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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산성
1) 학술조사
1989년 본계시 문물보호단위(本溪市 文物保護單位)로 지정되었는데, 본격적으로 조사되지는 않았다.
본계 변우산성(本溪 邊牛山城)과 탑산산성(塔山山城) 위치도
2) 위치와 환경
변우산성(邊牛山城)은 본계시(本溪市) 근교 서북쪽의 석교자향 변우촌 동산(石橋子鄕 邊牛村 東山)에 위치하였다. 산성의 북쪽 아래로 태자하(太子河) 지류인 사하(沙河)가 서북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주변에는 하천 양안을 따라 충적평지가 펼쳐져 있다. 산성의 북쪽 바로 아래에 호토태촌(胡土台村)이 있고, 동쪽으로 사하(沙河) 건너편에 화령촌(花嶺村), 서북쪽으로도 사하(沙河) 건너편에 변우촌(邊牛村)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사하(沙河)를 따라 서북쪽으로 15km 정도 가면 심양 탑산산성(瀋陽 塔山山城)이 나오며, 두 산성 사이에는 지형적인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서로 바라다 보인다.
산성은 산줄기로 이어지는 동남쪽을 제외하면 사면이 충적평지나 골짜기에 의해 단절된 돌출지형이다. 북쪽과 서쪽은 사하(沙河)와 그 지류 연안의 충적평지이며, 동쪽도 사하(沙河) 지류 연안의 골짜기이다. 남쪽 산등성이 맞은편에는 또다른 산줄기가 있지만, 양자는 깊고 기다란 골짜기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다만, 산성 바깥쪽 경사면이 다른 고구려 산성에 비해 완만하여 적의 접근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특히 동쪽 바깥쪽에는 산 아래 골짜기까지 완만한 산줄기가 뻗어 있어 방어상 아주 취약하다.
변우산성(邊牛山城)이 위치한 지역은 요동평원과 동부 산간지대의 경계지대이다. 동쪽과 남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요동평원이 펼쳐지고 있다. 평원과 산간지대의 교차지점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발달하였는데, 지금도 심양~본계~단동(瀋陽~本溪~丹東)의 고속도로․철도․일반도로 등이 산성 서쪽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심양(瀋陽)으로 향하는 도로와 동남쪽으로 신빈(新賓)이나 관전(寬甸)으로 향하는 도로가 산성 서북쪽에서 심양~본계~단동(瀋陽~本溪~丹東) 도로와 만나고 있다. 변우산성(邊牛山城)은 남북과 관통하는 도로와 동서를 횡단하는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로상의 요충지인 것이다.
본계 변우산성(本溪 邊牛山城) 주변의 지형도
3) 유적의 현황과 성곽의 구조
해발 100~200m 전후인 동쪽 주봉(主峰)에서 좌우(左右)로 기다랗게 내리뻗은 산줄기가 약간 둥그스름한 장방형을 이루며 산성 내부를 감싸고 있다. 두 산줄기가 만나는 서쪽에 산성으로 진입하는 입구(서문)가 있으며, 우측인 북쪽 산줄기 서쪽 부분의 야트막한 능선에도 진입로(북문)가 있다. 산성을 감싼 산줄기는 표고가 그렇게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며, 내부에는 골짜기를 따라 평탄한 대지가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산성 내부의 골짜기는 북쪽 산등성이에서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내리뻗은 산줄기에 의해 다시 남북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지세를 따라 성벽을 축조하였기 때문에 평면은 불규칙하다. 전체 둘레는 1,141m, 또는 1.5km라고 한다. 축조방식은 각 성벽의 지형에 따라 다르다.
산성 서쪽 입구의 평탄한 대지에는 요하유역(遼河流域)의 다른 고구려 산성처럼 흙을 층층이 다져쌓아 제방과 같은 튼튼한 토벽을 구축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개울 남쪽의 산비탈에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개울 남쪽의 성벽 아래나 서문터 부근에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돌로 기초를 다진 다음 토벽을 축조하였다고 추정된다. 또한 바깥쪽 산줄기를 따라 성벽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벽도 흙으로 거대한 토벽을 축조하였다. 동북 각대(角臺) 아래쪽의 허물어진 성벽 단면을 통해 황갈색 사질토와 진흙이 함유된 회갈색 사질토를 번갈아 가며서 층층이 다져 쌓은 축성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을 축조한 북벽과 남벽은 토석혼축법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잔고(殘高)는 50cm 전후에 불과한데, 성돌로 보이는 깬돌이 드러난 곳이 몇 곳 있다. 이로 보아 성돌과 흙을 섞어서 쌓은 순수한 의미의 토석혼축이라기 보다는 성돌을 쌓은 다음 그 위에 흙을 덮은 토석혼축으로 추정된다. 한편, 북벽 안쪽에는 참호와 비슷한 도랑이 성벽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동남 모서리에서 이어지는 동남쪽 산줄기에도 위와 같은 방식을 토석혼축한 성벽과 안쪽의 도랑이 확인된다. 이는 동벽 바깥쪽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방어상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4) 역사적 성격
변우산성(邊牛山城)은 요동평원(遼東平原)과 동부 산간지대의 경계지대에 위치하였다. 특히 이곳은 심양(瀋陽)에서 본계(本溪)를 거쳐 천산산맥(千山山脈)을 넘어 압록강 일대로 향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요동평원에서 천산산맥을 넘어 압록강 일대로 향하는 교통로는 크게 본계~봉성로(本溪~鳳城路), 해성~수암로(岫岩路), 개주~장하로(蓋州~莊河路) 등 세 루트로 대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변우산성은 등탑 백암성(燈塔 白巖城)과 함께 가장 위쪽 루트인 본계~봉성로의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즉 등탑 백암성이 요양(요동성) 방면에서 본계로 향하는 진입로의 입구에 위치하였다면, 본계 변우산성은 심양(개모성)에서 본계로 나아가는 교통로의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변우산성은 전략적으로 개모성(蓋牟城)으로 비정되는 심양 탑산산성(瀋陽 塔山山城)뿐 아니라 백암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는 요통평원~압록강의 교통로 입구와 교통로상의 요충지에 성을 구축하여 입체적 군사방어체계를 구성하였던 만큼, 변우산성도 전방의 심양 탑산산성이나 서남쪽의 등탑 백암성과 유기적인 방어체계를 구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변우산성(邊牛山城)은 둘레 1.5km로 대형산성 보다 한 등급 아래인 중형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성 내부에는 주거용 공간이 비교적 넓은 편이다. 건물터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남북 골짜기의 평탄한 대지뿐 아니라 산등성이 안쪽의 산비탈도 완만하여 주거용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변우산성(邊牛山城)은 다른 고구려산성처럼 군사방어뿐 아니라 지방지배를 위한 거점성으로 기능하였다고 추정된다. 당(唐)이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 변우산성(邊牛山城)에 마미주(磨米州)를 설치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다.
변우산성(邊牛山城)은 요동평원(遼東平原)에서 본계(本溪)를 거쳐 압록강으로 진입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는 군사중진이자 주변 사하(沙河) 연안일대를 지배하기 위한 거점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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