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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에 발해의 후손이 산다, 발해마을 이야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2. 3. 4.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융성하였으나, 926년에 거란에게 패망하였다.
이후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수만의 유민과 함께 고려 태조의 예우를 받으며 귀순하여 고려에 정착하였다.
송백리의 발해마을에는 영순 태씨(永順太氏) 중시조인 태금취(太金就)의 13세손인 태순금이 임진왜란 당시 현재 경산시 상방동에 정착하였다가 이후 송백리로 옮겨, 후손들이 400여년 살고 있다.
1950년대에 송백리는 60여 호에 이르렀다가 이후 이농현상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현재는 그 절반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송백리는 전국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영순 태씨 동성마을 가운데 한 곳으로 유지되고 있다. 경산 지역의 영순 태씨는 송백리 외에 자인면 등지에 3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태재욱 발해왕조 제례보존회장)
여기 산세가 좋아서 그런지, 여기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다 재주가 있고, 공부를 잘 해 가지고 여기서 공부시켜 놓으면 자꾸 외지로 다 나가버리는 거라. 가구수 자꾸자꾸 줄어 가지고 지금은 한 27가구, 인구는 한 35명, 그 정도 지금 살고 있습니다.
마을의 대부분은 대조영의 후손인 영순 태씨 들이다. 과거 태와 대는 서로 혼용됐던 글자였다. 두 글자가 혼용되다 조선시대때 족보가 만들어주면서 태씨로 굳어졌다.
발해마을의 진입로엔 발해마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과 태극기가 줄지어 서 있다. 발해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깃발도 함께 나부끼고 있다.
그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집집마다 담장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을 테마로 그린 벽화들이다. 그중에 전형적인 한국인상의 대조영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 그림들은 현재 정부 표준 영정 86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조영 초상을 바탕으로 그려졌다. 대조영 초상은 전국 142명의 태씨 남자의 얼굴 사진을 찍어 특징을 분석한 뒤 그렸다고 한다.
마을 입구 한쪽에는 대조영의 흉상과 중국 흑룡강성에 있는 발해석등을 축소한 모형이 자리잡고 있다.
서암(西庵) 태두남(太斗南)을 기르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추모재(追慕齋)는 정면 네칸 측면 한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태재욱 회장)
어 여기에 추모재가 있고, 요 뒤에 사당이 있습니다. 근데 동네 사람만이 아니고, 금곡, 심방 사랑까지도 여기 와서 학문을 닦은 그런 (인자) 서당입니다. 글을 배우던 서당이고, 그리고 제를 올리는 곳은 뒤에 사당 있습니다.
사당인 상현사(尙賢祠)에는 대조영의 표준 영정과 19위에 위패를 안치하고 있고, 매년 춘분에 향사를 지낸다.
추모재를 지나 마을 길을 따라 가다 보면 190년된 고택인 태순평 가옥이 나온다. 돌담을 쌓은 골목을 들어가면 서향한 안채가 나타나는데, 안채 전면에 마당 좌측에는 아래채가 우측에는 헛간채와 ㄷ자형으로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안방과 부엌을 두었으며, 우측에는 윗방을 연결시켰다.
이 마을에는 이렇게 190년 된 집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태재욱 발해왕조 제례보존회장의 집이다.
(태재욱 회장)
이 집이 190년이 넘은 집인데, 이 마을에 유일하게 지금 두집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은 자꾸 이 집을 인자(이제) 다시 개조해 가지고 현대집으로 지으려 하는 걸, 내가 '안 된다 안 된다' 하고, 내가 지금 만류해 가지고 아직까지도 보존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마을이 발해마을이 되면 이런 가옥이 필요하잖아. 그래서 이거 보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가지고 이거 보존해야겠다 해서 지금 보존하고 있는 거예요.
아직 발해마을은 완전히 구성되지 않았다. 현재 발해마을을 전통문화마을로 발전하기 위해 '발해문화 현장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산시는 '발해문화 현장사업'을 통해 박물관과 역사관, 대조영 영정을 모실 고황전(高皇殿) 등을 조성해, 발해마을을 경산의 대표적인 관광마을로 만들 예정이다.
(태재욱 회장)
이 발해마을이 육성 발전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자 이) 우리나라만의 관광지가 아니고, 세계 사람들도 여기 와서, '아 발해 마을 있다', '발해 역사를 여기 가면 재조명해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사람들이 여기 와서 1박2일도 하고, 해서 여기의 발해 역사를 꼭 공부하기도 하고, 발해 역사를 조금 알고 갈 수 있는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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