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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4> 
제1부 낙동강의 여명 ③ 찢겨진 역사 힘겨운 복원

국회에서 화제가 된 가야

지난 23일 국회 문화관광위 국정감사장. 심재권(민주) 의원이 준비한 자료를 들추며 질의에 들어갔다.

“영국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고대 한국의 가야지역이 일본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일본 황국사관에 따른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실려 서방에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의 교과서들도 다르지 않다.”

순간 국감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심 의원은 국정홍보처장에게 “현재 파악하고 있는 외국 교과서의 잘못된 기술 내용은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다음날 속개된 국회 문광위 국감. 이번에는 김성호(민주) 의원이 목청을 돋웠다.

“지난 60년대초 경북 고령에서 도굴된 국보 제138호 삼국시대 금관은 삼성문화재단이 소유, 호암미술관에 보관중인데 이는 불법소장이 아닌가.”

김 의원의 질의는 계속 이어졌다. “1971년 9월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15차 회의록을 보면, 참석자인 문화재 위원과 공무원 14명 중 누구도 소유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도굴품은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대책을 말해보라.”

국회에서 가야가 모처럼 화제로 떠올랐다. 거론된 부분은 둘다 가야사의 아픈 상처다. 그러나 상처만 건드렸을 뿐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가야는 일본땅?

외국의 일부 교과서에 가야가 일본땅으로 나와 있다는 것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이 내세운 임나일본부설(고대 야마토 정권이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학설)은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2년부터 외국의 교과서에 서술된 한국 관련 내용을 분석해온 한국교육개발원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한국사 기술 왜곡 및 오류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한국교육개발원 이찬희(54) 국제교육정보연구본부장은 “우리와는 별로 악감정이 없을듯한 영국 조차 한국사를 엉터리로 게재하고 있다”며 “이는 왜곡된 역사를 확산 또는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전후 일본과 독일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해외에 홍보하는 사업에 일찌감치 투자, 그 결실을 거두고 있다”며 “우리도 대안을 중심으로 20~30년을 내다보면서 지속적으로 한국이미지 바로 세우기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고교생들이 배우는 ‘일본사’속 가야는 어떻게 서술돼 있을까.

최근 90년 이후 나온 검인정 10종 등 20여종의 일본 역사교과서를 집중 분석한 부경대 이근우(사학과) 교수는 “노골적으로 임나일본부를 퍼뜨리는 곳은 없지만, 핵심 논리는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일부 교과서는 ‘4세기 조선’을 소개한 지도에 가야(加耶)와 임나(任那)를 병기하거나 전라도 지방을 몽땅 포함시켜놓은 사례도 있다.

이 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임나’에 대해 명확한 의미규명을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무엇보다 우리 교과서에서 먼저 가야사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기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야금관의 유물 유전(流轉)

김성호 의원이 제기한 문제의 삼국시대 금관은 고령 금관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치된 견해다. 이 금관은 웃지못할 유물 유전(流轉)을 갖고 있다.

때는 1963년. 대구시 달성군 현풍에서 문화재 도굴을 일삼아오던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당시 중요한 문화재들은 대부분 국립박물관에 접수됐으나 이 가야금관과 일부 유물은 경로가 가려진 채 개인수중으로 넘어갔다. 최종 구매자는 삼성의 사주였던 고 이병철씨였다.

그후 1971년 국립박물관에서 호암 컬렉션이 특별전시될 때 이 금관이 선보였고 같은 해 국보로 지정됐다. 이를 두고 도굴품이 ‘세탁됐다’는 지적도 무성했다.

이 금관은 가야지역에서 나온 유일한 순금 보관으로, 대가야의 강성한 세력을 읽게 한다. 경산대 김세기(역사지리학부) 교수는 “현풍에서 출토됐다는 말도 있으나 고령 지산동 32호분과 44호분에서 나온 금동관과 금동제 등의 모티프로 봐서 고령 출토가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금관의 고향이랄 수 있는 경북 고령군 지산동의 왕릉전시관에는 진짜같은 가짜 가야금관이 전시돼 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유물이 딴데 가 있는 것이다.

역사 왜곡의 희생양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면 야마토 왕조의 식민지가 피해를 보니, 백제를 도와 신라의 침입을 막아라.” “당나라가 한반도를 침입하려고 하니 당나라의 공격에서 식민지를 안전하게 하라.”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가 2년전 게임 ‘제국의 시대’에 다룬 내용이다.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수용한 이 게임은 잘못된 고대 동북아의 역사를 전세계에 소개하는 꼴이 됐다. 이 사건은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키로 해 일단락됐으나 정보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인터넷상에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관련 왜곡정보가 수두룩해 이와 유사한 사고는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부산시립박물관 송계현 복천분관장은 “정보사회는 정보의 유통·확산이 자유로운 반면 일방통행식으로 확산되면 대응이 어렵다”면서 “가야사 정립 작업과 더불어 모두가 감시자가 되어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야사와 관련해 최근 주목되는 변화도 있다.

구미의 적잖은 교과서가 가야사를 잘못 기술하고 있는 것과 달리, 최근 영어로 출판되는 전문서적과 백과사전류들은 대체로 임나일본부를 중립적·유보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별도로 가야 항목을 설정하고 임나일본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여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영어권에 비해 가야사가 매우 열악하게 알려져 있는 프랑스나 독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야사 정보를 현지 학계나 출판계에 직접 전달하는 식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특별취재팀/박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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