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621113012483
"제2의 정은경 나올 수 있을까" .. '공직' 기피하는 의사들
안태호 입력 2020.06.21. 11:30
의사 공직자 수요 늘지만 인력 구하기 어려워
민간 연봉의 3분의 1에 불과..의견 반영도 더뎌
공공의대 설립 초읽기..공직 진로 적극 홍보해야
[파이낸셜뉴스]
"매번 역학조사관을 증원하자고 한다. 뽑을 사람도 없는데 증원해봤자 뭐하나."(예방의학 전문의)
정부의 감염병 대응 체계 강화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부가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고 지역 대응체계도 강화키로 했지만 전문인력 확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승격될 질병관리청과 지역센터 확대에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같이 전문성을 갖춘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의사들이 공직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서다. 민간에 비해 낮은 보수와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직 경험이 있거나 공무원 조직과 함께 일했던 의사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정원 늘려도 지원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11일 오후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에게 코로나19 대응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질본이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후 정은경 본부장과 같이 전문성을 갖춘 의사인력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의사들이 공직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제공. 뉴스1.
17일 인사혁신처 공무원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의사면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답한 공무원은 총 1647명이다. 국가직 1102명, 지방직 545명이다.
이들의 업무는 크게 '행정'과 '진료'로 나뉜다. 행정직은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보건·의료정책을 설계한다. 보건복지부, 질본, 환경부·고용노동부(산업의학) 등에 속해있다. 진료를 보는 의사들은 지역 보건소, 법무부(교정시설 진료) 등에서 환자를 돌본다.
의사 출신 공직자는 5년 전(2013년, 1411명)보다 236명 늘었다. 그러나 각 기관에서는 여전히 의사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사회가 복잡화됨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의학적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수혈돼 효과적인 정책설계가 이뤄져야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역학조사관'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메르스 발생 이후 각 지자체가 채용 가능한 역학조사관 정원을 늘렸다. 허나 이번 코로나19 확산 때도 역학조사관 부족문제는 어김없이 재현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역학조사관 총 정원 40명 중 정식 조사관은 30명에 불과하다.
■턱없이 적은 보수 '민간의 3분의 1'
공직 경험이 있는 의사들은 보수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복합적인 원인들을 따져보기에 앞서 '돈이 해결돼야 한다'는 솔직한 의견을 내놨다.
개방형 제도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A씨는 "대학교수에서 공직으로 넘어왔는데 연봉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전공과 경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페이닥터들은 (공직으로 오면 연봉이) 3분의 1 아래로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료 의사들을 모셔오려고 해도 낮은 급여 때문에 결정을 못한다"며 "특히 가족이 있으면 더하다"고 했다.
2년 가량 공직에 몸담았던 의사 B씨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사람이 필요하면 100%까지는 어렵더라도 약간 낮은 수준은 돼야한다"고 전했다.
행정업무를 보는 의사들은 일반직 호봉과 동일하다. 진료 업무에 종사하는 일반직은 의료업무수당으로 60만~95만원을 더 받는다. 금액은 근무 지역과 전문의 취득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정해진 기간만 일하는 전문임기제(계약직)는 사정이 조금 낫다.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거나 전문성이 특히 높은 경우, 보수를 높여줄 수 있도록 열어놨기 때문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의 사례를 종합하면 대략 7000만원~8000만원 선이었다. 그래도 민간에 비하면 크게 모자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민간 의사 평균연봉은 2019년 기준 1억5600만원이다. 월 1300만원에 달한다.
정부서울청사 정문. 뉴스1.
■전문가 뽑아놓고 의견 반영은 안해
경직된 문화도 의사들이 공직에 몸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품고 공직에 입문했다가도 한계를 느껴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A씨는 "전문가를 뽑아놨으면 정책에 잘 반영해줘야하는데 잘 안된다"며 "뭐하러 (전문가를) 뽑아놨는지 의문이 든다"고 털어놨다.
예방의학과 전공의 C씨는 일찌감치 공직에 대한 뜻을 접었다. 한 때 그도 보건복지부나 질본에 들어가려고 했다. 의료정책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굉장히 훌륭한 선배들이 많았는데 공직에만 들어가면 왜 저렇게 됐을까 싶을 정도로, 말 그대로 공무원이 돼버렸다"며 "단 한번도 예외 사례를 본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C씨는 '순환보직'도 언급했다. 그는 "공중보건은 몇 년 앞을 내다봐하는데 익숙해질만하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린다"고 지적했다.
■공공의과대학 대안될까
현재 딱부러지는 해결책은 없다. 의사가 특별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큼 특별한 영역을 공직에 마련해야하지만, 한 직업군만을 위한 인사 체계를 별도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임기제의 경우 인사처 협의를 거치면 이론 상 임금 인상의 제한이 없다. 다만 기관장 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일이 생겨버릴수도 있는탓에 실현 가능성은 적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공공의대'가 거론된다. 국가가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졸업생들은 공공보건 분야나 지역에서 일정기간 의무종사하는 방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지자체 최초로 공공의대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의사협회 등 관련 이익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는터라 실제 설립으로 이어지기까진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노조원들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의사인력 확충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규탄,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입법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채용하겠다면서 홍보는 소극적
채용 제도 개선과 의대생 등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홍보도 당장 실천 가능한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임기제 공무원은 각 부처가 직접 채용할 수 있지만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사인력 부족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했다가 해고 당한 강윤희 전 심사관은 "식약처가 채용 공고를 식약처 채용사이트에만 올리고 있었다"며 "의약품·의료기기가 환자에게 미치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데 임상적인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식약처는 채용의지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식약처의 의사인력 부족은 국회 국정감사의 단골메뉴다. 수년 간 지적에도 의사 인력은 10여명에 불과하다. 반면 약사는 200여명에 달한다. 의사가 800명 이상 근무하는 미국 FDA와 대조적이다.
그는 공직 진출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심사관은 "공직분야 진로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다"며 "보건복지부, 질본, 식약처 등 의사 인력이 필요한 부처들이 함께 대학, 학회를 찾아 홍보하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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