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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5] 이서국
신라와 어깨 견준 청도의 무력강국
유물출토·고증없이 문헌으로만 존재
체계적 연구로 역사유적 등 복원해야
김진욱기자  2007-04-19 08:09:41

이서국 전설

이서국 영역도

때는 서기 297년. 신라 유례왕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길목에 있는 이서국을 공격했다. 이서국은 강하게 저항했다. 신라의 공격에 위기감을 느낀 이서국은 방어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금성(지금의 경주)을 공격했다. 

이서국의 공격이 워낙 드세 쉽사리 물리칠 수 없었다. 이때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과 함께 이서국을 물리쳤다. 이 군사들을 대나무잎을 귀에 꽂았다고 해 '죽엽군(竹葉軍)'이라 했다. 이서국을 물리친 이후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은 사라졌다. 다만 대나무잎만 신라 미추왕릉 앞에 쌓여 있었다. 미추왕의 음덕으로 신라가 이서국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금성에서 이서국 군대를 물리친 신라는 이서국을 공격했다. 이서국과 신라는 이서산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절벽 위에 축조된 이서산성의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이서산성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유례왕이 이서산성에서 멀지 않은 운문사로 군사를 철수시킨 뒤, 보양 스님께 어떻게 하면 이서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보양 스님은 "개라는 짐승은 밤에는 잘 지키지만 낮은 지키지 못하고, 앞은 지켜도 뒤는 꺼려 한다. 낮에 북쪽을 공격하라"고 했다. 이서산성이 있는 산의 모습이 달리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유례왕이 보양 스님의 말대로 했더니 이서산성은 함락됐다. 

신라에 패한 이서국의 왕과 왕족들은 이서산성에서 빠져나와 화양읍 동천리 신둔사 뒷산의 봉우리로 숨었다. 왕과 왕족들이 숨었다고 해, 봉우리 이름이 '은왕봉(隱王峰)'이다. 

화양읍 서상리에는 '금장들'이라는 들이 있다. 이서국 왕과 왕족들이 이서산성을 나와 피신하면서, 이서국의 수많은 금은보화를 옮기지 못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장들이라고 한다. 


청도군 화양읍 범곡리 지석묘군 전경. 이곳을 중심으로 한 청도군 화양읍 일원이 이서국의 중심지였다.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나즈막한 산이 하나 있다. 농촌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진입로 한켠에 '이서국 성지'라고 적혀 있는 비석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비석의 옆면에는 '신라 유례왕 7년(서기 297년) 금성을 공략하다가 반격을 받아 폐성 함락으로 멸망하였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이 이서국의 왕성(王城)인 백곡토성이 있었던 곳이다. 흙으로 만든 성이기에 지금은 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백곡토성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비석에 적혀있는 폐성(吠城)이 있다. 주구산성(走拘山城)이라고도 한다. 

산성이 있는 산의 모습이 달리는 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서산성으로 부른다. 이서산성이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면서 이서국은 멸망했다.


방어를 위한 산성

이서산성은 청도군 화양읍 소라리와 청도읍 송읍리에 걸쳐 있다. 이서산성 앞에는 청도천(청도주민들은 '한내강'이라 한다)이 흐른다. 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곳곳에 절벽이 있어 산세는 험했다. 마지막 방어선으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청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의 적이 이서국을 침공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서국은 외부의 침공에 대비했고, 그런 흔적을 이서국의 중심지였던 이서산성 주변의 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서산성 주변의 산은 공교롭게도 평탄작업을 한 듯 정상은 평평하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목책) 흔적도 보인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박윤제 청도향토사학회 회장은 "산 정상의 평탄작업을 한 곳의 총 길이가 3~4㎞ 된다. 목책 흔적 등은 이서국 사람들이 외부 침입에 대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학계가 이서국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인정하는 또다른 산성은 청도읍 거연리와 매전면 구촌리에 걸쳐있는 오례산성. 오례산성은 사방을 훤하게 관측할 수 있어 방어하기에 좋은 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4.6㎞에 이른다. 돌로 쌓은 산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박윤제 청도향토사학회 회장 

오례산성 


유물없는 이서국

산성은 있지만 이서국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서국 때의 왕릉이나 고분 발굴을 통해 당시 문화를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이서국의 왕이나 왕족의 무덤이 발굴된 적은 아직 없다. 일반인이 왕릉이라고 믿을 만한 형태를 갖춘 무덤도 없다. 

왜 이서국 땅에 이서국 왕이나 왕족의 무덤이 없을 까. 이에 대해 김태호 청도향토사학회 부회장은 "이서국은 신라를 공격할 만큼 강했기에, 신라는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소왕국들보다 더욱 혹독하게 이서국을 지배했고, 그 과정에서 왕릉이나 지배층의 무덤을 훼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향토사학계가 이서국의 왕릉이라고 추정하는 고분이 3군데 있으나, 누군가에 의해 훼손된 채로 방치돼 있다. 이곳을 발굴해 보자는 향토사학계의 요구가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은 "이서국 왕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도굴된 흔적이 있는 만큼 실제 왕릉이 맞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체계적인 연구 절실

청도에 이서국이 있었지만 이서국에 대한 연구와 이서국 흔적에 대한 복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도군의 관심은 고려시대 때 축조된 청도읍성 복원 사업에 몰려 있다. 

청도군 관계자는 "이서국에 대한 연구와 흔적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청도읍성 복원 사업에 예산이 집중되다보니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서국을 이야기할 때 일본과의 관계도 거론된다. 신라에 멸망된 이서국의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국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아직 없다. 강래업 청도향토사학회 부회장(모계고 교사)은 "이서국의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주장이 있는 만큼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청도에는 340여개의 지석묘가 있고, 지석묘 주인공들이 이서국 사람들의 조상들이다. 지난해에 10개의 지석묘가 어디론지 사라졌다"며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이서국의 흔적은 지속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서국의 흔적을 보존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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