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8136.html

‘글로벌 백제’의 신도시, 사비
[한가위별책-백제 깨어나다] -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프라하·페트라 못지않은 역사도시 복원에 대한 설렘
 [2010.09.17 제828호]  김민태 교육방송 기획다큐부 PD

사비 나성 상상도

지난 1년 동안 주위 사람들이 물어왔다. “느닷없이 백제야?” “재밌는 아이템 하지 그래?”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은 ‘백제의 세 번째 수도 사비성을 복원하는 다큐멘터리’라고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대개 반응들은 엇비슷하다. “거기 옛날에 뭐 있었어?”

나는 확신했다. 사비성은 완전히 사라졌구나. 건축물뿐만 아니라 그 모든 영광스러운 스토리까지. 사비성을 만나기 전 잊지 못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2008년 10월, 체코 프라하 광장 천문시계탑 앞. 만국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딱히 휴가철도 아니고 게다가 그날은 평일이었다. 물어보니 사정인즉 이렇다.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졌고, 시계가 워낙 독창적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매 정시가 되면 예수와 12제자가 귀여운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다 큰 어른들을 매료시킨 건 분명 시계의 성능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프라하의 역사를 느끼고 쉼없이 걷고 또 지갑을 꺼내고 있었다.


사비 나성 상상도

금동대향로 이후 다시 잊혀진 백제

2009년 3월, 요르단 페트라.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서 해리슨 포드가 성배를 찾으러 가던 길. 페트라는 기원전 유목민들이 만든 거대한 산악도시다. 이곳 사람들 풍경도 프라하와 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발바닥이 붓도록 걸었다. 2천 년 전 고대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이한 매력이었고, 걷는 동안만큼은 피로한 것도 몰랐다. 페트라가 요르단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0%라고 한다. 과연 요르단이 ‘중동의 석유를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고 자랑하는 국보답다.

2009년 6월 페트라의 감동이 채 잊혀지기 전, 어느덧 기획안 공모의 시즌이 왔고, 난 늘 그랬듯 두서없이 웹서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은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세계대백제전 준비에 대한 단신이었다. ‘세계’라는 말이 다소 엉뚱하게 들려서 좀더 들여다보니 준비 기간 10년 이상에 투입된 예산 역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대체 뭔 일인가?” 나 역시 처음엔 나를 보는 주변인들의 생뚱맞은 반응과 다를 바 없었다.


‘무얼 위해 그 많은 예산을 쏟아부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먹고살기 위해. 역사는 교육이자 산업이다. 세계는 지금 사라진 도시들을 복원하고 있다. 로마, 앙코르와트, 교토…. 과거와 더 가깝게 복원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어찌 외국의 역사도시에서 감흥을 얻은 사람이 나뿐이랴. 문제는 과연 백제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1993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백제 금동대향로의 발굴 이후, 세상은 또 백제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향토 연구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비성 건축 재현. 컴퓨터 그래픽

습지대에서 계획신도시로

왕궁터 추정지, 격자형 도로 유적 발굴, 남북 대로 정북방향 확인, 6.3km에 이르는 나성, 목곽 수조와 배수로를 갖춘 물 관리 시스템. 모두 계획신도시의 흔적들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백제 시대 이전의 부여 땅이 사람이 살지 않던 습지대였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1400년 전의 분당, 일산이 따로 없다. 애초부터 존재했고 발전시켜온 신라의 서라벌과는 아예 콘셉트 자체가 다르다. 한반도 최초의 계획신도시 사비성은 점점 프라하나 페트라와 오버랩됐다. 세계적 문화유산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도시. 기획 단계 초기의 설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료 조사는 피로감을 잊은 채 진행됐고, 사비성 복원 작업은 그 첫발을 내디뎠다.

“성왕 16년 봄, 백제는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하였다.”(<삼국사기>)

이것이 사비성 건설 혹은 사비 천도에 대한 유일한 역사 기록이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없는 자료를 찾아 헤매고 엮는 것이었다. 백제는 저항하다 패망한 국가였던 만큼 남은 유물이 적고, 게다가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의도적인 왜곡도 만만치 않다.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건 상상력이었다. 제작진과 자문진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사비성 복원은 2000년대 들어 발굴된 유물이 없었으면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내심 ‘삼천궁녀’와 ‘의자왕’으로 기억되는 백제의 오랜 편견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려 했다. 그것은 백제에 대한 단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즉 백제가 글로벌 국가였다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제작진에게 성왕의 사비성 건설만큼이나 어려운 도전이었다.


교육방송 <사비성, 사라진 미래의 도시> 팀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계획도시 사비성의 모습. 사진 제공: 교육방송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다큐

그 첫 번째 목표가 ‘비주얼 쾌감’이었다. 사람들은 보는 것을 믿는다. 그동안 백제의 역사가 소홀히 취급된 것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부족한 탓이다. 다큐멘터리는 1400년 전 사비성 전체를 그래픽으로 복원해냈다. 사비왕궁, 바둑판식 시가지, 민가와 귀족 사택 그리고 사비 백제를 대표하는 구드래 국제항까지. 이를 위해 제작 전 단계에서 6개월간 전문가 13명(고고학, 역사학, 건축학, 천문학)의 고증을 거쳤다. 또한 합성 편집 방식을 전격적으로 도입해,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왕궁 건설 장면을 현실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 사상 최초로 레드원 카메라를 도입해 보는 즐거움을 배가하려 했다.

두 번째는 스토리가 숨쉬는 다큐멘터리를 지향했다. 역사의 빈자리를 메워줄 이야기,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고증에만 매달리지 않고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려 했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컴퓨터 그래픽이 일궈낸 비주얼의 개가가 아니다. 그 도시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역사 혹은 과학, 고고학적 유물로만 존재하는 과거를 영원히 구전될 이야기로 남겨놓으려 했다.

10년 뒤 과연 이 땅의 초등학생들은 백제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간직할까. 또 어떤 것이 학계를 놀라게 할까. 우리 또한 프라하나 페트라 못지않은 역사도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백제의 역사가 1400년이나 땅속에 묻혀 있었던 만큼, 앞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민태 교육방송 기획다큐부 PD

*김민태 PD가 제작한 블록버스터형 다큐멘터리 <사비성, 사라진 미래의 도시>는 9월13일부터 사흘간 교육방송에서 방송됩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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