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517193816209?s=tv_news
시위 강경진압 거부했던 고 안병하 치안감..그 이유는
김태영 기자 입력 2020.05.17 19:38
[앵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긴장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광주를 빠져나가려는 택시의 트렁크가 열리는 장면일 겁니다. 가슴 철렁한 순간 군인은 택시를 보내줍니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시민의 편에 선 군과 경찰은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때 강경진압을 거부했던 고 안병하 치안감 등 경찰관들의 이야기입니다.
김태영 기자입니다.
[기자]
5·18 민주화운동 직전이었던 1980년 5월 초순 전두환 씨가 광주를 방문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전임순/고 안병하 치안감 부인 : '(광주)비행장에서 내가 늦게 갔는데 그때까지 (전두환 씨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얘기하시더라구요. 의아해하면서 얘기했던 거 같아요.]
당시 전남경찰국장으로 광주와 전남 지역의 치안을 총괄한 고 안병하 치안감을 만났던 겁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 (당시 보안사 정보참모를 했던 권정달씨가) 국회도 해산하자,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키자, 비상기구를 설치하자 그런 내용들을 이미 구상하고 있던 단계였고 그 전후한 시기에 만났던 거 같아요. 경찰국장이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미리 가서 감을 잡으려고 했을 수도.]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17일 자정, 광주에 공수부대가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안 전 치안감은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생전에 남긴 자필 메모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안호재/고 안병하 치안감 아들 : 경찰관으로서 본분을 다 한 겁니다. 경찰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아버님은 아버님같은 경찰 부하분들과 경찰의 본분만 다했던 거죠.]
안 전 치안감과 뜻을 함께 한 경찰은 또 있었습니다.
이준규 당시 목포경찰서장은 시위 진압용으로 쓰일 무기를 목포 인근 섬으로 옮겨놨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위원 : 간부들이 (안 전 치안감을) 다 따랐죠. 도경 과장급 간부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경찰서장들도.]
이들에게 돌아온 건 모진 고문과 직위해제였습니다.
이들의 명예회복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이뤄졌습니다.
다만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지킨 안 전 치안감 등 이들 경찰관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더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영상디자인 : 송민지 / 영상그래픽 : 이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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