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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대탐험] 2. 천혜의 요새 봉황산성-환도산성 -경기신문"중에서 "오골성" 내용만 가져왔습니다.

◇오골성

[고구려대탐험] 2. 천혜의 요새 봉황산성-환도산성
사방이 바위산 철통 방어벽… 神도 경탄한 ‘꿈의 요충지’
둘레만 16km… 방어벽 속 대지 ‘천혜의 요새’ 실감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  webmaster@kgnews.co.kr  승인 2008.01.03      

고구려가 외적 침입시 산성전투를 견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구려는 국경선 부근에 여러 겹의 방어용 성을 쌓았고 수도로 접근하는 통로에도 차단용 성을 건설했다.

또한 이런 전략 요충지가 함락됐을 경우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수도를 평지성(平地城·평화시)과 산성(山城·전쟁시)으로 이원화하는 도성체제(都城體制)를 확립했다. 수도를 향하는 길목에 여러 방어성을 조성하는 수비책은 고구려 초기 홀승골성(오녀산성)과 하고성자성, 환도산성과 국내성, 평양 천도 후의 대성산성과 안학궁 등에 잘나타나 있다.

이는 평화시에는 평지성에서 거주하다가 외적이 침입하면 산성으로 올라가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산성으로는 사방이 험준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가운데 소도시가 들어설 정도의 분지를 갖추고 있는 오골성과 환도산성, 홀승골성 등을 들 수 있다.

◇오골성

중국 요녕성 봉황시에 있는 고구려 산성으로 중국은 봉성 또는 봉황산산성으로 부른다. ‘봉황산산성’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는 남문 입구에 들어서자 높다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별천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에는 소도시가 들어서기에 충분한 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천혜의 요새’란 생각이 절로 든다.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니 옛날에 성이 있다고 해서 불리우게 된 고성리(古城里)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고구려 시대 때 곡식저장고인 부경이 눈에 띄었다.

봉황산의 최고봉인 찬운봉(836.4m)에 올라서면 드넓은 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오골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 찬운봉을 정점으로 오골성 서벽이 뻗어가고, 맞은편 동대정자(東大頂子·약 800m) 남북으로 동벽이 이어진다. 동대정자가 있는 산은 고구려성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고려성자산(高麗城子山)이라 부른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가파른 바위 절벽들이 이어지는 험준한 지형이 자연 성을 이루고 있고, 산봉우리 사이의 낮은 지대에는 성을 쌓아 철통같은 방어벽을 형성했다. 

오골성의 규모는 둘레만 16㎞에 달해 수 백개의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크다. 오골성은 86구간의 돌로 쌓은 성벽과 87구간의 천연장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로 쌓은 성벽의 총 길이는 7천525m이며, 천연 절벽은 높이 50m가 넘는 대형만 34구간이나 된다. 
 

▲ 압록강 북쪽에 있는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큰 천혜의 요새 봉황산성. 오골성이라 불렸던 봉황산성은 높은 암석 산줄기 2개가 뻗어 있고 남북의 좁은 입구를 막아 성곽으로 삼은 산성으로 둘레가 16km이며 성터에는 현재 군 부대와 마을이 있다.  
  
오골성은 요동반도 동남부의 교통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낭낭산성를 비롯한 수암의 여러 성을 거쳐 안시성에 이르고, 서북쪽으로는 백암성을 지나 요동성과 접하고 있다. 동쪽은 압록강 물길을 따라 ‘박작성’을 지나 중 상류에 있는 고구려의 내지로 직통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645년 당나라 이세적(李世勣) 군대가 백암성을 공격하자 오골성에서 군사를 보내 도왔고, 648년 당나라 설만철(薛萬徹)이 박작성을 쳐들어가 포위하자 고구려는 장군 고문(高文)으로 하여금 오골성과 안시성 인근 성의 군사 3만여명을 이끌고 도왔다.

이처럼 오골성이 당시 주위의 크고 작은 성들을 지원한 것을 보면 고구려가 이곳을 압록강 이북의 땅을 경략하는 센터로 삼아 군사를 양성하고 전력을 축적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골성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였을 때도 중요한 공격 대상으로 등장한다. 당 태종이 안시성을 수없이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자 당 태종에게 항복한 고연수·고혜란이 “오골성 욕살은 늙어서 성을 굳게 지키지 못할 것이니 그 성의 군수물자와 양곡을 빼앗아 평양으로 전진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건안성과 신성에 있는 10만 병력과 안시성의 병력이 퇴로를 막고 뒤를 칠까 두려워 오골성을 치지 못하고 결국 안시성에서 패하고 돌아간다. 여기서 오골성은 압록강 이북에서는 평양으로 가는 좋은 길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골성은 연개소문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전설이 전해진다. 서기 645년 고구려를 침범한 당 태종 이세민이 백암성과 요동성을 함락시킨 뒤 기세를 몰아 오골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 성에서 연개소문에게 역습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도망갔다는 전설이다. 

장대 위에는 그 옛날 연개소문이 앉았었다는 엉덩이 자국, 말 발자국, 소변이 흘러간 자국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 성을 ‘봉황성’ 또는 ‘봉황산산성’이라고 불러 고구려인이 만든 것임을 전혀 알 수 없다. 오히려 현지 중국인들은 ‘이 성에서 연개소문이 설인귀에게 크게 패했다’는 뒤바뀐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마을 앞 논과 밭에서는 고구려인들이 사용하던 기와 파편과 질그릇 조각들이 널려 있다.

▲ 봉황산서 성터에는 아직도 고구려의 흔적이 살아있다. 고구려인들이 사용했던 질그릇 조각는 마을 앞 논과 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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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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