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5554 
* "[고구려대탐험] 1. 고구려 성의 기원 - 경기신문"에서 삼좌점 유적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대탐험] 1. 고구려 성의 기원
축성법 유사한 유적지 중국서 발견돼
삼좌점(三座店)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  webmaster@kgnews.co.kr 승인 2008.01.02      

고구려는 700년 동안이나 중국을 위협한 위대한 ‘성의 나라’이다. 중국 내 강변을 끼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고구려성이 존재하고 있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위치 선정과 자연절벽을 이용한 방어위치 선정, 옹성과 치를 비롯한 체계적인 방어구조물 등은 한마디로 천하의 요새, 바로 그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허물어지고,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고구려의 성벽이지만 당대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고구려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고구려성은 중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통한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700년 고구려 역사의 증인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700년 역사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이러한 증거는 우리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태자하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지만 1천500년 전 이곳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천하를 풍미했던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말발굽 소리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아 부활의 시기를 고대하고 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고구려 석성의 기원
2.천혜의 요새 봉황산성-환도산성
3.평지토성 국내성-하고성자성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5.역사왜곡의 현장
6.훼손되는 고구려 유적지
7.연천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
8.구리의 아차산성

중국 내몽골자치구인 적봉시 인근에서 고구려성 축성법과 닮은 기원전 24~1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삼좌점 유적지와 성자산산성이 발견됐다. 

이들 요하 고대문명 유적지는 고조선이 존재하던 시기와 일치하고 성 축성기술 등이 고구려성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미뤄볼 때 한민족의 선조가 요하 상류에서 동남쪽으로 이동했거나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화공동체를 이뤘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들 요하문명에 대한 발굴은 한민족의 기원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이다.

‘천혜의 요새’ 고구려 700년 위상 엿보다

◇삼좌점(三座店)

중국 내몽골자치구인 적봉시에서 북서쪽으로 40㎞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5년 음하 다목적댐 공사 도중 발견된 삼좌점은 기원전 24~15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으로 2006년 말께 발굴이 완료됐다. 이 석성은 국가 단위의 조직이 아니면 쌓을 수 없는 규모와 축성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석성의 구조가 전형적인 고구려성인 요령성 등탑현 서대요향 관둔촌에 위치한 백암성과 매우 유사하다.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한 성곽, 성벽을 기어 오르는 적을 제압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돌출부인 치(雉), 기저석을 쌓고 수평으로 기저를 받친 뒤 ‘들여쌓기’한 공법, 아군의 추락을 막고 적병의 침입을 방어키 위해 여장을 축조한 모습 등은 전형적인 고구려 축성법이다.

▲ 본사 고구려 탐사단이 둘러본 중국 내몽골 적봉시 삼좌점. 적봉시 인근의 삼좌점과 성자산 산성 등 고대문명 유적지에는 고구려 성과 매우 유사한 축성기법을 사용한 산성들이 남아 있다.  

삼좌점은 성벽 중 내성 북쪽 성벽의 ‘치’가 5m 간격으로 13개나 눈에 띌 정도로 매우 규모가 큰 성이다.

삼좌점 유적의 전체 면적은 1만4천여㎡ 규모로 60여채의 집터, 석축원형제단, 적석총, 석축 저장공, 곡식창고, 통로에 설치된 문설주 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적석묘는 50~70㎝ 원을 중심으로 사방 20여m까지 확장될 만큼 거대해 제단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완벽한 형태의 우물,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된 성곽, 횡으로 쌓은 뒤 다음 단은 종으로 쌓은 축성술, 투박하나마 가공 흔적이 있는 성벽돌 등은 고구려 특유의 축성술이어서 마치 고구려성의 기원을 보는 것만 같다.

이러한 축성술은 고구려와 백제에 이어 조선시대에 쌓은 수원 화성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적지 내 곳곳에는 지금도 빗살무늬 토기 조각과 각종 돌 연장 등만이 나뒹굴고 있을 뿐 전쟁 무기나 곡식 등 생필품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미뤄볼 때 적의 침략에 대비한 산성이었다기 보다는 행정관청의 역할을 담당한 평지성이란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박물관 복기대 연구원은 “성벽의 높이와 치의 간격, 축성술 등을 보면 요령성 인근에 있는 고구려 성인 백암성을 보는 것만 같다”며 “이뤄 미뤄볼 때 삼좌점 유적의 주인공들이 고구려, 즉 우리의 선조로 추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 성벽의 높이, 치의 간격 등 전형적인 고구려 축성기법인 들여쌓기공법을 이용한 삼좌점 집터 입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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