공약에 대해서는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했다. 돈이 17조원인가 든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이 있거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인들의 반감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나무 송호균 기자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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