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목사가 성탄절에 또 대피소에 숨어야 합니까 / 이적
[한겨레] 등록 : 20111205 19:40 | 수정 : 20111205 22:11
   
≫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올해 또 시작이군요.

지난 11월28일 군 관계자가 기독교단체의 요청으로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애기봉 등탑에 트리를 설치하겠다고 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보니 작년 이맘때의 공포가 또다시 떠오릅니다.

2004년 남북은 장성급 회담에서 접경지역 홍보탑을 제거하고 일체의 홍보전을 멈추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군 당국이 애기봉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하자 북한은 애기봉 등탑 트리 설치는 2004년 약속 위반이라며 설치 때에는 애기봉 민통선 지역을 공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격언처럼 민통선 주민들은 그때부터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지난해 12월22일 민통선 주민의 바람과는 달리 군은 애기봉 상공에 전투기를 배치하고 군의 최고 경계 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면서까지 애기봉 등탑 점등식을 강행하였습니다. 이때 애기봉 아래 주민들은 비상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피소에 숨어야 했고 점등식에 참가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등 정치인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신자 400여명은 등탑에 점등을 한 순간 후방으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애기봉 민통선엔 전운이 감돌았고 주민들은 등탑의 불이 꺼지는 날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또 군 관계자가 기독교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등탑에 불을 켜겠다고 발표를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남북갈등은 물론이고 자국민조차 공포에 빠뜨리는 행위를 해마다 꼭 반복 강행해야 하는 걸까요.

여기서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군 관계자는 항상 종교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등탑에 점등을 허가하겠다고 합니다만 저는 그 말의 진정성에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동안 평화의 약속은 너무 잘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국방부는 느닷없이 종교단체의 요청을 허가한다며 등탑의 점등을 강행했습니다. 등탑에 불을 켜면 북한 쪽이 ‘옳거니, 평화의 불이니 평화스럽게 살자’ 할 것 같습니까. 도리어 공격하겠다고 하잖습니까. 군은 유사시에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있지만 평시에도 평화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기에 설사 철없는 민간단체가 등탑에 불을 켜겠다고 주장을 하여도 그 지역은 위험하다고 설득하고 불허하는 게 군 본연의 의무 아닙니까. 그런데 도리어 군이 먼저 나서서 애기봉 등탑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고 종교단체를 위험한 불장난에 끌어들이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제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항상 익명의 이름으로 군이 먼저 나서서 애기봉 등탑 점등 발표를 합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에도 애기봉 봉축탑 점등을 하겠다고 먼저 발표했습니다만 정작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점등을 하겠다고 신청한 그 단체의 정체를 모르겠다며 평화를 저해하는 애기봉 봉축탑 점등을 반대했고 점등 시도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술을 펼치기 위하여 종교단체를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왜일까요? 설사 종교단체가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락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기봉 점등은 분명히 북한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안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방부가 종교단체에 끌려다닌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남북갈등,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행동들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성이 없습니다. 연말에 단 하루라도 애기봉, 민통선 주민들 마음 편하게 살도록 좀 내버려 두십시오.

계속 우리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국방부와 후방의 종교단체들이 우리의 하소연을 끝까지 무시한다면 이번 애기봉 등탑 점등을 김포시민과 평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기독교 목회자들이 나서서 끝까지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운을 감돌게 하는 트리는 전쟁을 유도하는 가짜 트리이며 평화의 트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적 시인·민통선 평화교회 담임목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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