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8230
기문(己汶)
1995년 집필 김정학 2017년 개정 백승옥(국립해양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한국고대사)
백제와 가야의 접경 지역에 있었던 지명.
내용
기문은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 7년(513) 6월조와 10년(516) 9월조 등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관련 기사를 정리해 보면, 원래 백제의 땅이었던 기문을 반파(伴跛)가 차지하자 백제는 왜(倭)의 힘을 빌려 되차지한다. 반파는 이에 대해서 반발하였지만 결국 기문은 백제에 귀속되고 만다. 반파는 경상북도 성주에 비정되기도 하지만, 고령에 존재했던 대가야의 또 다른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문은 6세기 전반 백제가 가야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지명이므로 당시 백제와 가야의 접경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문의 위치 비정 문제는 이른바 ‘임나일본부’ 문제와 결부되어 많은 논의가 있었다. 기문이 어디인가를 명확히 알 수 있다면, 당시 백제의 진출로와 더불어 당시 양국의 관계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문의 위치에 대해서는 섬진강유역이라는 설과 낙동강유역이라는 설이 있어 왔다. 각각의 설들은 지명 비정에 있어 『한원(翰苑)』과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의 관련기사를 주장의 근거로 삼아왔다. 660년에 편찬된 『한원』의 백제전에는 기문하(基汶河)에 대한 기술이 보이는데, ‘나라(백제)의 남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강은 섬진강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기문하에서의 기문(基汶)을 기문(己汶)과 동일시하여, 기문을 섬진강 주변에서 찾는 것이다. 전라북도 남원, 장수, 임실 등으로 비정하고 있다.
한편, 『신찬성씨록』의 길전연가보(吉田連家譜) 기사를 통해서도 역시 기문의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길전(吉田)’ 성(姓)의 유래를 설명하는 내용 중에, ‘임나국(任那國)에서 아뢰기를 저희들의 나라 동북(東北)에 삼기문지(三己汶地)가 있는데 상기문(上己汶)과 중기문(中己汶)과 하기문(下己汶)이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에서 기문은 임나의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임나는 애초 김해지역만을 지칭하다가, 후에는 고령지역만을 지칭하기도 하고, 일정지역 혹은 가야 전 지역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기사에서의 임나는 어느 지역인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임나가 어느 지역이든 이 기사만으로 보아서는 기문을 섬진강유역으로 비정하기는 어렵다. 임나(任那)의 동북에 있고 신라와 서로 다툴 수 있는 지역이면서 결국 백제의 땅에 속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는 낙동강 중류 유역의 어느 지역일 수밖에 없다.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으로 비정하는 설은 이러한 근거에 의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고대 지명의 경우 여러 곳에 동일 지명이 많다. 기문도 그러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문의 위치가 2개 지역이라 해도, 6세기 전반 백제의 가야지역 진출은 섬진강 유역의 기문지역으로 보인다. 기문과 관련해서 계체기의 어느 기사도 낙동강 유역의 기문과 연관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6세기 전반 백제의 가야지역 진출 방향이 섬진강 유역임을 말해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일본서기(日本書紀)
『가야 각국사 연구』(백승옥,혜안,2003)
『가야연맹사』(김태식,일조각,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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