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004_0010

부여의 산업과 생산물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부여(夫餘)의] 토지는 오곡(五穀)이 자라기에는 적당하지만, 오과(五果)는 생산되지 않는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其國善養牲. 出名馬·赤玉·貂狖·美珠, 珠大者如酸棗.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그 나라 사람들은 가축을 잘 기른다. 명마(名馬)와 적옥(赤玉), 담비와 원숭이 [가죽] 및 아름다운 구슬이 산출되는데, 구슬 가운데 큰 것은 대추[酸棗]만 하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해설

이 사료는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의 일부로, 부여(夫餘)의 농업 생산과 특산물에 관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부여의 토지는 오곡(五穀), 즉 쌀·보리·콩·조·기장과 같은 각종 곡물의 재배에 적합하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부여의 기본적인 생업은 농업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부여에서는 오과(五果), 즉 복숭아·자두·살구·밤·대추와 같은 과실(果實)은 생산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부여의 생업은 농업이 중심이 되었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가축을 잘 기른다”라고 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목축업도 겸하였다. 따라서 부여는 반농반목(半農半牧)의 경제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여에 목축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사실은 관직명을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猪加)·구가(狗加)·대사(犬使)·대사자(犬使者)처럼 여러 가축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내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부여인들은 대체로 이러한 가축들, 곧 즉 소·말·양·돼지·개·닭 등을 사육했으리라 여겨진다. 특히 부여의 가축 중에서도 명마(名馬)는 중국에도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이렇듯 부여에서 목축업이 발달한 것은 대평원을 가지고 있던 지리적 이점 덕분이었다.

한편 부여의 특산물로는 적옥(赤玉)과 아름다운 구슬, 담비와 원숭이 가죽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부여의 특산물은 중국을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교역에 활용되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송호정, 「고조선·부여·삼한」,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송호정, 「부여의 정치와 사회」, 『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97.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jo_004r_0010_002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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