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4660
쓰레기 하나도 안 돼... 진도 사람들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봉사자 뒷수발에 대책회의까지... 그래도 끝까지 돕겠습니다
14.04.25 20:23l최종 업데이트 14.04.25 20:23l천병태(69echo)
나는 진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진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태어난 집에서 지금껏 살아가는, 친구들이 말하는 '천연기념물'입니다.
12만 명 이상 살던 우리 고장이 이제는 겨우 3만여 명으로 인구가 줄어 들었습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잘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줄어들고 노인들만 늘어납니다. 예순 살 정도는 청년회원에 속합니다. 저 또한 청년입니다.
그런데 벽력같은 사건이 진도바다에서 벌어졌습니다. 진도에서도 맨 서쪽 끝 바다인 맹골수로는 진도 사람들도 평생 가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고 험한 바닷길입니다. 저도 삼치 낚시를 따라가서 그 바다를 겪었고 무인도인 병풍도를 가면서 한 번 더 그 바다를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관매도와 동거차도를 돌아 그 바다를 가다가 물살이 거세어 관매도로 회항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물살이 빠르고 거친 바다입니다.
그 바다가 모든 것을 삼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무슨 바다의 잘못이겠습니까? 원래 그 바다는 그렇게 거친 줄 다 알고 있는 것을. 더구나 사리때의 그 바다를 안일하게 건너려 했다니.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다를 탓하기 전에 바다를 쉽게 생각한 선원들의 잘못입니다. 승객들에게 그 바다는 경치가 좋은 볼거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거친 바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선원들뿐이었으니까요. 그 선원들이 맨 먼저 빠져나와 온 세상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이웃들의 숨겨졌던 온정, 저도 놀랐습니다
▲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호물품 지원 '세월호 침몰사건' 나흘째인 19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있다. ⓒ 유성호
저는 뱃사람이 아닙니다. 막 사고의 소식을 접하고 학생들도 모두 구조되고 무사히 사고가 마무리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거친 바다에서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통계는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여러분들이 느끼는 똑같은 감정으로 서성거리다가 팽목항(진도항)으로 달려가 보니 찬 바닷바람에 떨며 보이지도 않는 병풍도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우리 고장 봉사단체 회원들이 많이도 모여 있더군요.
그 사람들은 16일 사고 당일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점심 때가 되니 진도읍에서 식당을 하는 분들은 장사를 팽개치고 집에 있는 음식물을 실어날라 봉사대원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자주 보던 이웃들이 어디서 그런 용기와 동정과 온정이 숨어 있었던 것인지 저도 놀랐습니다. 그 이후 각지 각층에서 온정의 손길이 밀어닥치고 미담이 오가고 시간이 흘러갑니다. 지금도 우리 고장 사람들은 그렇게 현장의 뒤쪽에서 뛰어다닙니다.
저는 우리 고장 사람들을 자랑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과 방송에서 실컷 이곳의 소식을 들었을 테니까 그늘에 숨어서 고생하는 동네 사람들의 일을 담담히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낮에는 희망과 간절한 염원이 담긴 노오란 리본을 이제는 유명해져 버린 진도실내체육관에서부터 달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은 더 많은 회원들이 모여 가로수에 리본을 달아갈 것입니다. 저 팽목항까지. 늦은 밤, 혹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하고 팽목항을 한바퀴 돌아보고 집에 돌아와서 이 글을 씁니다.
이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도 지쳐갑니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희비가 엇갈린다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희는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온통 비통함뿐입니다. 지금 여기는 아무도 웃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술집에는 술 마시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간혹 유가족들만 들른다고 합니다. 우리 고장 사람들은 죄없이 죄지은 사람들의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뎌갑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구호물품이 몇 차례씩 도착을 하면 모여들어 창고에 정리하고 광장에 노적하며 땀을 흘립니다.
다른 곳에서 오신 봉사활동자들의 뒷수발도 보통일이 아닙니다. 마을에서는 마을회관을 숙소로 내어 놓았고 쓰레기 하나라도 있는 것은 무슨 큰 일이나 되는 것처럼 치웁니다. 팽목항이나 실내체육관 부근은 그렇게 많은 차들과 인파기 붐벼도 한상 말끔하게 관리합니다.
하루에 움직이는 차가 아니고 서 있는 차만해도 양쪽을 합쳐 천 대가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파들이 몰려드는지 솔직히 세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우리 고장 사람들의 숫자보다는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에는 군청에서 주민들의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대통령이 시키지 않아도 우리 군 사람들은 참 잘 판단하고 의논합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장기화, 우리가 도울 것입니다
▲ 사고해역 수색구조 8일째...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8일째인 23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해역에서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수색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곧 농번기가 오는데 만약에 이 사건이 장기화가 되면 전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때는 모두 우리가 도와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이었습니다. 그래도 잘해보자 하는 것이 이 논의의 결론이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할 일이고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생환 소식이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도 사고 당일 사고 원인은 '복원력이 문제다, 바지선을 가져와서 중간 기착지로 삼아야 한다, 크레인을 대기시켜 배가 더 기울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말을 자주 주고 받았습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렇게 되어갑니다. 우리는 그 바다를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긴 암초가 없다, 팽목항에서 멀기 때문에 바지선이 필요하다, 사리 물살이 세기 때문에 배를 붙잡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 전문가들이 그렇게 많은지. 거기 바다는 거기 어민들이 제일 잘 압니다. 그런데 그 바다를 누비는 어민들은 구조에만 참여했을 뿐 누구 한 사람 대책에 대한 논의 자리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그 사람들이 전문가들이니 비전문가들에게 묻는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웃음 잃어버린 지 10일... 이해해 주세요
우리 고장 사람들이 웃음을 잃어버린 지 10일이 되어갑니다.
불미스러운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유가족들과 멀리서 온 봉사자들에게 실수를 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관비를 비싸게 받는다는 여론이 있어 여관 주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나름대로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본의가 아니었음을 이해해 주세요. 방을 장기계약을 하고 두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돌려서 쓰며 식당에서 오천 원짜리 밥을 먹으면서도 카드를 쓰는 일들은 이곳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문화의 차이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습니다.
경황 중이니 모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한 사람의 생존자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잃지 맙시다. 고생하시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격려를 보내며 유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이 엄청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좋겠습니다.
이 위기가 잘 극복되고 나면 진도의 전통예술인들의 뜻을 모아 안산시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씻김굿판과 살풀이 춤이라도 벌려 살아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위무하고 먼저가신 많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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