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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김춘추의 평양성 회담
정권 쿠데타-권력통치 비법을 카피하다
2011. 09. 21   00:00 입력 | 2013. 01. 05   07:12 수정
 
신라의 김춘추(春秋)가 고구려로 향한 시기는 642년 10월 말경으로 여겨진다. 그는 국경 초소의 고구려 병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관할 지역의 성주에게 인도됐고, 신라 여왕의 국서를 보여주었다. 

성주는 서기를 불러 급히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 평양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길고 편편하게 다듬어진 나무 작대기(木簡)에 김춘추의 관등·신분과 나이 그와 동행한 사간(沙干) 훈신(訓信) 등의 그것을 적고, 국서의 내용을 필사했다.

성주는 김춘추의 입국에 관심이 없었다. 서슬이 퍼런 독재자 연개소문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이 신라 왕족을 어떻게 잘 처리해야 자신이 무탈할 수 있느냐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매뉴얼대로 해야 적어도 면피는 할 수 있다. 그는 기존에 정해진 처리 절차를 엄격하게 준수하는 데 집착했다.

안악 3호분 정사도. 오른쪽 신하는 가운데 있는 고구려 귀족에게 책목간(冊木簡)으로 된 보고서를 읽으면서 사안을 아뢰고 있다. 판단을 한 고구려 귀족이 명령을 내리고, 좌측에 있는 붓을 든 기록관(記室)이 그것을 목간(木簡)에 받아 적고 있다. 대국 고구려를 통치한 연개소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필자 제공#

필사한 목간을 다시 양식에 맞게 정서로 작성했다. 서류화된 목간은 정성스럽게 포장돼 말허리 가방에 실렸다. 파발은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신라 국경에서 평양까지 20㎞ 간격으로 있는 역(驛)에서 힘 좋은 말로 갈아탔다. 

신라 사절의 도착이 보고됐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에 들어온 신라 사절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봤다. 다음에 상세히 말하겠지만 두세 달 전 대야성이 백제에 의해 함락된 후 존망의 위기에 놓여 있던 상태에서 신라 사절은 고구려를 찾았다. 

평양에서 국경 초소로 돌아온 파발은 입국 허가를 통보했다. 김춘추 일행은 현지 병사들에게 인도됐다. 평양이 멀리 보이는 지역에 도착한 김춘추는 놀랐다. 경상도 골짜기에 살았던 그는 평원지대에 있는 거대 도시를 아직 본 적이 없었다. 당시 당나라 장안(長安)을 제외하고 평양만 한 대도시는 거의 없었다. 

평양성의 면적은 1160제곱미터로 현재 서울의 4대문만 한 크기다. 평양성의 남쪽으로 대동강의 본류, 동서쪽에는 장수천과 보통강이 흐르고 있어 도시의 자연 해자를 이루고 있었다. 김춘추는 대동강 남쪽에서 평양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야 했다. 길이 375m 폭 9m가 되는 나무로 지어진 거대한 다리였다. 실물의 규모는 1981년 여름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발굴로 확인됐다. 

대동강 남쪽에서 바라본 평양은 요새이기도 했다. 굳건한 성벽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부에도 외성(730만m²), 중성(300만m²), 내성(130만m²), 북성(25만m²) 등 4개의 구획으로 나누는 성벽이 있었다. 

김춘추 일행은 다리를 건너 평양성 남문으로 곧장 들어갔다. 광대한 건물들의 바다가 펼쳐졌다. 공방ㆍ상가ㆍ민가 등 기와 지붕을 한 많은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 한가운데로 강자갈로 포장된 곧고 긴 대로가 정북으로 뻗어 있었다. 도로 끝 정면에 고구려왕이 거주하는 웅장한 안학궁(安鶴宮)이 보였다. 도시는 남쪽 강 건너 다리에서 정북쪽 안학궁으로 이어지는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안학궁의 궁문이 보이는 지점에 다가갔을 때 거대한 광장이 나왔다. 광장은 국가의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요동 전선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개최되기도 했고, 축제가 열리면 왕이 성문 위의 누각에서 이를 직접 관람하기도 한다고 한다. 

