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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8> 제2부 비밀의 문 ②허왕후를 찾아서
국제신문 2002년 11월1일

어디서 왔을까

신비에 싸인 가야사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의 출신지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허왕후의 입을 빌려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성은 허(許)요,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아유타국은 어디일까

여러가지 가설이 난무하지만 인도 갠지스강 중류에 있는 ‘아요디아’라는 곳으로 초점이 모아진다. 아요디아는 인도 태양왕조의 옛 도읍으로, 기원전 5세기께 그 나라의 왕자였던 ‘라마’를 태양왕의 화신으로 숭배해온 곳이다. 수로왕 묘역의 쌍어와 태양문양은 바로 아요디아에서 사용된 것과 거의 일치한다.

또 태국 메남강가의 고도 ‘아유티야’라는 주장(이종기)과 허왕후의 시호인 ‘보주태후(普州太后)’에 힌트를 얻어 중국 사천성 안악현이라는 견해(김병모)도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허왕후의 인도 출신설을 부정하는 경향도 있다.

역사학자 이희근(42)씨는 최근 펴낸 ‘한국사 그 끝나지 않은 의문’(다우)에서 “허왕후는 인도인이 아니라 당시 해양세력인 왜(倭) 출신일 것”이라며 “그의 오빠인 장유화상에 의해 불교가 전해졌다는 것도 후대에 의해 꾸며진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인제대 이영식(사학과) 교수는 허왕후가 평안도나 황해도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허왕후가 가지고 왔다는 물품이 낙랑 등 한 4군이 있던 서북한 지역의 선진문물로 추정되고 있어 그곳의 지배계급 출신일 것”이라고 말한다.

부산대 백승충(역사교육) 교수 역시 허왕후 집단이 가져온 한사잡물(漢肆雜物·한나라의 호화로운 문물)등을 주목하고 북방 유이민 집단일 것으로 추정한다.

허왕후 출신지 문제는 결정적인 고고학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통설’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어디로 왔을까

허왕후의 출신지 못지않게 흥미로운 대목이 허왕후 초행길(신행길)이다. ‘삼국유사’에는 허왕후가 가락국에 도착, 수로왕과 혼인하기까지의 ‘신행루트’가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드디어 유천간을 시켜 날랜 배를 몰고 준마를 끌고 가 망산도(望山島)에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 분부하여 승점(乘岾)으로 가게 했다…’.

수로왕이 허왕후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맞을 채비를 하는 모습이다. 결혼담에 나오는 지명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다.

우선 망산도에 대해서는 진해시 용원의 욕망산이라는 견해(허명철), 김해시 풍류동·명법동에 걸쳐 있는 칠산(七山)이라는 견해(김태식), 김해시내의 전산(田山)이라는 견해(황규성) 등이 맞서 있다. 전설로는 진해시 용원동 해안의 돌무더기인 ‘망산도’(비석도 있음)가 그럴듯하나 가락국의 궁성(김해 봉황대)에서 너무 멀다.

허왕후가 처음 배를 댔다는 주포(主浦)도 아리송하다. 강서구 녹산동과 경계인 진해시 웅동2동 가주마을 주포(主浦)는 지금도 임이 내린 갯가라 해서 ‘임개’라 불리고 있지만 정확한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일부 학자들은 주포가 지금의 강서구 녹산동 상곡마을, 옛 장락나루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허왕후가 비단바지를 벗어 던졌다는 능현(비단고개), 그의 배가 처음 발견됐다는 기출변(旗出邊), 수로왕과 첫밤을 지낸 명월산 등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있다.

김해시는 얼마전 ‘허왕후 초행길’을 역사체험 코스로 삼기 위해 전문가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으나 코스가 3~4개로 엇갈려 코스정립 작업을 포기했다. 코스가 경남 진해시, 김해시, 부산 강서구에 겹쳐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전문가들은 “설화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명확히 규명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해석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며 “허왕후 설화도 역사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왕후와의 대화

허왕후는 설화에서 태어나 역사로 편입된 여인이다. 김해시 구산동에는 허왕후릉이 거짓말처럼 실재하고 후손인 김해 허씨들도 번창하고 있다.

허왕후 설화는 신라 문무왕대나 고려 문종 연간에 종래의 전승을 토대로 불교적으로 윤색됐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지명과 신화, 전설, 민속학적 풍습 등 다양한 내용이 숨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허왕후 일행이 풍랑방지를 위해 싣고 왔다는 파사석탑과 왕후사(452년) 건립 등은 남방불교 전래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고려시대 때 김해 일원에서는 ‘매년 음력 7월29일 승점으로 올라가 장막을 설치하고 가무를 즐기면서 편을 나눠 망산도를 기점으로 말은 육지로 달리고 배는 북으로 옛 포구를 향해 달리는 놀이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허왕후 도래를 기념한 이 놀이는 매년 봄 김해 가락문화제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지난 9월말 부산아시안게임(AG) 개막 공연으로 선보인 ‘만남’과 그에앞서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AG기념 총체무극 ‘허왕후’는 인도공주 허황옥이 가락국을 찾는 과정을 그려 관심을 끌었다.

이는 허왕후 설화가 한국문화사의 상징적 테마이며, 의미있는 역사문화 콘텐츠가 돼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야가 살아온다 <8> 허왕후 역사추리
국제신문/2002년 11월 1일
 
‘허왕후’는 한국고대사의 신비이자 수수께끼다. 고대사회의 국제결혼과 해상의 실크로드, 왕가의 로맨스, 문물교류 등 다양한 역사추리와 상상력을 발동시키기 때문이다.

허왕후의 본명은 허황옥(許黃玉)이다. ‘황옥’이란 이름은 중국의 어느 ‘황제’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허황후란 말은 이 때문에 붙여진듯 하다. 그러나 수로왕과 짝을 이루는 표현은 허왕후가 어울린다.

허왕후의 실체를 추적한 작업은 적지 않았다. 지난 70년대 중반 아동문학가 이종기씨(95년 작고)는 인도 아요디아 기행을 바탕으로 ‘가락국탐사’(일지사·1975)를 저술, 이 방면의 물꼬를 텄다.

이후 비슷한 내용에 중국 보주(普州)에서 허황옥의 직접적인 고향을 찾고, 일본으로 진출했던 항목을 보강했던 역사학자 김병모씨의 ‘김수로왕비 허황옥’(조선일보사·1994)과 개정판 ‘김수로왕비의 혼인길’(푸른솔·1999)도 주목됐다.

지난 97년 출간된 ‘춤추는 신녀-일본의 첫 왕은 한국인이었다’(이종기·동아일보사)는 충격적인 역사탐구였다. 저자는 당시 전설의 바다에 떠오른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직조해 왜국의 첫 왕 히미코(卑彌乎)는 가락국의 묘견공주라고 주장했다.

이와달리 지난해 8월 소설가 강평원(54)씨는 ‘쌍어속의 가야사’(생각하는 백성)에서 허왕후의 고향은 인도 아요디아가 아니라 중국 내륙지방인 서장성의 아유타국 아리지방이며, 허황옥이 떠나면서 지은 것이 ‘아리랑’이라는 이색 주장을 폈다.

강씨는 또 중국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을 근거로 가야의 실체는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면서 가락국 상징인 쌍어는 중국 하나라 우임금의 아버지 ‘곤’(꿅)이며 수로왕은 그 후손이라고 했다.

강씨는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책도 준비중인데, 여기서는 가야인의 일본경영을 집중적으로 규명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 특별취재팀 /박창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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