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은' 김유신·김춘추가 의심스러운 이유
[게릴라칼럼]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상한 역모 사건들
13.09.03 15:23 l 최종 업데이트 13.09.03 15:48 l 김종성(qqqkim2000)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역사 기록에는 수많은 역모 사건이 등장한다. 그중 통치자나 집권당이 조작한 사건들이 적지 않다. 멀쩡하게 책을 읽고 있다가, 혹은 친구와 술 한 잔 마시고 오다가 역모죄로 체포되어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역사 기록이 풍부하게 남은 고려나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어떤 것이 진짜 역모 사건이고 어떤 것이 조작 사건인지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 시대의 경우에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아니면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진짜 사건인지 조작 사건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조작 냄새 풍기는 '칠숙·석품 사건' 

<삼국사기>에는 "몇 년 몇 월에 아무개가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참수를 당했다"는 식의 기록이 많다. 이런 기록만 갖고는 해당 사건이 진짜인지 조작인지를 감별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전후 문맥을 통해 역모 사건의 진위 여부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사건을 처리한 주체세력이 사건을 통해 얻은 것은 많은 데 반해 기록이 너무 소략하거나 범행이 지나치게 엉성한 경우에는 조작사건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을 만하다. 반대로, 주범으로 몰린 사람들이 사건을 통해 잃은 것은 너무 많은 데 반해 기록이 소략하거나 사건이 엉성한 경우에도 동일한 의심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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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모를 쓴 신라왕의 모습(상상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신라 진평왕 때인 서기 631년에 발생한 '칠숙·석품 사건'도 조작의 냄새를 풍기는 이상한 사건이다. 진평왕은 579년부터 632년까지 53년간 왕위를 지켰다. 이 53년간 중에서 603년 이후의 27년간은 상대적으로 왕권이 불안정했다. 고구려·백제의 잦은 침공으로 신라 정세가 불안했다. 사건이 발생한 631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 이듬해인 632년에 선덕여왕이 등극했다. 여왕은 김춘추 가문과 김유신 가문으로 대표되는 신세력의 지지를 배경으로 했다. 따라서 그의 등극은 당시로서는 꽤 혁신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왕의 등극 이전에 모종의 정치투쟁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바로 칠숙·석품 사건이다. 이것은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신세력이 집권하기 직전에 발생한 대형 역모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이 신세력의 권력 장악에 상당히 기여했으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사건인데도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편에 기록된 이 사건은 외형상 너무나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여름 5월(음력),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함께 반역을 모의했다. 왕이 이것을 (미리) 알아내서 칠숙을 잡아 동시(동쪽 시장)에서 참수하고 9족을 함께 평정했다. 아찬 석품은 백제와의 국경까지 도망갔다가 처자식이 그리워져서, 낮에는 숨고 밤에는 이동하며 총산으로 되돌아왔다. 나무꾼 하나를 만나 나무꾼의 헌옷과 (자기 옷을) 바꿔 입은 뒤 땔감을 지고 자기 집에 숨어들었다가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이 기록에서는 사건의 과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사건의 처벌 과정만 상세할 뿐, 역모의 경과과정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함께 반역을 모의했다"는 문장이 사건의 실체에 관한 전부다. 반역을 한 것도 아니고 반역을 모의하다가 붙들렸다는 것이 사건 자체에 관한 기록의 전부다. 

김춘추·김유신 가문이 구세력을 약화시키고 권력 정상에 한걸음 더 다가간 계기가 된 사건치고는 사건의 실체에 관한 기록이 너무나 소략하고 간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비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너무나도 엄청났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반역행위의 실행에 착수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예비·음모 수준에서 발각된 것인데도, 칠숙·석품 본인들은 물론이고 칠숙의 9족까지 멸족을 당했다. 역모 사건에서 주범의 9족까지 처형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대형 사건인데도, 사건의 실체에 관한 기록은 "이찬 칠숙이 아찬 석품과 함께 반역을 모의했다"는 부분뿐이다. 

한편, 사건이 터진 이후에 석품이 보인 행동은 역모사건의 주범이 보인 행동이라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는 국경까지 도주했다가 갑자기 가족이 그리워서 나무꾼과 옷을 바꿔 입고 집에 들어갔다가 붙들렸다. 이것은 석품 자신에게도 역모 사건이 뜻밖의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이 사건의 경우에는, 역모 사건을 처리한 쪽이 사건을 통해 얻은 것은 매우 많은데 반해 기록 자체가 너무 소략할 뿐만 아니라 주범들의 행동도 어설프기 그지없다. 9족을 멸할 정도의 중범죄였다는 메시지만 강조됐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칠숙·석품 사건으로부터 15년 뒤에 발생한 비담 반란사건의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대화 내용까지 상세히 남아 있다. 그런데 칠숙·석품 사건은 비담 사건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인데도 사건의 실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100% 확정을 할 수는 없지만, 김춘추·김유신 가문이 권력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조작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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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가족. 사진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찍은 백제 가정의 모습. ⓒ 김종성

만약 조작된 게 아니라면,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려진 사건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음력 5월 경주 모임'이라 불린 친목 모임에서 칠숙과 석품이 백 명도 훨씬 넘는 참석자들 앞에서 "지금 정세가 엄중하고 심상치 않으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자 다른 참석자들도 별 생각 없이 "당항성(무역항)에 가면 창을 살 수 있다"거나 "꼬마들이 쓰는 장난감 칼도 무시할 수 없다"거나 "이제라도 칼이나 창 만드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거나 "마음을 가다듬고 김춘추·김유신 가문을 주시해야겠다" 하는 등등의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술자리나 모임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근거로 사법당국이 사건을 부풀려 김춘추·김유신 가문의 권력 강화에 기여했는지도 알 수 없다.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은 진주·진흠 사건 

조작의 냄새를 풍기는 이상한 사건의 또 다른 예는 문무왕 때인 662년에 발생한 진주·진흠 사건이다. 이 사건에 관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편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대당총관 진주와 남천주총관 진흠이 병을 사칭하고 한가롭게 놀며 국사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했다. 아울러 그 일족도 평정했다."

범죄 혐의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역모사건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일족을 함께 죽였다는 기술을 통해 이 사건이 역모사건과 다를 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족이 연좌된 중대 사건치고는 진주·진흠의 혐의가 너무 가볍다. 병을 사칭하고 한가롭게 놀며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는 혐의다. 일족을 멸할 정도의 범죄였음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저지른 것에 비해 처벌이 엄청난 것을 보면 이 사건에도 뭔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하여 백제왕조를 멸망시킨 뒤 백제부흥군과 한창 싸울 때였다. 따라서 일종의 전시 상황이었다. 이런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혐의를 근거로 귀족의 일족을 멸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점을 본다면 진주·진흠이 평소 집권세력의 눈에 거슬렸고, 집권세력은 전시 상황을 틈타 그들의 사소한 잘못을 숙청의 빌미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성립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가끔 발생하듯이 전시상황을 이용해서 집권층이 역모사건을 통해 권력 안정을 도모한 사례였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역모사건의 결과나 파급력은 매우 큰 데 반해 기록 자체가 너무 소략하거나 범행이 너무 엉성하다면 조작된 사건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려시대 이전 시기처럼 자료가 너무 적은 시대인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역모사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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