궁궐 앞 광장이란 공개 처형을 집행하는 재판과 그 집행의 장소 기능도 했고, 신하나 백성들이 왕에게 탄원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한 달 전 탄원이 행동으로 이뤄졌다. 연개소문 정권도 이 광장에서 탄생했다.

안학궁의 문이 열리고 김춘추 일행이 들어갔다. 그들은 객사로 인도돼 연개소문을 기다렸다. 듣기로 연개소문은 위엄이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라 했다. 칼을 등에 2개, 양 허리에 2개, 손에 1개 들고 다니는 그를 누구도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며, 말을 타거나 내릴 때마다 항상 고구려 최고위 귀족 출신의 장수가 엎드리게 하고 그 등을 밟고 디뎠다고 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을 직접 만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김춘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왕명을 받고 신라에서 온 손님을 접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통역이 있었지만 북방 사투리를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야 어떻든 그는 왕의 신하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밝혔다. 

거만하지도 목에 힘이 들어가 있지도 않은 보통 체구의 남자였다. 단아한 예절과 귀족다운 기품도 있었다. 어찌 저러한 사람이 고구려왕과 주요 대신들을 모두 죽이고 집권자가 됐는지 의아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눈빛은 예리하고, 통찰력이 있어 보였다. 

김춘추는 연개소문에게 인도돼 부국의 풍요함이 보이는 거대한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연회의 흥을 북돋는 무희의 춤과 악사들의 연주도 있었으리라. ‘삼국사기’ 김유신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고구려왕이 태대대로(太大對盧) 개금(蓋金-연개소문)을 보내 객사를 정해주고 잔치를 베풀어 우대했다. 식사 대접을 특별하게 했다.” 

국제적인 인물인 김춘추를 통해 장막에 가려진 자신의 모습이 신라ㆍ백제ㆍ왜는 물론 당나라에도 알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연개소문은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주재한 연회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김춘추는 보장왕과 공식적인 회담을 위해 객사를 나섰다.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임을 숨기기 위해서였던지 고구려 보장왕은 많은 신료와 무장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회담장에 나왔다. 한눈에 봐도 왕의 좌우는 모두 연개소문의 사람들이었다. 

김춘추는 보장왕에게 백제와의 전쟁에서 자식을 잃은 아비로서 솔직하게 말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이렇게 전한다. “지금 백제는 긴 뱀과 큰 돼지가 돼 우리 강토를 침범하므로 저희 나라 임금이 대국(고구려)의 군사를 얻어 그 치욕을 씻고자 합니다. 그래서 신하인 저로 하여금 대왕께 명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보장왕이 대답했다. “죽령은 본시 우리(고구려) 땅이니 그대가 만약 죽령 서북의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왕은 자신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신라를 도와줄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회담이 진행될 수 없었다. 그리고 김춘추는 사람들에 의해 별관으로 인도됐다. 연금된 그는 모처럼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국제사회에서 단순히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고구려행이 감정에 치우친 헛된 짓이었는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배운 것이 없지는 않았다. 그는 연개소문의 쿠데타 장소와 그 상흔을 목격했고, 정권을 한 손에 쥔 그가 어떻게 국정을 수행하는지 보았다. 연개소문의 의중은 모두 보장왕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김춘추는 독재자 연개소문을 보고 혁명을 꿈꾸게 됐다. 그는 직전에 일사불란한 독재체제의 강력함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그해(642년) 대신과 왕족들을 추방하고 독재체제를 수립한 백제 의자왕이 신라를 급습해 신라 서부지역 총사령부인 대야성이 함락됐고, 여기서 딸과 사위를 잃었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있지만 신라는 다수의 귀족들이 회의체 화백(和白)을 통해 만사가 처리되고 있었다. 분쟁의 소지가 많아 이해관계를 조정하느라 결정은 늦었고, 구조적으로 뒷북을 쳤다. 

만성적인 전쟁 상태에서 화백이 지배하는 신라의 생존 확률은 거의 전무했다. 이로부터 5년 후인 647년 김유신의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로 화백을 전복하고 정권을 장악한 김춘추는 보위에 오르지 않았다. 진덕여왕을 앞에 세웠고, 귀족회의 의장에도 원로 알천(閼川)을 앉혔다. 김춘추는 이러한 권력포장을 연개소문에게 배웠던 것 같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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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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