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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강, 두만강을 말한다(19) - 고구려시기 녀성파워의 이모저모
4. 시동생과 재혼한 고구려의 우왕후
김관웅  2012-9-6 9:20:23 

유교는 장유유서(长幼有序)라는 리념을 내세워 가족성원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엄하게 규정해놓았다. “장형여부(长兄如父)요, 장수여모(长嫂如母)”, 즉 큰형님은 아버지와 같은 지존의 존재요, 큰형수는 어머니 같은 지엄의 존재라고 인정했다. 설사 큰형이나 큰형수가 아니고 둘째형이나 둘째형수, 셋째형이나 셋째형수, 넷째형이나 넷째형수라고 해도 동생벌 되는이들은 깎듯하게 모시고 받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유교의 영향이 크게 없었던 고구려시기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것은 아주 례사로운 일로 간주되였다. 이러한 고구려의 혼인풍속을 이른바 “형사취수(兄死娶嫂)”라고 한다. 이러한 “형사취수(兄死娶嫂)”의 습속은 평민들이나 노예들 사이에만 존재한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도 아주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고구려의 제9대왕 고국천왕(故国川王, ?―197)의 왕후였던 우씨(于氏)와 그녀의 시동생이였던 고구려의 제10대왕 산상왕(山上王, ?-227) 사이의 혼인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이 “형사취수(兄死娶嫂)”의 기이한 혼인이 자세하게 기록되여있다.[8]
 
고구려의 제9대왕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인 연나부(椽那部)의 딸이였다. 고국천왕이 농부출신인 을파소를 재상으로 임명하여 의욕적으로 한창 새로운 정치를 펼쳐가고있던중인 197년 5월에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국천왕의 병세를 잘 알고있었던 우씨왕후는 남편이 죽자 아주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였다.
 
“대왕께서 돌아가시면 나는 어찌 되는가? 다음 왕은 분명 나를 궁궐에서 몰아낼것이고 나를 믿고있는 연나부의 형제들은 모두들 권좌에서 밀려날것이다. 이대로 앉아서 내 운명이 비참해지는 모습을 볼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낳은 아들이 없으니 다음 왕은 대왕의 동생들가운데서 나올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왕을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
 
참으로 대담한 생각이였고 엄청난 배짱과 두둑한 배포였다.
 
우씨왕후는 왕을 모시던 측근들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입단속을 시키고 왕이 죽은 날 밤중에 몰래 궁궐을 빠져나갔다. 우씨가 밤에 몰래 찾아간 곳은 고국천왕의 바로 아래동생인 발기의 집이였다. 우씨는 대왕이 죽은 사실은 감추고 발기의 내중을 떠보았다.
 
“대왕께서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으니 왕제(王弟)께서 계승하는것이 좋을것이오.”
 
우씨는 발기가 왕이 되는데 도움을 줄터이니 그 대가를 달라는 말을 한것이였다. 하지만 발기는 자신더러 왕위를 계승하라고 한 말속에 숨겨져있는 우씨의 참뜻을 몰랐다.
 
“하늘에 떠있는 별의 운행은 다 돌아가는 법칙이 있는것이며 왕위를 잇는것 또한 그러하니 어찌 가볍게 이야기할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밤늦은 시간에 왕후께서 저희 집에 들른것 또한 례의에 벗어난것이 아닙니까.”
 
발기는 자기가 왕위계승 1순위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말을 내뱉았던것이다. 우씨는 발기에게 모욕을 당하고는 곧장 발기의 동생 연우의 집을 찾아갔다.
 
연우가 발기와는 달리 자기를 살갑게 대하는것을 보고 우씨는 연우에게 의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왕께서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으니 발기가 제일 웃동생이기때문에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터인데 도리여 나한테 거만하게 구는거예요. 그래서 지금 왕제를 뵈러 온것입니다.”
 
연우는 이 말을 듣고는 더욱 정성을 다해 우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애를 썼다.
 
연우는 식탁에 올라온 고기를 베여 우씨에게 권하려고 하다가 그만 손가락을 다쳤다. 우씨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서 연우의 다친 손가락을 싸매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의 마음은 통하게 되였다.
우씨가 그만 궁궐로 돌아가려고 하면서 연우에게 넌지시 말했다.
 
“밤이 깊어 무순 일이라도 생길가봐 념려가 됩니다. 왕제께서 나를 궁궐까지 바래다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제가 바래다드려야지요. 왕후마마의 길을 제가 밝혀드리겠습니다.”
 
연우가 허락하자 우씨는 당당히 연우의 손을 잡고 궁궐로 돌아왔다.
 
숨가쁜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았다. 우씨는 고국천왕의 유언이라고 꾸며서 신하들로 하여금 연우를 추대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하였다. 연우는 우씨가 짜놓은 각본대로 형을 이어 왕위에 올라 고구려 제10대 국왕인 산상왕이 되였다.
우씨는 시동생인 연우를 산상왕으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놓았다. 비록 그후 발기가 불복하여 반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우씨가 연우와 련합전선을 펼쳐서 대처하는 바람에 반기는 실패하여 자살하였다.
 
그렇다면 산상왕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형수 우씨를 어떻게 대접했을가? 산상왕은 놀랍게도 형수인 우씨를 자신의 왕후로 삼아버렸다. 즉 우씨왕후는 시동생 산상왕과 재혼한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력사에 우씨왕후가 유일하지는 않다. 쉐익스피어의 비극 《헴리트》에 나오는 왕후였던 햄리트의 어머니가 바로 자기의 남편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동생과 재혼하였으니 그 케이스가 상당히 비슷하다. 다만 햄리트의 어머니는 우씨처럼 능동적으로 자기가 새 왕을 만들어서 다시 왕후로 된것은 아니다.
 
스스로 왕을 선택하여 계속 왕후의 자리를 지킨 우씨왕후를 통해 우리는 고구려시대 녀성들의 지혜로움과 당당함을 충분히 보아낼수 있지 않는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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