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39571
"이 외국 젊은이들 있었기에" 택시운전사 류준열, 사실은...
[5.18 40주년 특집-이방인의 증언 ⑤] 해외기록물 분석한 최용주 5.18진상조사위 조사1과장
20.05.16 11:48 l 최종 업데이트 20.05.16 16:22 l 글: 소중한(extremes88) 사진: 이희훈(lhh)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오마이뉴스>는 '평화봉사단'에 주목했다. 항쟁의 복판에 있었던 '증인'들의 이야기를 연속 보도한다.[편집자말]
▲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이희훈
"이 젊은이들이 있었기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의 영상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1980년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들을 이 같이 평가했다.
그는 8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있는 조사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팀 원버그(Tim Warnberg)를 비롯한 이들이 힌츠페터와 다니며 통역을 도맡았다"라며 "이들의 헌신 덕분에 힌츠페터의 취재가 가능했고 중요한 기록들이 남을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5.18을 둘러싼 왜곡과 가짜뉴스가 심한 상황이다"라며 "힌츠페터의 영상, 이들이 남긴 기록과 증언은 왜곡과 가짜뉴스를 막아주고 있다.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에 카메라를 든 인물이 위르겐 힌츠페터이고 오른편 4명(차례대로 쥬디 챔벌린, 팀 원버그, 폴 코트라이트, 데이비드 돌린저)이 평화봉사단 단원들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5.18, 세계적으로 드문 사건"
최 과장은 2015년부터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으로서 해외 기록물을 발굴·분석해왔다. 평화봉사단도 그가 연구하던 집단 중 하나였다.
평화봉사단은 1961년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였다. 단원들은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돼 교육, 의료, 농수산기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파견 국가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의도도 이 제도에 담겨 있었다. 한국엔 1966~1981년 평화봉사단이 들어와 있었다. 1980년 5.18 당시, 여러 평화봉사단원들이 광주에서의 참상을 목격했다.
당시 5.18을 직접 목격한 평화봉사단원은 팀 원버그, 데이비드 돌린저(David Dolinger), 폴 코트라이트(Paul Courtright), 쥬디 챔벌린(Judi Chamberlin) 등이다. 이 중 팀은 1993년 고인이 됐다. 이들은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민을 보호하고 직접 부상자를 후송하기도 했으며, 외신기자의 인터뷰를 주선·통역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단원들은 이들로부터 광주 소식을 접하고 외신보도를 이끄는 등의 역할을 했다.
위르겐 힌츠페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는 그의 취재를 돕는 인물로 구재식(류준열 분)이란 가상 인물이 등장하는데, 실제론 팀 원버그가 중심이 된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팀 원버그가 자주 갔던 음악감상실 DJ,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당시 전남대 의과대 학생 등은 "그가 한국어를 정말 잘했다"라고 증언했다.
최 과장은 "5.18은 국제적 사건"이라는 점을 힘주어 말하며, 자신이 해외기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당시 해외에서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 알고 있었다. 5.18이 지구적인 차원에서 갖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해외기록물을 찾아 의의를 확대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직장 생활 도중 미국으로 유학을 가 켄터키대학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이 사무실에 있는 광주 지도에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 났던 금남로 옛 전남도청을 가르키고 있다. ⓒ 이희훈
▲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 장소인 광주 동구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 국가등록문화재 제16호로 2002년 지정 되었다.ⓒ 이희훈
"5.18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록돼 있습니다. 세계적 사건이죠. 5.18을 국내적 사건으로 묶으면 그 의의가 매우 축소됩니다. 국가폭력에 대항해 어느 한 지역이 10일 동안 무장을 하고 해방된 공동체를 만들었던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때문에 국제사회가 어떻게 움직였고, 미국의 기밀문서에 어떤 기록이 남겨 있는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 광주 5.18민주화묘역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 이희훈
최 과장은 해외기록물을 분석하던 과정에서 평화봉사단에도 관심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아마 5.18 연구자나 관심이 있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논문일 것"이라며 1987년 팀 원버그가 쓴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 >를 소개했다. 팀 원버그는 하와이대학의 한국학 전문잡지 < Korean Studies >에 이 논문을 실었다. 최 과장이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란 제목으로 변역한 이 논문은 영어권에서 5.18을 다룬 최초 학술 보고서이다.
"(팀 원버그가 이 논문을 내놓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광주항쟁을 분석한 논문이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날짜별로 정리해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논문이라 기록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정부가 발표했던) '광주항쟁은 외부세력이 개입한 폭동'이란 주장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영어권에서 나온 5.18 관련 논문이나 책들 중 상당수가 이 논문을 자료로 이용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빚 갚기 위해..."
▲ 최용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조사1과장 ⓒ 이희훈
최 과장은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학술부장이었다. 5.18 시작 직후 도피생활을 하다 1980년 10월 체포됐고,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81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살아남았기 때문에 5.18은 내게 엄청나게 큰 빚으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가난 때문에 사회학자의 꿈을 접은 최 과장은 1985년 '국회의원급 3명의 신원보증서'를 내고서야 겨우 직장에 들어갔다. 그는 30년 직장생활을 마친 후 연구에 매진하게 된 이유를 "조금이나마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최 과장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진상규명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5.18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일에 봉사하는 게 빚을 갚는 유일한 일이겠죠. 5.18을 둘러싼 오해와 왜곡이 심하잖아요. 주변의 권유도 있었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내 청춘이 졌던 빚을 갚는 자그마한 기회가 됐던 거죠."
최 과장은 최근 평화봉사단원이었던 폴 코트라이트가 쓴 회고록 <5.18 푸른 눈의 증인>(영문판 < Witnessing Gwangju >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2018년 데이비드 돌린저로부터 폴 코트라이트가 회고록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지난해 최종 답사를 위해 한국에 온 폴 코트라이트를 만났다"라며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당시의 모습 중 여러 인상적인 대목이 그의 회고록에 담겨 있다. 그는 5.18의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봉사단으로 광주에 와 있던 젊은 청년들은 5.18의 비극적인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 했다"라며 "5.18 40주년을 맞아 증인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이들의 눈을 통해 5.18을 다시 재조명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 평화봉사단 소속 팀 원버그(Tim Warnberg)의 모습을 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 ⓒ 나경택 제공
[5.18 40주년 특집 - 이방인의 증언]
①-1 이 미국 청년을 아십니까 http://omn.kr/1nj3g
①-2 계엄군 곤봉에 맞은 미국인 http://omn.kr/1nj2u
② 광주 할머니와 약속 지킨 청년 http://omn.kr/1nk4l
③ "전두환 부끄러워해야" http://omn.kr/1njqo
④ 미국인이 찍은 80년 5월 http://omn.kr/1nkf9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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