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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도성(丸都城)
 
《삼국지》 고구려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고구려는 환도(丸都)의 아래에 도읍하였다.
 
《통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한나라 건안(建安) 연간에 고구려 왕 이이모(伊夷模)가 다시 새 나라를 세워 환도산(丸都山) 아래에 도읍하였는데, 비류수(沸流水)의 동쪽에 있었다. -《자치통감》 주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환도의 아래에 도읍하였는데,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았다. 《삼국지》 관구검전(毌丘儉傳)을 보면, ‘온갖 신고를 겪으면서 환도에 올라갔다.’고 하였는바, 그 험함을 알 수가 있다.” 하였다.
 
《대청일통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환도성은 조선 국성(國城)의 동북쪽에 있다. 진(晉)나라 때 고구려가 험고함을 의지하여 성을 쌓고는 환도(丸都)라고 하였는데, 주위에는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았다. 두우(杜佑)의 《통전》을 보면, “한나라 건안(建安) 연간에 고구려 왕 이이모가 다시 나라를 세우고는 환도산 아래에 도읍하였는데, 비류수의 동쪽에 있었다. 위(魏)나라 정시(正始) 7년(246)에 유주 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이 고구려가 자주 반란을 일으켜 침입한다는 이유로 제군(諸軍)을 독려하여 현도(玄菟)로 출병하여 토벌하였다. 고구려 왕 위궁(位宮)이 패해 달아나자 관구검이 이를 추격하여 정현(赬峴)에까지 이르러 온갖 신고를 겪으면서 환도성에 올라가 성을 도륙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고구려가 다시 이곳에 도읍하였다. 진나라 함강(咸康) 8년(342)에 고구려가 모용황(慕容皝)과 경계를 접하고 있었는데, 모용황이 고구려를 치려고 도모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중병(重兵)으로 북쪽 길을 방비하고 있었는데, 모용황이 몰래 경병(勁兵) 4만 명을 거느리고 남쪽 길을 통해 불시에 침입하였다. 그러자 고구려 왕 고쇠(高釗)가 패주하여 드디어 환도로 들어가서 그 성을 무너뜨리고 크게 약탈한 다음에 돌아왔다.” 하였다. 《당서》 지리지를 보면, “압록강 입구로부터 뱃길로 100여 리를 가서 다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동북쪽으로 가되 모두 520리를 가면 환도성에 이른다.” 하였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산상왕 2년(198) -한나라 헌제(獻帝) 9년- 에 환도성을 쌓았다. 13년(209) 10월에 왕이 도읍을 환도로 옮겼다.
○ 동천왕 20년(246) -위주(魏主) 방(芳) 7년- 에 위나라 유주 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이 환도성을 공격해 함락하고 도륙하였다. 21년(247)에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 고국원왕 12년(342) -진(晉)나라 성제(成帝) 17년- 봄에 환도성을 수리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8월에 환도성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11월에 연왕(燕王) 모용황이 침략하여 궁실(宮室)을 불태우고 환도성을 무너뜨렸다. 13년(343) 7월에 평양의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겨 거처하였다.
 
진서가 삼가 살펴보건대, 《신당서》 지리지를 보면, “압록강 입구로부터 뱃길로 100여 리를 가서 다시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올라가면 박작구(泊灼口)에 이르고, 또다시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현성(丸都縣城)에 이르는데, 환도현성은 옛날에 고구려 왕이 도읍한 곳이다. 또다시 동북쪽으로 2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하였다. 《요사》 지리지에는 이르기를, “녹주(綠州)는 본디 고구려의 고국(故國)이 있던 곳으로 발해에서는 서경 압록부(西京鴨綠府)라고 불렀다. 환주(桓州)는 고구려의 중도성(中都城) -바로 환도성의 오기(誤記)이다.- 으로 고구려 왕이 이곳에 궁궐을 창립하고는 신국(新國)이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모용황에게 패하여 궁실이 분탕질당하였다. 녹주에서 서남쪽으로 200리 되는 곳에 있다.” 하였는데, 고국(故國)이라고 한 것은 유리왕(琉璃王)의 국내성(國內城)을 두고 한 말이다. 발해에서는 이곳에 신주(神州)를 두어 압록부(鴨綠府)의 치소로 삼았으며, 요(遼)나라에서는 이를 녹주(綠州)로 고쳤다. 신국(新國)이라고 한 것은 산상왕(山上王)의 환도성을 두고 한 말이다. 발해에서는 이곳에 환주를 설치하였으며, 요나라에서는 그대로 답습하였다. 《신당서》 지리지의 설을 따르면 압록강 입구에서 뱃길로 동북쪽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작구에 이르는데, 박작구는 지금의 의주(義州) 강 건너편 지역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박작성조(泊灼城條)에 나온다.- 여기에서 또다시 강을 따라 5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환도성에 이르는데, 환도성은 바로 고구려의 환도성이고 요나라의 환주로, 지금의 초산부(楚山府) 강 북쪽 지역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동북쪽으로 강을 따라 200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주에 이르는데, 신주는 바로 고구려의 국내성이고 요나라의 녹주로, 지금의 만포진(滿浦鎭) 강 북쪽 지역이다. 《요사》 지리지에서 이른 바 ‘환주는 녹주에서 서남쪽으로 200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통전》을 보면, “압록강은 국내성 남쪽을 경유해 흐른다.”고 하였고, 이적(李勣)이 올린 서장(書狀)을 보면, 압록강 북쪽의 이미 항복한 11개의 성 가운데 그 하나가 국내성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보면, 국내성은 분명히 압록강의 서북쪽에 있었으며, 환도성은 또 국내성의 서남쪽에 있었다. 그런즉 지금의 초산부 강 건너편 지역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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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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