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210.110.162.98/palhae/yutxt1.htmhttp://210.110.162.98/palhae/kukuk1.htm

발해의 첫 도읍지(구국) 동모산(東牟山)
길림성 돈화시 성산자산(吉林省 敦化市 城山子山)

발해가 맨 처음 나라를 세웠던 곳은 오늘날 중국의 길림성 돈화시의 성산자산(吉林省 敦化市 城山子山) 일대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당에 의해 營州부근으로 강제 이민당하였던 유민들은 30년만에 고향을 찾아와 '東牟山'아래에 나라를 다시 세웠는데, '구국(舊國)'이라 부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만주지명 가운데는 '東牟山'이라는 이름이 전혀 없고 발굴도 완벽하지 못하여 동모산에 대한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즉, 종전까지는 돈화의 오동성(敖東城)을 발해의 최초 도읍지로 비정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강력한 의문이 제기되어 성산자산(城山子山)을 동모산이라 주목하고 있다. 이곳은 방어적 산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산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발해유물들이 많이 발견되는 목단강(牡丹江)건너 영승(永勝)유적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해시대의 동모산이었을 성산자산은 지금 돈화시 현유진(賢儒鎭) 성산자촌(城山子山村)에 있고 돈화분지에 우뚝선 해발 600미터의 작은 산이다. 이 산의 동쪽 4키로 지점에는 목단강 상류가 南에서 北으로 흐르고 있고, 또 산의 북쪽을 끼고는 대석하(大石河)가 西에서 東으로 흐르고 있다. 남아 있는 성터는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서 둘레가 2키로 정도이고 흙과 모래를 섞어 쌓았다.

이 지역이 발해의 첫 도읍지였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동북으로 10키로 정도에 있는 발해왕족과 평민들의 육정산(六頂山) 고분군이 발견됨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다. 즉, 육정산 고분군의 제1묘구(제1고분군)에서 발해시조 대조영의 증손녀이자 제3대 문왕의 둘째 딸인 정혜공주묘(貞惠公主墓)가 1949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2묘구에서는 이보다 신분이 좀 낮았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무덤들도 50여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정혜공주묘는 무덤쌓는 방식[횡혈식 석실묘橫穴式 石室墓]이나 천정방식[말각抹角] 등을 통해 발해국의 종족계통과 문화적 성격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고, 또한 거기에서 발견된 묘비 역시 무왕릉(武王陵)으로 보이는 진능(珍陵)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도 마련해 주었다. 따라서 이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는 주거지는 여기에서 멀지 않은 동모산 아래의 '구국'이었음에 틀림없다.

발해가 이곳에서 수도를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또는 顯州)로 옮긴 시기는 대개 제3대 문왕19년인 755년 경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동모산을 중심으로 한 수도시기는 약 57년 정도였다. 수도를 옮긴 이유는 국력 신장과 인구증가에 따른 경제 문제가 가장 컸지 않았는가 한다. 그러나, 발해건국 초기의 동모산은 발해 건국과 적대세력의 방어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던 곳이다. 

돈화 육정산 고분군(발해 왕손 및 귀족 무덤군)(현 길림성 돈화시)


발해 건국 터였던 돈화 성산자산성에서 본 오루하(대석하)(현 길림성 돈화시)

돈화 오동성(발해 건국터 부근)(현 길림성 돈화시) 


돈화 24개돌 유적지(역참 내지 창고터로 알려짐)
 

길림성 돈화 주변도(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육정산 고분군 평면도(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돈화 정혜공주묘 평단면도(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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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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