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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6> 구형왕릉의 수수께끼

“나라를 보전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속에 묻히랴. 차라리 돌속에 들어가서라도 가야 백성을 지키겠노라….”

금관가야의 구형왕이 죽음을 앞두고 별궁이 있었다고 전하는 지리산 자락 수정궁(水晶宮)에서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이다. 물론 전설이다. 사뭇 비장감을 주는 이 전설은 그러나 ‘삼국사기’ 기록과는 배치된다.

전설은 또 있다. “나라가 망하려 하자 구형왕은 지리산으로 피해 들어와 천연요새인 국(國)골에서 도성을 세우려 했다는 것이지요. 왕등재 일원에서도 토성을 쌓고 신라에 항전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산청의 향토사 연구가 조종명(62·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씨의 이야기다.

지리산 동부권역에는 구형왕에 얽힌 지명과 전설이 유난히 많다. 국골과 추성산성터 주변의 두지터(식량저장고), 구형왕이 올랐다는 왕등재와 그 일대의 토성, 전(傳)구형왕릉이 위치한 왕산(王山), 구형왕을 향사하는 덕양전(德讓殿·문화재 자료 제50호),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 장군의 훈련터 등이 그것이다.

조종명씨는 “산청지역에 전해지는 구형왕 전설은 부분적으로 과장·미화된 측면도 있겠지만 가야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傳)구형왕릉과 관련된 후대의 사료도 있다. 1800년에 편찬된 ‘가락삼왕사적고’에 인용된 ‘왕산사기(王山寺記)’에 따르면, 신라에 항복하여 금관군도독이 된 구형왕은 말년에 산청의 왕산에 가서 살다가 죽어 장사 지내되 돌을 쌓아 언덕을 만들었다고 돼 있다.

가야사 연구자들은 “구형왕릉이 진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산청에 있었던 가야 소국의 역사가 비운의 구형왕 전설과 중첩돼 전승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알듯 모를듯 안개를 피우는 지리산 자락의 가야 자취는 체계적인 학술적 규명작업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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