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131
* "[고구려대탐험]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에서 석대자산성 부분만 옮겼습니다.

◇석대자산성(石臺子山城)

[고구려대탐험]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2008년 01월 10일 (목) |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webmaster@kgnews.co.kr

◇석대자산성(石臺子山城)

▲ 철기, 토기 등 고구려 시대 유물이 계속 발견되자 출입을 막아 놓은 휘산 풍치지구 기반산(棋盤山) 기슭의 석대자산성의 저수조.

요녕성 심양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35㎞ 떨어진 휘산 풍치지구(輝山風景區) 안에 있는 기반산(棋盤山) 풍경구 내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성은 1987년 문화재 재조사 때 심양시 문물조사대에 의해 발견됐으며, 1990년 이래 여러 차례 발굴을 통해 철기, 토기, 쇠화살촉, 갑옷편 등의 유물과 함께 건물터와 부엌 등 주거 유적이 발견됐다.

성벽의 총 둘레는 1천375m로 그리 길지 않지만, 치(雉·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에서 튀어나오게 쌓은 시설)가 10개나 되는 보기 드문 산성이다.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산성 가운데 치가 가장 많이 설치됐으며, 성의 수구(水口)도 발견되는 등 고구려성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아 놓은 풍치지구 기반산(棋盤山) 기슭의 석대자산성은 비교적 잘 보존 되어 있다. 자연지세를 이용한 성벽은 1.5~2m의 높이로 1천375m로 10개의 치로 만들어진 산성이다.

석대자산성은 산의 자연적인 형세를 이용해 쌓았다. 산세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며 산성 동쪽과 남쪽은 포하(蒲河)계곡과 닿아 있다.

산성 바깥쪽 서·북쪽은 모두 계곡이고, 서북 봉우리와 북쪽의 대양십산(大洋什山)은 산등성이가 서로 이어져 있다. 대양십산은 병풍을 두른 듯 산성 서북쪽에 우뚝 서 있다. 

서쪽 계곡은 제법 넓고 깊어 구도구(九道溝)라고 부르고, 북쪽 계곡은 좁고 얕아 십도구(十道溝)라고 부른다. 구도구와 십도구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산성은 주변 산들이 자연스럽게 감싸고 있는 형태다. 

산성은 자연지세를 활용해 성벽을 쌓았으며 골짜기 입구나 낮고 오목한 곳에는 문과 배수시설을 설치했다. 산세가 완만하고 요긴한 목에는 치를 쌓고, 성안의 평평하고 완만한 남북 대지에는 주거지와 창고를 세웠으며, 성안 남쪽 봉우리 가장 높은 곳에는 망대를 설치하는 등 완벽한 주거와 방위를 구성하고 있다.

산성의 성벽은 전부 돌로 되어 있고, 성벽 안팎을 1m에 0.05∼0.08m씩 들여쌓았다. 외벽의 높이는 일반적으로 6∼7m이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은 동문 북쪽에 있는 한 단으로 약 11m 안팎이다.

성벽의 높이는 1.5∼2m 정도로 계속 이어지다가 60여 m 간격으로 10개의 치성이 설치돼 있다. 

치성의 특징은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대부분 9∼10m로 바른네모꼴에 가깝고 문 옆에 쌓아 옹성과 같이 사용했다. 북문 왼쪽에 있는 치성은 문으로 쳐들어오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홀승골성(오녀산성)이나 환도산성에서 ㄱ자나 ㄷ자로 쌓은 성문과 같은 성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북문 양쪽에는 특이한 지도릿돌(樞石)이 두 개 남아있다. 지도릿돌에는 두 개의 네모난 구멍이 파져 있는데 하나는 문기둥을 세웠던 곳이고, 나머지 하나는 문을 다는 지도리(돌쩌귀)를 박은 곳이다.

석대자산성에서 나온 지도릿돌은 네모난 구멍의 깊이가 얕고 닳은 흔적이 전혀 없으며 주변에 쇠의 녹이 붉게 물들어 있다. 이 얕은 구멍에다 쇠로 만든 지도리를 설치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1천500년 전 고구려인들의 우수한 철기 사용 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대자산성 관련글
석대자산성 목록  https://tadream.tistory.com/5596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