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한 40대 편의점 직원… 죽음으로 던진 “안녕하십니까”
허남설·조형국·강현석 기자 nsheo@kyunghyang.com 입력 : 2014-01-01 22:03:13ㅣ수정 : 2014-01-01 22:24:10
유서에 국정원 대선개입 비판
“국민들은 주저하고 있어… 두려움 떨치고 일어나 주길”
병든 노모 모시고 빠듯한 삶… 형 사업 잘 안돼 신용불량
2013년 마지막 날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한 40대 남성이 1일 오전 7시55분쯤 숨졌다. 이남종씨(41)는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반정부 구호를 외친 뒤, 휘발유를 몸에 뿌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마흔한 살의 죽음’은 2014년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십니까.”
이씨가 숨진 장소에서 타다 만 ‘다이어리’가 발견됐다. 겉표지는 타버렸으나, 속지는 훼손되지 않았다. 어머니(68)와 형(43), 동생 등 가족에게 3통, 도움받은 이들에게 2통, 국민에게 남긴 2통의 글이 있었다. 이 중 ‘안녕하십니까’라는 제목의 17줄짜리 메모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1973년 광주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였다. 이씨는 1990년대 말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임관해 대위로 전역했다. 이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면서 공부를 포기했다. 이후 퀵서비스 배달부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망 전에는 광주 북구의 한 편의점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형이 이씨 명의로 투자를 하다, 이씨도 빚을 졌다. 그 때문에 7~8년 전 신용불량자가 됐다.
학창 시절 그는 시를 좋아했다. 이씨의 형은 “(남종이는) 시를 좋아했다. 글솜씨가 좋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남종이가 쓴 시가 집에 한 박스 정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계속 써왔다”고 말했다.
이씨가 남긴 글을 본 박주민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씨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형식의 글로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유서에서 지난 대선 당시 정부의 불법적인 선거개입 정황을 비판했다. 이를 ‘개인적 일탈’로 치부한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고 적었다.
“국민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가겠다.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도 했다. 이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려뜨리고 시위를 벌였다.
이씨의 형은 “분신이라는 것. 자잘한 일로 사람이 자기 몸에 불붙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걸 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말했다.
이씨는 분신 전까지도 ‘가족’을 챙겼다. 그는 1992년부터 최근까지 광주 북구에 있는 40㎡(12평) 규모의 작은 아파트에서 어머니, 큰형과 함께 살았다. 이웃 주민들은 “이씨가 평소 어머니를 불평없이 봉양하며 착실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생에게 남긴 글에서 “짐을 지우고 가서 미안하다”며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기쁘게 갔다고 생각해라. 엄마를 부탁한다”고 적었다. 이씨는 분신 일주일 전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명의로 된 보험을 네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남아 있는 가족의 행복’을 죽음의 대가로 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들의 부음을 듣고 급히 서울로 올라온 노모는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 등이 빈소를 찾았다. 이씨의 장례는 4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민주시민장으로 치러지고, 장지는 광주 망월동 민주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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