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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의 강, 두만강을 말한다(19) - 고구려시기 녀성파워의 이모저모
6. 자기의 의지대로 산 고구려의 평강공주
김관웅  2012-9-6 9:20:23

《삼국사기》[11]에 기록되여있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기이한 결혼담은 인구에 회자된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고구려 제25대왕 평원왕(平原王, ?―590)에게는 자식들이 여럿이 있었다. 뒤날 영양왕(婴阳王, ?―618)이 되는 맏아들 원(元), 영류왕(荣留王, ?―642)이 되는 건무(建武), 보장왕(宝藏王, ?―682)의 아버지인 태양 그리고 유명한 평강공주(平冈公主, ?-?)가 그들이다.
 
그런데 평강공주는 어린 시절 울기를 잘하여 평원왕은 딸을 자주 놀리군 했다.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는 좋은데시집 보낼수 없겠구나. 아마도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 보내야겠다.”
 
구중궁궐속에 있는 평원왕한테까지 소문이 나서 그 이름을 거론한 온달은 어떤 인물인가?
온달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 즉 안학궁주변에서 살았다. 그의 얼굴은 아주 못생겼고 옷차림은 가난때문에 아주 루추했다. 그는 길거리에 나가 밥을 빌거나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앞을 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봉양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늘 웃으면서 받아넘겼기에 당시 평양사람들은 온달을 보고 “바보 온달”이라고 했다.
 
평강공주가 16세가 되였을 때 평원왕은 딸을 당시 권력을 가진 상부 고씨의 아들과 혼인을 시키려고 했으나 평강공주는 아주 당돌하게 대답했다.
 
“부왕께서는 항상 저를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고 하시고서 이제 와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내신다고 하십니까. 필부들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찌 일구이언을 하시는겁니까? 임금이 거짓말을 하신다면 누가 왕명을 따르오리까. 지금 부왕의 명령은 잘못된것입니다. 소녀는 온달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딸의 이 말에 평원왕은 크게 역정을 냈다.
“고구려의 공주가 어찌 비천한 온달에게 시집을 갈수 있느냐. 네가 어릴적에 내가 자주 한 말은 롱담이였다고 했는데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는 내 딸이라고 할수 없다. 네 마음대로 가고싶은 곳으로 가거라.”
 
평강공주는 끝내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온달에게 시집을 갔다. 조선시대나 같았다면 평강공주는 왕실의 명예를 어지럽혔다고 죽음을 당했을것이고 온달 역시 릉지처람을 당했을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시대에 평강공주 같은―오늘날의 말을 빌린다면―“녀권주의자들”이 자유련애의 자기 주장을 부왕앞에서마저 펼칠수 있었던 점은 옛날의 녀성들은 어쨌다는 식의 고정관념이나 남녀차별적인 생각들을 가지고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는것이다.
 
평강공주는 제발로 걸어서 온달네 집에 시집을 갔을뿐만아니라 금팔찌, 금반지 등 장신구들을 팔아서 집과 농토, 소, 말 등 각종 세간을 사고 남편 온달이 고구려의 기둥감이 되도록 열심히 글을 가르치고 무예를 연마하도록 정성껏 내조를 하였다. 평강공주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서 온달은 어엿한 무사로 성장하였고 국왕이 참가한 수렵대회에 나가서 단연 일등을 하여 평원왕의 눈에 들게 되였다. 그후에는 여러번의 전투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워 평원왕도 자기의 사위를 자랑하기까지 되였다. 밑바닥인생을 사는 거지였던 온달은 평강공주의 덕분에 평원왕의 부마로서 큰 신임을 받게 되였다.
 
당시 고구려가 대륙에서 밀려오는 돌궐 등과의 싸움에 신경을 쓰고있는 틈에 신라가 한강류역에 있는 고구려의 땅을 잠식하여왔다. 배후가 위험스러우면 안된다고 생각한 온달은 먼저 신라를 한강류역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강공주의 오빠인 영양왕은 온달의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다.
 
온달은 전장에 나가기전에 평강공주에게 맹세했다.
“조령(鸟岭)과 죽령(竹岭) 이북의 땅을 되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것이오.”
 
평강공주와 이런 약속을 하면서 온달은 강한 의지를 갖고 싸움터에 나갔다. 온달은 신라가 차지하고있던 아차성[12]을 공격했다. 온달은 아차성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그만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평강공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온달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했다.
 
장례를 치르고자 온달의 시신을 넣은 관을 옮기려고 했으나 그 관은 땅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온달이 평강공주한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때문이라고 여기고 평강공주를 모셔왔다. 평강공주는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살고 죽는것이 이미 결정되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그러자 관이 움직이였다. 온달의 시신은 평양으로 옮겨졌고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다. 영양왕도 이를 듣고 몹시 슬퍼했다. 온달은 고구려의 영웅으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로부터 바보취급을 당했던 비천한 온달이 고구려의 불세출의 영웅으로 변신한 과정은 어쩌면 단군신화에서 천한 짐승이였던 곰이 웅녀로 변신하여 천제의 아들인 환웅과 결혼하여 화려하게 거듭나는것과 지극히 류사하다. 바보 온달이 영웅 온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평강공주라는 이 녀성의 힘과 정성이 절대적인 작용을 했음은 두말할것도 없다.
 
평강공주는 부왕의 명을 거역하면서라도 자신의 뚜렷한 의지를 갖고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바보라 놀림받던 남편 온달을 고구려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한 현명한 안해이자 위대한 녀성이였다.
 
우리는 평강공주를 통해서도 고구려시기 녀성파워의 일단을 선명하게 보아낼수 있다.
 
연변문학 2011.7호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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