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분석' 경찰들 "한치의 양심 거리낌 없다"더니…
분석관들 "수사팀에 분석결과 빨리 넘겨야" -> 중간수사결과 발표 뒤 폐기
2013-09-29 06:00 |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지난해 12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를 위해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컴퓨터를 분석하던 서울지방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심리전단의 여론 공작 정황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하려고 시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분석관들은 지난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분석결과에 한치의 양심의 거리낌이 없다"며 수사 과정에서의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분석상황이 녹화된 CCTV 동영상에는 경찰 윗선의 수사 무마 압력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분석팀 내부에서는 '분석결과를 수사팀에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정원 직원이 활동한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해 강제수사를 벌여야 한다'는 의견,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비선으로라도 수사팀에 분석결과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왔지만 모두 묵살된 것으로 드러나 이 과정에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영향력을 행사했는지가 공판과정에서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분석관들 "수사팀에 분석결과 빨리 넘겨야" -> 중간수사결과 발표 뒤 폐기

지난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공판에서 재판부는 디지털증거분석팀의 분석상황이 녹화된 CCTV동영상 검증을 실시했다. 동영상에는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의 분석팀의 분석과정이 담겨있다.

동영상에는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팀에서 수사의뢰서를 받은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14일 분석팀이 심리전달의 인터넷 여론 공작 정황을 확인했고, 15일 새벽, 국정원 직원의 활동 내역 등을 파악한 상황이 담겨있다.

15일 새벽 2시 30분쯤 임 모 분석관이 "이것(분석결과)을 다 뽑아서 (수사팀에)주려고 했는데 몇 천 장이 나온다"고 말하자 성 모 분석관은 "1장에 어느 사이트에 몇 회 접속했는지 만 정리해서 넘기"라고 말한다. 당시만 해도 분석팀은 수서서 수사팀에 디지털 증거 분석 기록물을 넘길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날 새벽 4시쯤 성 분석관은 "빨리 (분석내용을)정리해야겠다"는 김 모 분석관의 말에 "이것(분석내용)은 수사팀에 들어가면 구두로 이야기해주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에 김 분석관은 "우리는 팩트만 주면 판단은 저기(수사팀)이 하니까 우리가 판단하지 말자"고 말한다.

이후 일부 분석관들은 당시까지 분석 내용을 수서서 수사팀에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서울청의 허위 보도자료 배포 이후 ‘비선’으로라도 수사팀에 실제 분석결과를 전달하려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일 밤 8시40분쯤 임 모 분석관은 "우리는 사실만 말해주면 되지 않냐. '글 지운 흔적을 발견했다' 정리해서 (수사팀에)줘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임 모 분석관은 서울청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전날인 16일 오후 5시쯤까지도 "내일 (중간수사결과 발표) 끝나고 나서 '비선라인으로' (진짜 분석결과를) 통보해주라"고 다른 분석관에게 지시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묵살돼 16일 밤 결과분석 자료가 모두 폐기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 분석관들 "서버 압수해 분석해야" -> 중간발표 때 "압수영장 신청할 근거없다"

15일 오후 5시 50분쯤 장 모 분석관은 "보배드림 사이트 서버를 압수수색해 보고 그것을 분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서버를 압수수색하면 (국정원 직원이 작성했다) 삭제한 게시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15일 밤 서울청 수사과장 주재 회의 이후 180도 변한다. 수사팀에 신속한 분석내용 전달과 국정원 직원이 활동한 인터넷 사이트 서버 압수수색까지 주장하던 분석관들은 윗선의 지시에 무력감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같은 날 밤 9시 20분쯤 장 분석관이 "우리가 (증거 분석을)해줄때는 타겟이 그것이 아니었는데"라며 분석 목표가 갑자기 수정된 것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자 장 분석관은 "어떻게 하든 욕먹게 돼 있다. 우리는 뭘 하든 욕먹게 돼 있다"며 자조하기도 했다. 

같은날 밤 11시 15분쯤 최 모 분석관은 다음날인 16일 갑자기 분석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상황을 전달받고는 "지금까지 진행상황을 알고 있는데...왜 그럴까? 위에서 뭔가 주기 싫은걸 내놓으라고 강요당하는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김 모 분석관은 "(수사결과 발표 전까지)팀장이 수서서의 분석의뢰 사항 중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적어오라고 했다. 나머지는 할 시간이 없다"며 "수서서 수사팀이 제출한 증거부석 의뢰서가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나중에 '너네 왜 이거 안 했냐'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서울청은 이같은 내용을 모두 보고받고도 17일 중간수사결과 발표 과정에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하지 못했다"며 "단서가 있어야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고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추가 공개한 경찰청 CCTV 영상 화면.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분석관들 국회서 "한치의 양심 거리낌 없다"더니

분석팀이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내용과 서울청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이 현저하게 다름에도 분석관들은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국정조사에서까지 "한치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진술해 '국민과 국민의 대표(국회의원)를 기만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분석관 일부는 지난 8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서울청 분석결과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날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수사에)부정한 목적이 있었나'는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의 질문에 "정정당당하게 처리했다"고 답했고, 김보규 서울청 디지털범죄수사팀장은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최현락 전 서울청 수사부장은 "일체 정치적, 정무적 고려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모 수사관은 "분석결과에 대해 한치의 양심의 거리낌이 없다. 서울청 사이버수사대의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호소했고, 김 모 수사과는 "예전에도 억울했는데 지금 너무 억울하다. 공정성 측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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